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2022 | 성령으로 난 사람(3)
눈을 주님께 돌려(IX) (Turn Your Eyes Upon Jesus)
김태환 목사
로마서 8:1-9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죄의 본성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심으로써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고 있는 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4 이렇게 하여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5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의 본성이 바라는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합니다. 6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입니다. 7 죄의 본성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8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쉬운성경)
1 So now there is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2 And because you belong to him, the power of the life-giving Spirit has freed you from the power of sin that leads to death. 3 The law of Moses was unable to save us because of the weakness of our sinful nature. So God did what the law could not do. He sent his own Son in a body like the bodies we sinners have. And in that body God declared an end to sin's control over us by giving his Son as a sacrifice for our sins. 4 He did this so that the just requirement of the law would be fully satisfied for us, who no longer follow our sinful nature but instead follow the Spirit. 5 Those who are dominated by the sinful nature think about sinful things, but those who are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 think about things that please the Spirit. 6 So letting your sinful nature control your mind leads to death. But letting the Spirit control your mind leads to life and peace. 7 For the sinful nature is always hostile to God. It never did obey God's laws, and it never will. 8 That's why those who are still under the control of their sinful nature can never please God. 9 But you are not controlled by your sinful nature. You are controlled by the Spirit if you have the Spirit of God living in you. (And remember that those who do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living in them do not belong to him at all.)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의 다른 이름은 ‘예수님의 영(the Spirit of Jesus)’입니다(사도행전 16:7).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영과 마음(the mind of Christ)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는 말입니다(고린도전서 2:16).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갈라디아서 2:20)” 이 말씀은 바울이 자기는 예수님의 영과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신학용어에 ‘imputation’이란 말이 있습니다. ‘돌리기’ 혹은 ‘전가(轉嫁)’라는 뜻입니다. ‘전가’라는 말은 “책임을 전가하다”라는 말과 같이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신학에서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 모두 사용합니다. 화면을 한번 보세요. ‘전가의 신학(The Theology of Imputation)’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도표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의 ‘옛 자아(old sinful being)’가 십자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과 생각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새로운 자아(a new being)’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는 예수님의 영과 마음과 생각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대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우리는 말로 그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일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을 받았다” “성령을 체험했다” “성령 세례를 받았다” “성령 충만하다” 이런 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마음과 생각이 자신에게 전가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는 경우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 (베드로전서 2:21)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범(an example)’이 되시니까 그가 남긴 ‘발자취(steps)’를 잘 따라 살면 우리는 어느 환경에서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멋진 말이지만, 예수님의 영과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지 않고는 이 말씀을 따라 살기 어렵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성령의 법이 내 안에 ‘전가(imputation)’되었을 때 비로소 실천 가능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지난 설교에 이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주어집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본문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의 본성이 바라는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합니다.” (5절) ‘those who are dominated by the sinful nature(죄 된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감정이 끌리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감정이 얼마나 파괴적이며,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인간의 감정의 출처를 ‘sinful nature’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을 따라 살게 되면 절대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those who are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은 어떤 사람들을 말합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성령에 의해서 컨트롤을 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을 기쁘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입니다(But letting the Spirit control your mind leads to life and peace, 6절)”라고 썼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이 말씀에 나오는 두 단어 ‘생명과 평안(life and peace)’,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때에는 이 말처럼 좋은 말이 없습니다. 누구와 인사를 하든지 늘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상대방에게 ‘life and peace’를 빌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life and peace’를 얻을 수 있는 지, 사람들은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릅니다. 운동을 하면 되나요?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하면 얻을 수 있습니까? 놀랍게도 성경책에 이 두가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나와 있습니다. 그 길은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면 이 두가지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한번 보실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실을 아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결정했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반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했을 경우에는 마음에 담대함과(요한일서 3:21) 평안이 주어집니다. 존 베버리(John Bevere)라는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When we invite the Holy Spirit into our decision-making process, he will always bear witness through the peace of Christ Jesus(우리의 결정 과정에 성령을 초대했을 때 성령께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통해서 증언을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요한복음 14:17)’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길을 갈 때 성령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에베소서 4:3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라(And do not bring sorrow to God's Holy Spirit by the way you live).”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였습니다. 누가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브루기아(Phrygia)와 갈라디아(Galatia)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들은 무시아(Mysia)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Bithynia)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Troas)로 내려갔습니다.” (사도행전 16:6-8)
이런 말씀은 지도를 보면서 말씀을 들어야 이해가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그들의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두 사람은 성령께서 막으시는 것을 알고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시아의 북쪽에 있는 무시아 지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거기서 다시 북동쪽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예수의 영(the Spirit of Jesus)’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드로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유럽 선교의 꿈을 꾸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네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께서 우리의 계획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막는 이유는 우리가 세운 계획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이 막으실 때 순종했습니다. 억지로 자기들의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는 다른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시아 선교를 막으신 하나님은 그대신 유럽 선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후에 바울은 그의 심정을 이렇게 썼습니다. “비록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큰 문이 내게 열려 있습니다(A wide door for effective [service] has opened to me, and there are many adversaries).” (고린도전서 16:9)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길이 막혀 그 일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실 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왜 자기들의 계획을 막으시는지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열어 주기 전에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순종했습니다. 억지를 자기들의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두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계획을 추진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일에 열매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계획보다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무산(霧散)되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유럽 선교의 길이 열리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막으실 때는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성령께서 나의 삶을 지배하시면 나는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 중심의 삶’을 영어로 ‘a Christ-Centered life’라고 합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중심의 삶’이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인 삶(a Self-Centered Life)’을 살려고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 나의 이름으로 보내실 진리의 성령이신 보혜사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4:26) “그분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가 들은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될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진리의 성령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려 주심으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6:13-14) 이 말씀들이 주는 메시지는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Our Core Values(우리의 핵심 가치)’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To challenge students to grow in their relationship with Christ, To teach Christ-centered character(학생들을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도록 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성품을 가르치고)” 아마도 어느 기독교 학교에서 이런 핵심 가치를 내세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도 중심의 성품과 그리스도 중심의 삶은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은 철저하게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입니다. 존 코라피(John Corapi)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형성합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끝으로, 드릴 말씀은 어마 무시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Those who do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living in them do not belong to him at all, 9절).” 같은 말씀이 14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All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children of God).”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15)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을 NASB 성경은 ‘a spirit of adoption as sons’라고 번역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영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셔야 하는지 그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