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022 | 시편 119편(X)
새벽에 주께 부르짖습니다 (Early At Dawn, I Cry For Help)
김태환 목사
시편 119:145-160
[코프]
145 여호와여, 내가 마음을 다해 주를 부릅니다. 내게 대답하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법령들에 복종할 것입니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법규들에 복종할 것입니다. 147 내가 새벽 이전에 일어나 도움을 요청하며 울부짖습니다. 나는 나의 소망을 주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148 내가 밤새도록 깨어 있습니다. 내가 주의 약속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149 주의 사랑에 따라 나의 소리를 들어 주소서. 여호와여, 주의 법도에 따라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150 악한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이 가까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151 여호와여, 주는 가까이 계십니다. 주의 모든 명령들은 진리입니다. 152 오래 전부터 나는 주의 법규들을 배웠습니다. 주의 법규들은 주께서 영원토록 지속되게 하신 것들입니다.
[레쉬]
153 나의 고통을 보시고 나를 구원해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않았습니다. 154 내가 주장하는 것을 변호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소서. 주의 약속에 따라 나의 생명을 보존해 주소서. 155 구원은 악한 자들로부터 멀리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법령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156 여호와여, 주는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법도에 따라 나의 생명을 보존해 주소서. 157 나를 박해하는 적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법규들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158 나는 신실하지 않은 자들을 보고 분노합니다. 이는 그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9 내가 주의 교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소서. 여호와여, 주의 사랑에 따라 나의 생명을 보존해 주소서. 160 주의 모든 말씀은 진리입니다. 주의 의로운 법도는 모두 영원합니다. (쉬운성경)
[Qoph]
145 I pray with all my heart; answer me, Lord! I will obey your decrees. 146 I cry out to you; rescue me, that I may obey your laws. 147 I rise early, before the sun is up; I cry out for help and put my hope in your words. 148 I stay awake through the night, thinking about your promise. 149 In your faithful love, O Lord, hear my cry; let me be revived by following your regulations. 150 Lawless people are coming to attack me; they live far from your instructions. 151 But you are near, O Lord, and all your commands are true. 152 I have known from my earliest days that your laws will last forever.
[Resh]
153 Look upon my suffering and rescue me, for I have not forgotten your instructions. 154 Argue my case; take my side! Protect my life as you promised. 155 The wicked are far from rescue, for they do not bother with your decrees. 156 Lord, how great is your mercy; let me be revived by following your regulations. 157 Many persecute and trouble me, yet I have not swerved from your laws. 158 Seeing these traitors makes me sick at heart, because they care nothing for your word. 159 See how I love your commandments, Lord. Give back my life because of your unfailing love. 160 The very essence of your words is truth; all your just regulations will stand forever.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어 열 아홉 번째 자음 [코프(Qoph)]로 시작하는 여덟 절, 스무 번째 자음 [레쉬(Resh)]로 시작하는 여덟 절, 모두 16절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저자는 모든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저자가 자기 자신의 문제만 가지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기 시대에 대해 절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자의 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 눈에서 눈물이 홍수같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는 주의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Rivers of tears gush from my eyes because people disobey your instructions).” (136절) 오늘 본문 말씀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신실하지 않은 자들을 보고 분노합니다. 이는 그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Seeing these traitors makes me sick at heart, because they care nothing for your word).” (158절)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 시대를 향한 저자의 아픔과 절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있습니까? 교회들이 이 시대의 풍조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세상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이 시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제일 제 마음에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147절 말씀입니다. “내가 새벽 이전에 일어나 도움을 요청하며 울부짖습니다. 나는 나의 소망을 주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rise early, before the sun is up; I cry out for help and put my hope in your words.”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대한 키워드 세 개가 있습니다. 기도(prayer)와 금식(fasting)과 자선(almsgiving)입니다. 사순절은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간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주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기도와 금식과 자선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금식을 하면 왜 주님과 가까워지게 될까요? 금식은 식욕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의 하나인 식욕을 절제함으로써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선을 하면 왜 주님과 더 가까워질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은 너무 이기적입니다. 자선은 나만 바라보던 시선을 자기 밖의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생각하고 채워 줌으로써 이기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Come close to God, and God will come close to you).” (야고보서 4:8)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지금 사순절 새벽기도가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참가한 교우들의 이름을 보면서 기도하는 것은 저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요. 새벽에 기도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아무 때나 기도하라는 말씀도 있긴 있어요. 에베소서 6:1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Pray in the Spirit at all times and on every occasion. Stay alert and be persistent in your prayers for all believers everywhere).” ‘무시로’라는 말은 ‘때를 가리지 말고 아무 때나(at all times)’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께서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사셨던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언제, 어디서 기도하셨는지 알아보는 것은 즐겁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Before daybreak the next morning, Jesus got up and went out to an isolated place to pray)” (마가복음 1:35) 새벽 ‘미명(未明)’이라고 했으니까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어두컴컴한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적한 곳(an isolated place)’을 찾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때 그런 장소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을 대면하기에 제일 좋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시간이 예수님께서 사역에 필요한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예수님은 자기를 반성하는 기도를 드렸고, 사역의 방향을 점검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이런 기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기도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사역을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한 사람이 자기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를 사전에 예수님께 알려주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고 피신하라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3:31). 예수님은 그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은, 바로 기도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많은 시편 저자들이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기록했습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患難)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Each morning I will sing with joy about your unfailing love. For you have been my refuge, a place of safety when I am in distress).” (시편 59:16)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Satisfy us each morning with your unfailing love, so we may sing for joy to the end of our lives).” (시편 90: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It is good to proclaim your unfailing love in the morning, your faithfulness in the evening).” (시편 92:1)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God dwells in that city; it cannot be destroyed. From the very break of day, God will protect it).” (시편 46:5)
이 말씀을 하나 더 볼까요? “이튿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성전 뜰로 가셨습니다(Early the next morning he was back again at the Temple). 온 백성이 그분 주변에 모여들자,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2) 그날 새벽부터 성전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왜 그들은 그 시간에 성전에 나와 있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성전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새벽이면 하나님의 성전을 찾는 습관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 시간에 미리 성전에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확 밀려오지 않습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기도할 것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씩 기도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모두 중보기도에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목사님과 교회 장로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팀장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팀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더 나아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을 위해 많은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보세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But I have prayed for you, that your faith should not fail).” (누가복음 22:31-32) ‘중보기도’에 눈을 뜨면 자기만 위해서 기도하는 이기적인 기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그만큼 기도가 성숙해집니다. 자기를 위해서,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형제들을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기도할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 대화가 끊어집니다.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여러 번 만나고 친해지게 되면 그 때부터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부터는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이야기거리가 되고, 서로의 관심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설정되지 않았을 때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잘 넘기면 그 때부터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는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도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새벽 기도가 주는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1:1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떡 반죽에서 떼 낸 첫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 반죽덩어리 전체가 거룩합니다. 또 나무 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도 다 거룩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보면 이 말씀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And since Abraham and the other patriarchs were holy, their descendants will also be holy-just as the entire batch of dough is holy because the portion given as an offering is holy. For if the roots of the tree are holy, the branches will be, too.” 아브라함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이 거룩하니까 그의 후손들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반죽에서 일부를 떼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면 반죽 전체가 거룩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또한 이것은 나무의 뿌리가 거룩하면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도 거룩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우리 교회에 한창 새벽기도의 불이 붙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저는 기도에 대한 도전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때 읽은 책 중에 ‘와치만 니(Watchman Nee, 1903-1972, 중국)’라는 중국 교회 지도자가 쓴 책이 있었습니다. ‘와치만 니’에 대한 이단 논쟁이 있기도 했지만, 그가 쓴 책들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새벽 기도의 유익’이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가 있습니다. 저는 그 책자에서 로마서 11:16 말씀을 새벽 기도에 적용한 말씀을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와치만 니’는 그 책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면 나머지 하루 전체가 거룩한 시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저는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 있다면 그 때가 언제일까? 의심할 여지없이 청년 시절이다. 이 청년 시절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거룩하게 된다.”
후에 저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책을 읽으면서 본회퍼 역시 와치만 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회퍼가 ‘신자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이란 책을 썼는데요. 이 책은 히틀러 시대에 그가 지하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교재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entire day receives order and discipline when it acquires unity. This unity must be sought and found in morning prayer. The morning prayer determines the day(하루에 통일성이 있게 되면 하루에 전체에 질서와 규율이 생기게 된다. 이 통일성은 새벽 기도를 통해서 구해야 하고 발견되어야 한다. 새벽 기도가 하루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