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022 | 신약성경의 핵심 말씀 시리즈5
값싼 은혜는 이제 그만! (No More Cheap Grace!)
김태환 목사
누가복음 9:23-27
23 예수님께서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4 자기의 생명을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건질 것이다. 25 만일 이 세상을 모두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의 영광으로 올 때, 그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27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몇 사람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다." (쉬운성경)
23 Then he said to the crowd, "If any of you wants to be my follower,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take up your cross daily, and follow me. 24 If you try to hang on to your life, you will lose it. But if you give up your life for my sake, you will save it. 25 And what do you benefit if you gain the whole world but are yourself lost or destroyed? 26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message,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that person when he returns in his glory and in the glory of the Father and the holy angels. 27 I tell you the truth, some standing here right now will not die before they see the Kingdom of God."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식을 제자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도’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강단에서 ‘값싼 은혜’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죄와 단절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고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끔찍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이 사건이 사전에 기획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외 없이 이 사건에도 율법학자들이 등장하고,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율법학자(teacher of religious law)’는 율법을 두루마리에 필사(筆寫, copy)하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개역성경에는 ‘서기관(書記官, scribe)’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써서 사본(寫本)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할 때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 이 일을 했습니다. 말씀을 필사하다보니 이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데 늘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말씀에 정통해도 인간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쓴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할례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It doesn't matter if you are circumcised or not. All that matters is that you are a new person).” (갈라디아서 6:15,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바울은 믿음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간음(姦淫, adultery)’은 율법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힌 여자의 사건이 기획된 사건처럼 보이는 이유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8:6). 이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이런 여자는 율법에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여자를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 한마디에 사람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이 여자를 끌고 왔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I don’t condemn you. Go and sin no more).” (요한복음 8:11)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죽음의 현장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아시잖아요? ‘은혜(grace)’라는 말은 ‘God’s undeserved favor(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단순히 그 여자가 불쌍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이 여자에게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 영적으로 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It is only by God's grace that you have been saved).” (5절) 또 이 말씀을 조금 더 읽어가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God saved you by his grace when you believed. It is a gift from God).” (8절)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또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이제 전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은 사람 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이 희미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력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제자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결단이 없는 것입니다. ‘결단(決斷)’이라는 말은 ‘결단할 결’자와 ‘끊을 단’자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후에, 예전의 삶과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의 결단을 내린 분이 계십니까?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자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제자도는 다른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말인데요. 대표작 본회퍼는 천재 신학자였습니다. 21살에 베를린 대학에서 ‘신자의 공동생활’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때 그를 지도한 사람은 신학계의 거장 칼 바르트(Karl Barth)였습니다. 그리고 24살에 ‘존재와 행위’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논문이 통과되어 교수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은 그의 대표작 ‘The Cost of Discipleship(제자직의 대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는 ‘나를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The life of discipleship can only be maintained so long as nothing is allowed to come between Christ and ourselves—neither the law, nor personal piety, nor even the world. The disciple always looks only to his master, never to Christ and the law, Christ and religion, Christ and the world. He avoids all such notions like the plague. Only by following Christ alone can he preserve a single eye (제자도는 율법도, 개인의 경건도, 세상도, 그 밖에 어떤 것도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들도록 허용되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다. 제자는 항상 그의 주인만 바라보지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스도와 종교, 그리스도와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이 그런 개념을 피한다. 제자는 오직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눈을 지켜 나갈 수 있다).”
여러분, 본회퍼가 말한 ‘하나의 눈을 보존한다 혹은 지킨다(preserve a single eye)’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두 개의 눈이 있는데요. 이 두 개의 눈을 가지고 각각 다른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두 개의 눈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회퍼가 말하는 ‘a single eye’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의 눈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 즉 주님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제자직’의 핵심입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대부분의 번역 성경들은 이 말을 “You must deny yourselves”라고 번역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이 말씀이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너희들의 이기적인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야 한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에 대하여 “아니요(No)”라고 대답하고,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예(Yes)”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뜻 안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면, 내 마음이 위로받을 것 같습니다. 디모데만큼 여러분에 대해 걱정하고 마음 쓰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디모데의 인품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2:19-22) 이기주의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인간의 본능(本能, nature)입니다. 원래 우리가 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연단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우리가 이기주의를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Timothy has proved himself. Like a son with his father, he has served with me in preaching the Good News(디모데는 자기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나와 함께 섬겼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심지어 디모데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디모데후서 1:4). 그리고 바울은 그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디모데에게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디모데후서 4:9, 21).
디모데가 이기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위에서 소개했던 본회퍼는 어떻습니까? 독일의 나치주의가 극성을 부릴 때 본회퍼를 잘 아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를 비롯한 미국의 신학자들이 본회퍼를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로 초빙했습니다. 그들 생각에 본회퍼를 독일에 그냥 두면 결국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본회퍼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 때가 1939년, 그의 나이 33살 때였습니다. 교수 초빙을 수락하고 독일로 돌아가지 않으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 때 그가 라인홀드 니버에게 쓴 편지가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그가 쓴 글 속에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 글을 한번 보세요. “I have come to the conclusion that I made a mistake to coming to America. I have to live through the difficult period of our national history with the Christians in Germany. I will have no right to assist with the restoration of Christian life after the war in Germany if I do not share the trials of this period with my people(내가 미국에 온 것이 실수였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사의 어려운 시기를 내 조국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겪어야 합니다. 이 시련의 시간을 내 민족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나는 전후 독일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회복을 도울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매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23, 26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전쟁과 질병과 가난이 끊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우리와 상관없다고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고난에 참여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직’입니다. 제자의 삶 그 어디에도 이기주의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cheap grace)’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본회퍼의 말을 들어볼까요? “Cheap grace is grace without discipleship, grace without the cross, grace without Jesus Christ, living and incarnate(값싼 은혜는 제자직이 없는 은혜이고, 십자가 없는 은혜이고, 살아 있고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불가능하게 보여도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밭에 묻힌 보물(마태복음 13:44)’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을 갈다가 땅 속에 많은 보물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 밭에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삶’이 꼭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직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찌보면 그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산 사람처럼 어리석게 보입니다. 주님은 제자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들(those who lose their lives)’처럼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자기 생명을 건지는 사람들(those who save their lives)’이라고 하셨습니다(24절).
여러분이 잘 아는 C.S. 루이스(C.S. Lewis, 1998-1963)가 그의 대표작 ‘Mere Christianity(순전한 기독교, 1952)’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Until you have given up yourself to Him, you will not have a real self(그리스도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릴 때까지 당신은 진정한 당신 자신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직’을 굉장한 것으로 말할지 모르지만, ‘제자직’은 소수의 사람들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삶이 아닙니다. ‘제자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인간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