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97-112

[멤]

97 얼마나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는지, 나는 하루 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 98 주의 명령들은 나의 적들보다 나를 더 지혜롭게 만듭니다. 이는 그것들이 나와 항상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99 나는 나의 스승들보다 더 많은 통찰력이 있습니다. 이는 내가 주의 법규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0 나는 노인들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주의 교훈들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101 나는 지금까지 악한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02 나는 지금까지 주의 법도로부터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께서 친히 나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103 주의 말씀이 나의 입에 얼마나 단지요. 나의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 104 나는 주의 교훈들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악한 길을 미워합니다.

[눈]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며, 내 길의 빛입니다. 106 나는 맹세했습니다. 다시금 확인도 했습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따를 것입니다. 107 나는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에 따라 나를 보호해 주소서. 108 여호와여, 자발적으로 드리는 내 입술의 찬양을 받으시고, 내게 주의 법도를 가르쳐 주소서. 109 내가 계속적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지만,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110 악한 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덫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교훈들로부터 떠나지 않았습니다. 111 주의 법규들은 영원히 내가 가질 상속물입니다. 그것들은 내 마음의 기쁨입니다. 112 내가 주의 명령들을 지키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합니다. 바로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를 기울여 지키려 합니다. (쉬운성경)

[Mem] 

97 Oh, how I love your instructions! I think about them all day long. 98 Your commands make me wiser than my enemies, for they are my constant guide. 99 Yes, I have more insight than my teachers, for I am always thinking of your laws. 100 I am even wiser than my elders, for I have kept your commandments. 101 I have refused to walk on any evil path, so that I may remain obedient to your word. 102 I haven’t turned away from your regulations, for you have taught me well. 103 How sweet your words taste to me; they are sweeter than honey. 104 Your commandments give me understanding; no wonder I hate every false way of life.

[Nun]

105 Your word is a lamp to guide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106 I’ve promised it once, and I’ll promise it again. I will obey your righteous regulations. 107 I have suffered much, O Lord; restore my life again as you promised. 108 Lord, accept my offering of praise, and teach me your regulations. 109 My life constantly hangs in the balance, but I will not stop obeying your instructions. 110 The wicked have set their traps for me, but I will not turn from your commandments. 111 Your laws are my treasure; they are my heart’s delight. 112 I am determined to keep your decrees to the very end.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어 열 세 번째 자음 [멤(Mem)]과 열 네 번째 자음 [눈(Nun)], 모두 16절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저자는 구구절절히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주의 법을 사랑하는지, 하루 종이 주의 말씀만을 깊이 생각합니다(I meditate on it all day long).” (97절) ‘meditate’라는 말은 우리 말로 ‘묵상(默想)하다’라는 뜻인데요. 이 말은 단순히 ‘무엇을 생각하다(think about)’라는 뜻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意味)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대한 생각이 계속되고, 확장되는(continued or extended thought on it)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묵상(meditation)’은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방법까지 생각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주의 말씀이 나의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How sweet your words taste to me; they are sweeter than honey, 103절)”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찬송가 200장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다 보면 성경 말씀에 흠뻑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달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의 믿음이 많이 성장합니다.

계속해서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두 가지 유익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고 합니다(98절).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적들보다 더 나를 지혜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for they are my constant guide(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나의 안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고린도전서 1:25) 무슨 뜻인가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다 합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다 합해도 하나님을 능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시편 119편의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적들보다 나를 더 지혜롭게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정말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답답하고, 힘들 때, 내 힘에 버거운 일을 만났을 때, 아니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목요일 새벽기도 말씀에서 시편 147:11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이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자를 바라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여기 ‘인자’라는 말은 ‘사랑’ ‘은혜’ ‘도움’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달라고 구할 때 기뻐하십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을 즐거워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는 믿고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5-6) 부지런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청년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깊은 통찰력(洞察力)을 준다고 합니다(99절). 이 통찰력이 어떻게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가 주의 법규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meditation)’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통찰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통찰력(洞察力, insight)’이라는 말은 쉬운 말로 ‘이해력(understand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쓰는 ‘understanding’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통찰력’이란 사물의 ‘본질(the true nature of a thing)’을 직관적으로(intuitively) 꿰뚫어 보고 이해하는 힘을 말합니다. 

저자가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통찰력은 나의 스승의 것보다 더 크고, 노인들의 것보다 더 많습니다.” (99절, 100절) ‘스승’은 나보다 먼저 지식의 높은 단계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노인들(elders)’은 세상에 대한 많은 연륜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데서 얻은 ‘통찰력’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비교할 수 없고, 세상의 경험에서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자성어에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 한 개를 던져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뜻입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지혜’와 ‘통찰력’이라는 두 마리 새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눈]으로 시작되는 8개 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며, 내 길의 빛입니다(Your word is a lamp to guide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105절) “내 발의 등불’이라는 말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발을 비춰주는 등불을 말합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시골에 있는 한 작은 교회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 밥을 먹고 몇 사람이 바람을 쐬러 나갔습니다. 사방이 어둑어둑했지만 별 생각 없이 서로 얘기를 하면서 논두렁 길을 한참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칠흑(漆黑)같이 어둡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얼마나 깜깜한 지 눈 앞에 자기 손을 갔다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게 되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어두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좀 깜깜하다 싶으면 손을 눈 앞에 대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도 그런 상황을 겪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길의 빛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등대의 불빛을 보고 방향을 잡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여정을 바른 방향으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25년 간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돌본 경험을 가진 카렌 와이어트(Karen M. Wyatt, M.D.)라는 분이 ‘What Really Matters (2011)’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 말로 ‘일주일이 남았다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카렌 와이어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한결같이 “이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당신은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 7가지 후회는 이렇습니다. “죽을 만큼 마음껏 사랑해볼 걸” “조금만 더 일찍 용서할 걸” “걱정은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 걸” “마음을 열고 포용할 걸”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 걸” “아등바등 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살 걸”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면서 살 걸” 등입니다. 여러분도 이 7가지 후회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후회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세요. 모두 성경에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의 방향을 올바로 잡아주는 안내자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그 말씀에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에 따라 나를 보호해 주소서.” (107절) 이 말씀을 번역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I have suffered much, O Lord; restore my life again as you promised.” (NLT) "I am exceedingly afflicted; Revive me, LORD, according to Your word." (NASB, NKJV) ‘revive’라는 말은 ‘to bring back to life(생명을 돌려주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의기 소침해서 죽게 되었으니 다시 예전처럼 일어나서 활기차게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restore’라는 말은 ‘회복(回復)하다’라는 뜻 아닙니까? 문자적으로는 이전으로 돌려 놓는다 뜻이지만, 본 뜻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생명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태복음 11:28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한다(I will give you rest)”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Amplified Bible에 보면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ily burdened [by religious rituals that provide no peace], and I will give you rest [refreshing your souls with salvation]. 이 말씀에 숨겨 있는 상당히 많은 의미들을 설명해 줍니다. 그 당시에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유대교의 종교 의식들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평안을 주고, 구원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하고, 어깨를 무겁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위로와 평안을 주고,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마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너희가 내 말 대로 살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그리고, 이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 말씀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다니?” “우리는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사람들 속에 끼어 있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교훈이 너희를 진리로 인도하고 너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 말씀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시대를 율법의 시대와 새로운 시대 즉 복음의 시대로 구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시대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세례 요한까지로 끝이 났고(마태복음 11:13), 이제 나를 통해서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율법학자나 바리새파 사람들의 교훈이나, 성전 제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너희가 위로와 평안을 얻고, 나를 통해서 너희가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 말씀입니까? 분명히 예수님이 어디서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종교지도자들에게 모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 말씀이었습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그렇게 안간 힘을 썼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revive’ 시켜 주고, ‘refresh’해 주었다고 합니다.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 Denmark)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신학자, 시인, 사회 비평가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는 헤겔(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의 관념론(Idealism)과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의 형식주의(Formalism)를 싫어했던 ‘실존주의 철학자(Existentialist Philosopher)’였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When you read God's word, you must constantly be saying to yourself, ‘It is talking to me about me(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야’ 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힘든 고통의 시간을 혼자 겪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의 시간을 혼자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나에게 지혜를 주고, 통찰력을 주고, 나의 인생의 여정을 바른 길로 안내해 주고, 나를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