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022 | 시편 119편(VI)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Lord’s Word Stands Firm Forever)
김태환 목사
시편 119:81-96
[카프]
81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82 나의 눈은 주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약해졌습니다. 내가 묻습니다. “주는 언제쯤 나를 위로하실 것입니까?” 83 비록 내가 연기 속에 있는 포도주 가죽 부대 같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령들을 잊지 않습니다. 84 주의 종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합니까? 주는 나를 박해하는 자들을 언제 벌하실 것입니까? 85 교만한 자들이 나를 잡으려 함정을 파고 있습니다. 주의 법을 어기며 함정을 파고 있습니다. 86 주의 모든 계명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나를 도와 주소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나를 박해합니다. 87 그들이 나를 이 땅에서 쫓아 내었지만, 나는 주의 교훈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88 주의 사랑으로 나의 생명을 보살펴 주소서. 그러면 내가 주의 법규에 순종할 것입니다.
[라메드]
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주의 말씀은 하늘에서 굳건히 서 있습니다. 90 주의 신실하심은 대대에 이릅니다. 주는 땅을 세우셨고, 이 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91 주의 법도는 이 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것들이 주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92 만일 주의 법이 지금까지 나의 기쁨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고통 가운데서 죽어 갔을 것입니다. 93 나는 주의 교훈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이것들을 통해, 주가 나의 생명을 보존하셨기 때문입니다. 94 나는 주의 것이오니 구원해 주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따르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95 악한 자들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법규들을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96 완전하게 보이는 어떠한 것들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명령들은 우주보다 넓습니다. (쉬운성경)
[Kaph]
81 I am worn out waiting for your rescue, but I have put my hope in your word. 82 My eyes are straining to see your promises come true. When will you comfort me? 83 I am shriveled like a wineskin in the smoke, but I have not forgotten to obey your decrees. 84 How long must I wait? When will you punish those who persecute me? 85 These arrogant people who hate your instructions have dug deep pits to trap me. 86 All your commands are trustworthy. Protect me from those who hunt me down without cause. 87 They almost finished me off, but I refused to abandon your commandments. 88 In your unfailing love, spare my life; then I can continue to obey your laws.
[Lamedh]
89 Your eternal word, O Lord, stands firm in heaven. 90 Your faithfulness extends to every generation, as enduring as the earth you created. 91 Your regulations remain true to this day, for everything serves your plans. 92 If your instructions hadn’t sustained me with joy, I would have died in my misery. 93 I will never forget your commandments, for by them you give me life. 94 I am yours; rescue me! For I have worked hard at obeying your commandments. 95 Though the wicked hide along the way to kill me, I will quietly keep my mind on your laws. 96 Even perfection has its limits, but your commands have no limit.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어 열 한 번째 자음 [카프]와 열 두 번째 자음 [라메드], 모두 16절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저자는 하나님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주는 언제쯤 나를 위로하실 것입니까?” (82절) “주의 종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합니까?” (84절) “나를 박해하는 자들을 언제 벌하실 것입니까?” (84절) 여러분, 지금 저자가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는지 머리에 그려집니까? 저자는 자기 처지가 ‘연기 속에 있는 포도주 가죽부대’ 같다고 합니다(83절). 팔레스타인은 주로 모래 땅이어서 진흙이 귀했습니다. 그래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대신 짐승의 가죽을 말려 주머니를 만들어 물이나 우유,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이동 중에 가죽부대가 휴대하기 편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가죽 부대는 주로 부엌 천장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런데, 연기 때문에 가죽 부대가 말라 쭈글쭈글하게 되고 갈라져서 오래 쓸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저자는 기약 없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친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저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불법(不法)으로 함정을 파 놓고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85절).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미형의 사람이 있고, 개미형의 사람이 있고,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미형의 사람은 거미 줄을 정교하게 쳐 놓고 먹이감이 걸리기만 기다립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개미형의 사람은 열심이 일해서 모으기는 하지만, 자기들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꿀벌형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모으지만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불행하게도 시편 119편의 저자 주변에 거미 같이 불법으로 함정을 파 놓고 그 함정에 빠지기만 기다리는 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 주변에 이유 없이 그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86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rotect me from those who hunt me down without cause.” 마치 사냥개를 동원해서 짐승을 몰고 있는 광경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그를 이렇게 못살게 하는지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렇게 못 살게 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고소(告訴)를 해야 하겠지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도 고소 제도가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고소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소 제도는 최소한 억울한 사람을 줄여보자는 제도이지, 이 제도가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좀 어이없는 말같이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없이 참는다면, 하나님은 그런 그를 기뻐하실 것입니다.......여러분이 선한 일을 하고 고난을 받을 때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19-20)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는다는 말은 잘못을 가리는 최종 판단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 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제시하는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우리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지만, 고난을 받을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고, 이유 없이 주님의 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으시고 그냥 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이유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는 사람은 주님의 고난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을 읽으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이 저자가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주는 언제쯤 나를 위로하실 것입니까?” (82절) “주의 종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합니까?” (84절) “나를 박해하는 자들을 언제 벌하실 것입니까?” (84절) 이런 절망적인 질문을 던지면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가 지금 ‘연기 속에 있는 포도주 가죽 부대 같이(83절)’ 터지고 갈라진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주님의 법령들(말씀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83절). 자기는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의 계명들을 신뢰한다고 합니다(86절). 그들은 나를 끝장을 냈지만 나는 주님의 교훈들(말씀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87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y almost finished me off, but I refused to abandon your commandments.” 그의 적들이 그를 거의 끝장을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편 119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시편 119편의 저자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다시 한번 그려보세요. 충분히 성경을 버릴 이유가 되고, 충분히 교회를 떠날 이유가 되고, 충분히 하나님을 떠날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저자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한 번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One of the greatest needs in the church today is to come back to the Scripture as the basis of authority, and to study them prayerfully in dependance on the Holy Spirit (오늘날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권위의 근거가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말은 오늘날 교회가 점점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권위의 근거가 되는 성경을 소홀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119편의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바로 성경을 자신의 삶의 최고의 권위로 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성경에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성경이 크리스천의 삶에서 크게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삶을 분리해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성경을 소홀하게 여기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서 영향력(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의 말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주의 말씀은 하늘에서 굳건히 서 있습니다.” (89절) 주의 말씀이 영원한 이유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屬性)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자는 또 이런 말을 합니다. “주의 법도는 이 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것들이 주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91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Your regulations remain true to this day, for everything serves your plans”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쉬운 성경에서 ‘your regulations’를 ‘주의 법도’로 번역했습니다. ‘regulations’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규칙’ 혹은 ‘규정(規定)’이라는 뜻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칙’과 ‘규정’에 따라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지요?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과 규정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존 행콕 타워(John Hancock Tower) 62층 맨 꼭대기에 올라가 보셨습니까? 거기서 보스턴 시내를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보스턴이 전혀 달라 보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보스턴이 아닙니다. 구획(區劃)이 아름답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꼭대기에서 내려와서 보스턴 시내를 보면 길이 꾸불꾸불합니다. 반듯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이 세상은 지금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들의 권력도 들에 핀 꽃과 같으니,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이 말씀은 원래 구약성경 이사야 40:6-9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살짝 자기 말을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말씀입니다(And that word is the Good News that was preached to you).”(베드로전서 1:24-25)
이 말씀은 고난 중에 있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베드로가 보낸 위로의 편지입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연대는 대략 로마에 대 화재가 일어났던 서기 64년경이라고 합니다. 그 때 크리스천들은 화재를 일으킨 범인들로 지목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베드로는 인간의 권력을 풀과 꽃에 비유하면서, 로마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겨우 한 철 피었다가 지는 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고난 중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I cannot too greatly emphasize the importance and value of the Bible study—more important than ever before in these days of uncertainties, when men and women are apt to decide questions from the standpoint of expediency rather than the eternal principles laid down by God, Himself(성경공부의 중요성과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영원한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쉽게 편의성이라는 관점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John Wanamaker(1838-1922)가 한 말입니다. 그는 ‘백화점의 왕’으로 불리고 있고 ‘pioneer in marketing(마케팅의 선구자)’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워너메이커가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편의성’이라는 관점에 따라 살면 우리의 삶이 풀의 꽃과 같이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영원한 원칙에 따라 살면 우리의 삶도 영원하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정해 주신 원칙에 따라 살면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19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전하게 보이는 어떠한 것들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명령들은 우주보다 넓습니다.” (96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Even perfection has its limits, but your commands have no limit(아무리 완전한 것이라도 한계가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말씀)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Amplified Bible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have seen that all [human] perfection has its limits [no matter how grand and perfect and noble]; Your commandment is exceedingly broad and extends without limits [into eternity].” “아무리 크고, 아무리 완벽하고,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도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계명)은 무한이 넓고 한계가 없어 영원에 이르기까지 확장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입니까? 동시에 이 얼마나 위험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그 당시 율법주의에 얽매여 살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주는 교훈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말이 진리라는 말씀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곧 우주보다 더 넓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