1/23/2022 | 시편 119편(IV)
내 노래의 주제 (The Theme Of My Songs)
김태환 목사
시편 119:49-64
[자인]
49 주의 종에 대해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께서 내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50 주의 약속이 나의 생명을 보존합니다. 이것이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내게 위로가 됩니다. 51 교만한 자들이 한없이 나를 조롱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법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습니다. 52 여호와여, 내가 주의 옛 법도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53 악한 자들 때문에 몹시 화가 납니다. 그들은 주의 법을 버린 자들입니다. 54 주의 법령들은 내 노래의 주제입니다. 내가 사는 곳 어디에서나 내 노래의 주제입니다. 55 여호와여, 밤에 내가 주의 이름을 기억하며, 내가 주의 법을 지킬 것입니다. 56 주의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축복이 됩니다.
[헤트]
57 여호와여, 주는 나의 몫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58 내가 나의 마음을 다해 주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주의 약속에 따라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59 내가 나의 길을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을 주의 법규들을 향해 돌렸습니다. 60 나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주의 명령들을 지킬 것입니다. 61 비록 악한 자들이 나를 줄로 묶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62 한밤중에 내가 일어나 주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63 나는 주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주의 교훈들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64 여호와여, 땅이 주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게 주의 법령들을 가르쳐 주소서. (쉬운성경)
[Zayin]
49 Remember your promise to me; it is my only hope. 50 Your promise revives me; it comforts me in all my troubles. 51 The proud hold me in utter contempt, but I do not turn away from your instructions. 52 I meditate on your age-old regulations; O Lord, they comfort me. 53 I become furious with the wicked, because they reject your instructions. 54 Your decrees have been the theme of my songs wherever I have lived. 55 I reflect at night on who you are, O Lord; therefore, I obey your instructions. 56 This is how I spend my life. obeying your commandments.
[Heth]
57 Lord, you are mine! I promise to obey your words! 58 With all my heart I want your blessings. Be merciful as you promised. 59 I pondered the direction of my life, and I turned to follow your laws. 60 I will hurry, without delay, to obey your commands. 61 Evil people try to drag me into sin, but I am firmly anchored to your instructions. 62 I rise at midnight to thank you for your just regulations. 63 I am a friend to anyone who fears you - anyone who obeys your commandments. 64 O Lord, your unfailing love fills the earth; teach me your decrees.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어 자음 [자인]으로 시작하는 8절, 자음 [헤트]로 시작하는 8절, 모두 16절 말씀입니다. 특이한 것은 한 절 한 절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란 단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각 절 속에 ‘말씀’ ‘약속’ ‘법’ ‘법도’ ‘법령’ ‘교훈’ ‘법규’ ‘명령’ ‘규례’ 등 다양한 뉘앙스를 가진 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목적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뗄레야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냥 나에게 좋은 말씀으로, 나에게 유익한 말씀으로 생각하고 읽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하게 되고,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3:16-17) 이 말씀을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쉬신 것입니다. 의역하면, 모든 성경 말씀 속에 하나님의 ‘숨’이 들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숨’을 나타내는 말은 ‘루아흐(רוּח)’입니다. 그리고, 헬라어에서 ‘숨’을 나타내는 말은 ‘프뉴마(πνευμα)’입니다. 이 두 단어는 ‘숨(breath)’ ‘바람(wind)’ 혹은 ‘영(spiri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숨’이 들어 있는 성경 말씀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손을 빌려 기록되었지만,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숨’과 ‘영’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創造)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그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그 물이 땅을 적셔, 그것으로 식물이 싹이 터 사람들의 먹을 양식으로 자라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러하다.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뜻을 이룬 뒤에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다한 뒤에야 내게로 돌아온다.” (이사야 55:9-11)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어찌 내 삶이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변화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또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양쪽에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며,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 냅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4:12-13) “For the word of God is alive and powerful.” (NLT)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NIV) 우리가 아플 때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으면 금방 증세가 좋아지고 병이 낫습니다. 이 때 “It works!”라고 합니다. 약이 효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 속에서 working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고, 그 말씀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시편 말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은 단순히 한편의 시(詩)가 아닙니다. 비록 시의 형태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한절 한절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Remember your promise to me; it is my only hope(저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49절) 성경 속에 많은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속에 있는 약속의 말씀들을 모두 세어보았더니 모두 365개였다고 합니다. 좀 인위적인 냄새가 납니다. Bill Bright가 쓴 ‘Promises(약속)’라는 책에서도 365개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CCC를 창립하신 분이지요. 그 책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Is your brand of Christianity truly the revolutionary first-century kind that helped turn the world upside down and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If not, it can be and that is what this daily devotional guide is all about(당신이 믿는 기독교는 세상을 뒤엎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그런 기독교입니까? 아니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매일의 영적 지침서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매일 하루에 하나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면 1세기에 살았던 제자들의 삶과 같은 변화가 나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마가복음 9:23)”는 말씀은 악한 영이 들어가 시달리는 아들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왔던 한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 속에 빠져 있을 때 이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이 말씀이 실제로 나에게 working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을 보존(保存)해 준다고 합니다(50절). 여기서 ‘보존하다’라는 말은 ‘revive’ ‘preserve’ ‘quicken’이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내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말씀의 힘입니다. 사람의 말도 때로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와 힘은 잠깐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고 안심을 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을 보존해 주는 힘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위로하고 나의 생명을 보존해 주는 것은 일시적으로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의 힘을 불어넣어 자리에서 붙잡아 일으켜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약속의 말씀 속에서 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그 고난을 이겨내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서 일상적(日常的)인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결코 몇몇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설교 말씀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1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Is there any encouragement from belonging to Christ? Any comfort from his love? Any fellowship together in the Spirit? Are your hearts tender and compassionate?” 이 말씀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격려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위로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경험하고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은 이 질문을 여러분 자신에게 해 보십시오. 이런 경험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경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희망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위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일으켜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편 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법령들은 내 노래의 주제입니다. 내가 사는 곳 어디에서나 내 노래의 주제입니다.” (54절) 하나님의 말씀이 내 노래의 주제(theme)라는 것입니다. 나는 노래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은혜. 축복. 위로, 희망, 감사에 대하여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노래는 기쁘고 신날 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는 곳 어디서든지 내 노래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NLT 성경은 “내가 사는 곳 어디서든지”라는 말을 “wherever I have lived”라고 번역했고, NASB이나 NKJV은 “in the house of my pilgrimage”라고 번역했습니다. ‘pilgrimage’라는 말은 ‘순례(巡禮)’ ‘여정(旅程)’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살아온 길’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번 지금까지 지내온 길들을 돌아보세요.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청년들은 청년들 대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들을 돌아보세요. 우리에게 이런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여기까지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거든요? 슬픔과 아픔과 눈물과 좌절과,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요. 시편 119편을 쓴 저자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늘 나의 노래의 주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한밤중에 내가 일어나 주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62절) ‘한밤중에(at midnight)’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사도행전 16:25에 나오는 ‘한밤중에’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파하려고 빌립보에 갔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두 사람은 ‘한밤중에’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한밤중에’라는 말은 뭔가 불안하고, 걱정이 되고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을 말합니다. 시편 저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God’s righteous judgments, NKJV)’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지금 내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한없이 불안합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니까 그 순간에 모든 불안이 감사로 바뀌고 노래로 바뀐 것입니다.
저자는 나의 인생 길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내 노래의 주제가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5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길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발걸음을 주의 법규들을 향해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노래의 주제로 삼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내 길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I pondered the direction of my life, and I turned to follow your laws.” (NLT) 정말 안타까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방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기 인생의 방향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정말 없습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저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내 노래의 주제로 삼았더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내 삶의 방향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성경읽기의 유익에 대하여 조지 뮐러(George Müller, 1805-1898, 독일)의 말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For the first four years after my conversion, I made no progress, because I neglected the Bible. But when I regularly read on through the whole with reference to my own heart and soul, I directly made progress. Then my peace and joy continued more and more. Now I have been doing this for 47 years. I have read through the whole Bible about 200 times, and I always find it fresh when I begin again. Thus, my peace and joy have increased more and more(개종한 후 처음 4년 동안 나는 성경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성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성경 전체를 읽었을 때 내 마음과 영혼에 큰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 후 나의 평화와 기쁨은 점점 더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47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 전체를 약 200번 정도 읽었습니다. 다시 성경 읽기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신선함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나의 평화와 기쁨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