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2022 | 성령으로 난 사람(1)
눈을 주님께 돌려(VII) (Turn Your Eyes Upon Jesus)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3:1-8
1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 공의회 의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어느 날 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선생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사람이 이미 나이가 많아 어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태 안에 다시 들어가 두 번씩이나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그의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난다. 7 내가 너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에 너무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제 맘대로 부는 법이다. 너는 바람 부는 소리는 듣지만, 그 바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든 사람도 이와 같다.” (쉬운성경)
1 There was a man named Nicodemus, a Jewish religious leader who was a Pharisee. 2 After dark one evening, he came to speak with Jesus. "Rabbi," he said, "we all know that God has sent you to teach us. Your miraculous signs are evidence that God is with you." 3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are born again①, you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 ①Or born from above; also in 3.7 4 "What do you mean?" exclaimed Nicodemus. "How can an old man go back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again?" 5 Jesus replied, "I assure you,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without being born of water and the Spirit①. / ①Or and spirit. The Greek word for Spirit can also be translated wind; see 3.8 6 Humans can reproduce only human life, but the Holy Spirit gives birth to spiritual life. 7 So don't be surprised when I say, `You must be born again.' 8 The wind blows wherever it wants. Just as you can hear the wind but can'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you can't explain how people are born of the Spirit." (New Living Translation)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데에 두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니고데모는 자기가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자기가 예수님께 가지고 온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조용한 시간에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는 제한된 자료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에서 알아주는 랍비였습니다. ‘랍비(Rabbi)’는 ‘선생’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 말로 학문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칭호입니다. 예수님에게도 ‘랍비’라는 칭호가 붙어 있었습니다(요한복음 4:31, 9:2, 11:8. 마태복음 26:25)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외에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요한복음 1:38, 49, 3:2). 니고데모도 예수님께 ‘랍비’라고 불렀습니다(요한복음 3:2). 니고데모는 71명으로 구성된 ‘공의회(Sanhedrin)’의 의회원이었습니다. 이 직은 단순히 명예직이 아니라 최고의 권위를 가진 유대 사회의 실질적인 ‘rulers’입니다. 니고데모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고, 불의한 일을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요한복음 7:50).
중요한 것은 그가 바리새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3:1). 이 말은 그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문자 하나까지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바리새인이었습니다(빌립보서 3:5). 바울도 스승 가말리엘 밑에서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율법을 신봉했던 유대교의 체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보자마자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아셨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문제를 모두 알고 계시는 마당에, 하나님과 본질 상 같은 분이신(빌립보서 2:6)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알고 계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한 율법 교육을 받았고, 율법을 지켜왔던 니모데모였지만, 삶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자신이 따르는 율법의 조항들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지금 네가 가진 문제는 네가 거듭나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Amplified Bible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unless a person is born again [reborn from above—spiritually transformed, renewed, sanctified], he cannot [ever] see and experience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다”는 말은 믿음 생활의 가장 높은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너의 답답함을 잘 알고 있다. 네가 기쁨을 얻고 만족함을 얻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즉 네가 영적으로 변화되고, 새로워지고,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니고데모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뱃 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가 있습니까?” 니고데모는 이렇게 묻습니다. 평생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실천해왔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공의회의 의회원이었지만, 니고데모는 영적으로는 초보적인,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그의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에 놀라지 마라. 바람은 제 마음대로 부는 법이다. 너는 바람 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바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도 이와 같다.”(6-7절) 이 말씀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볼까요? “Humans can reproduce only human life, but the Holy Spirit gives birth to spiritual life. So don't be surprised when I say, `You must be born again.”
크리스천의 삶을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을까요? 크리스천으로 사는 사람치고 하나님의 뜻 대로 살아봐야 되겠다고 결심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심을 해도 매번 실패하거든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거나 새로워지는 것은 사람의 결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spiritual life(영적인 삶)’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진리를 ‘바람’에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성령’이라는 말과 ‘바람’이라는 말이 어원(語源)이 같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루아흐(רוּחַ)’라는 말이고 그리스 말로는 ‘프뉴마(πνεῦμα)’라는 말입니다. ‘바람’ ‘숨’ ‘호흡’ ‘생명’ ‘영’ ‘성령’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바람이 부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는 것처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그 과정을 모두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부는 것을 볼 수는 없지만, 바람이 불고 지나간 흔적은 볼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흔적을 남깁니다. 나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선하고, 좋은 흔적을 남깁니다. 어떤 때는 드라마틱한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전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하도 급진적(radical)이고, 드라마틱해서 그 당시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바울을 어떻게 믿느냐?” “그 사람 때문에 잡혀간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하면서 바울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사도행전 9:20-22, 26).
갈라디아서 5:22-23에 보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맺는 열매들이 나와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자비와 착함과 성실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이 없습니다(There is no law against these things., NLT).” 이 열매들 중에 율법에서 금지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열매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에서 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입니다.
성령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첫째로,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능력(power)’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생각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령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면(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높이게 되고 예수님 중심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에게 능력이 주어진다면,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But you will receive power and ability when the Holy Spirit comes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to tell people about Me] both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Amplified Bible).” (사도행전 1:8)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어디에도 그 외에 다른 목적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살려고 했다가 망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사도행전 8:20). 사마리아에 살고 있던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gifts)’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능력은 ‘내 것’이 됩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의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인식한다면 그 선물은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의 생각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말을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 혹은 흥분 상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때로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 감정적인 변화가 따라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의 변화가 반드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찬양 집회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부흥회에 참석했을 때 종종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집회 장소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고, 흥분의 도가니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을 성령충만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을 무슨 ‘원리(principle)’나 ‘원칙’ 혹은 어떤 ‘정신(spirit)’ 같은 비인격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경향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인격(personality)’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의 인격이 존중을 받을 때 기뻐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합니다(에베소서 4:30). 성령을 인칭 대명사로 표시할 때 대문자 ‘Him’으로 표시합니다. 이 사실 역시 성령이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이 사실은 우리가 성령과 관계를 맺을 때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성령의 인도를 기꺼이 받고, 순종함으로써 성령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목소리가 크고,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고,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못된 오해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리스천으로서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날씨가 더울 때 싱그러운 바람이 불면 얼마나 시원하고 기분이 좋습니까? 성령이라는 말과 바람이라는 말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고 했잖아요?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싱그러운 바람과 같아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성령이십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For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ver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고린도후서 3:17)
이 말씀을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성령은 모든 얽매인 것들을 풀어줍니다. 맞습니까?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명예에 얽매였습니까? 권력에 얽매였습니까? 돈에 얽매였습니까? 무슨 업적을 쌓는 일에 얽매였습니까? 예수님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말을 따르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31-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성령)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1813-1873)의 말을 나누려고 합니다. “God, send me anywhere, only go with me. Lay any burden on me, only sustain me. And sever any ties in my heart except the tie that binds my heart to Yours(하나님, 저와 함께만 가신다면 어느 곳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오직 저를 지탱할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어떤 짐이라도 저게 지우십시오. 그리고 저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묶고 있는 끈 외에는 어떤 끈도 끊어주십시오).” 우리는 리빙스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진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참 그리스도의 제자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고 자유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