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2022 |
물문 앞 광장에서 (The place in front of the Water Gate)
유민용 목사
느헤미야 8:1-12
1 <에스라가 율법을 읽다>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왼쪽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습니다. 5 에스라가 율법책을 폈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데에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7 낭독을 듣기 위해 서 있는 백성들에게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가 율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8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1 all the people assembled with a unified purpose at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They asked Ezra the scribe to bring out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had given for Israel to obey.2 So on October 8[a] Ezra the priest brought the Book of the Law before the assembly, which included the men and women and all the children old enough to understand. 3 He faced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from early morning until noon and read aloud to everyone who could understand. All the people listened closely to the Book of the Law.4 Ezra the scribe stood on a high wooden platform that had been made for the occasion. To his right stood Mattithiah, Shema, Anaiah, Uriah, Hilkiah, and Maaseiah. To his left stood Pedaiah, Mishael, Malkijah, Hashum, Hashbaddanah, Zechariah, and Meshullam. 5 Ezra stood on the platform in full view of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him open the book, they all rose to their feet.6 Then Ezra praised the Lord, the great God, and all the people chanted, “Amen! Amen!” as they lifted their hands. Then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the Lord with their faces to the ground.7 The Levites—Jeshua, Bani, Sherebiah, Jamin, Akkub, Shabbethai, Hodiah, Maaseiah, Kelita, Azariah, Jozabad, Hanan, and Pelaiah—then instructed the people in the Law while everyone remained in their places. 8 They read from the Book of the Law of God and clearly explained the meaning of what was being read, helping the people understand each passage.9 Then Nehemiah the governor, Ezra the priest and scribe, and the Levites who were interpreting for the people said to them, “Don’t mourn or weep on such a day as this! For today is a sacred day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the people had all been weeping as they listened to the words of the Law.10 And Nehemiah[b] continued, “Go and celebrate with a feast of rich foods and sweet drinks, and share gifts of food with peopl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is a sacred day before our Lord. Don’t be dejected and sad,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11 And the Levites, too, quieted the people, telling them, “Hush! Don’t weep! For this is a sacred day.” 12 So the people went away to eat and drink at a festive meal, to share gifts of food, and to celebrate with great joy because they had heard God’s words and understood them. (New Living Translation)
설교 본문을 묵상하며 제 마음이 머문 곳은 총독 느헤미야도 학사 에스라도 아닙니다. 물문 앞 광장에 나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복받쳐 울던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곳 보스턴에 와서 매주일 제단에 올라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제 마음 한켠에 울컥한 마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익숙한 지역과 환경을 떠나 낯선 곳에 있어서도 아니고,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도 아닙니다. 현재의 시간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스 1:1) 여호와의 손길을 증거하며 성전을 재건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때에도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방나라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성벽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본문의 말씀 안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역사속에서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우리를 도우심을 믿음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가 다르고 사람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맞는 은혜가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끝까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동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를 졸업 한 사람들, 한 스승에게서 배운 사람을 이르는 말이죠. 우리는 선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통과한 문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되려면 주님의 DNA를 닮아가며, 주의 바른 교훈을 듣고 실천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문을 함께 통과해야 합니다. 주님이 인생의 문을 여시지 않으면 내 앞에 닫혀진 문은 벽에 불과한 것이지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오는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갈망이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황금문으로 불리는 동쪽문을 통하여 성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황금문에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데, 하나는 ‘자비의 문’ 또 다른 하나는 ‘회개의 문’으로 불리는 문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동쪽 문(황금문)으로 들어간 뒤 문이 닫혀 다시는 열리지 않으며, 메시아가 올 때 에야 문이 열린다고 생각했습니다.(에스겔, 44:1-3). 그래서 문제는 유대인과 무슬림은 지금도 메시아가 예루살렘 성전 동문을 통해 온다고 믿고 있기에 에루살렘을 점령한 무슬림은 801년 이후 예루살렘 성 동문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다가 1102년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의 승리로 다시 이 문을 열었지만 무슬림에 의해 다시 폐쇄되었지요. 현재는 무슬림들이 예루살렘 성 동문 앞을 공동묘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부른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히브리서 10장 19. 20절을 보면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히 10:19-20)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 다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도행전 17:24).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놓으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문은 닫을 자가 없고, 그 길은 막히지도 않는 길입니다. 그 문은 누군가를 짓밟고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부르심을 받는 청지기들이 사명을 완수하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10개가 있었습니다. 10개의 문들 가운데 ‘물문’은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하나로 물을 실어 나르던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느 3:26) 이 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이 광장은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서는 10개의 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물문’을 7번째 소개하고 있습니다. 7번째 언급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1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죄의 영향력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경외감이 사라지면 가던 길에서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경외감은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밖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느헤미야를 통하여 다시 부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다른 선지자들 처럼 제사장의 가문도 아니었고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와 개인적인 경건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던 인물입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7장에 보면 그는 기도로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8장부터는 영적 회복의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이 모였습니다. 말씀은 삶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한계상황에서도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살아납니다. 말씀은 information(지식전달)이 아니라 formation(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태양계에 점에 불과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먼지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spiritual formation’(주의 성품으로 닮아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살아납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도 말씀을 연구하다 보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 이해 할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씀을 갈망하다 보면 말씀의 신비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읽었으니 대략 잡아도 한 6시간 이상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말씀을 향한 목마름과 하나님의 말씀이 만나게 되면 새역사가 시작되지요. 목마른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갈망하는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 지는 것이고, 찬양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며, 기도는 생수의 강이 입술을 통해 넘쳐나는 것이지요.
인류역사에 있어서 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인류의 기원에 있어서 물은 생존이며 생명입니다. 물에 담긴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정화(Wash)시키는데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가 됩니다. 주의 보혈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깨끗함이 있지요. 그래서 세례수에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홍해의 사건인 ‘구원’과 노아의 방주때 40주야 비를 내리시며 물로 의인과 악인들을 가려 내시는 ‘심판’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가득찬 세상을 정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으로 접속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물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기가 넘치고 (Refreshment) 생명의 물을 마시는 자는 성령 안에서 새 삶을 발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비싸도 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합니다. 과거에 물을 사 먹게 될꺼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웃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좋은 물을 사서 마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것 뿐입니까? 누릴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없습니다. 더 편리함을 찾는 세상이지요. 채우고 가져도 우리의 마음은 다른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채울수록 결핍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영적으로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갈망하지만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단 위에서 말씀을 낭독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게 되고, 매일의 양식을 통하여 영적 굶주림과 배고픔이 채워집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 ‘프리츠 크라이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악기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악기 상에서 자기가 정말 원하는 악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악기상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악기를 팔지 말라고 내가 돈을 모아 오겠다고, 그런데 그 금액이 너무 커서 수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돈을 다 모아서 악기 상에 왔더니 그 악기가 바이올린 수집가에 팔리고 없는 겁니다. 수소문 하여 그 사람 집에 찾아가 악기를 자기에게 팔라고 하니 거절합니다. 그래서 한 번만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 청을 하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부자의 얼굴이 점점 변하더니 마침내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바로 이 바이올린의 주인이셨군요. 제가 이 악기의 행복을 위해 주인에게 이 악기를 돌려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연주자이십니다. 내 삶을 연주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신앙을 조율하십시요. 하나님은 인생을 통해 놀라운 음악을 연주하실 것입니다. 저는 매주 성가대의 찬양을 들을 때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전부를 드려 노력하고 공부한 것을 드리는 자리이기에, 믿음을 표현하는 자리이기에 기쁨과 은혜가 차오릅니다.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배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같아서 그 마음으로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소리가 커지는 것을 줄이고 함께하는 동행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며 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되면 경배의 모습, 예배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영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도록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초대하며,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입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니 백성들의 마음에 감정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 그 동안의 아픔도 상처도 흘러 나갑니다. 눈물을 통해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눈물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요. 주일은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받아 누리는 기쁜날 인것입니다. 기쁜날 사랑의 교제를 하실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더없는 기쁨의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슬픈 감정들은 내려놓고 기쁨으로 살아가라고 그 눈물을 자제 시킵니다. 말씀에 기초해 은혜를 받으면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고, 회개하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순종함으로 삶의 자리로 나아가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주의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11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12 그러자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었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들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 ‘힘’이란 단어의 원어는 ‘마우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이 ‘방파제’라는 뜻입니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답지요. 하지만 숲속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곤충, 벌레들, 부러진 가지들, 버려진 쓰레기도 눈에 들어옵니다. 꽃들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땅속 밑은 거칠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태풍과 비바람으로 부터 지켜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에 심긴 뿌리들입니다. 캐나다 산림 생태학 교수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20년 이상 연구해온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뿌리들이 어둡고 거친 땅 깊은 곳에서 균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양지에서 자란 큰 나무들의 뿌리들이 음지에 있는 작은 나무들에게 뿌리를 통해 탄소를 나눠주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땅속 밑에서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교환하며 서로 소통하는 것이죠. 이 힘이 해충으로 부터 지켜내며, 숲을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땅을 디딛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이길 진정한 방파제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며, 서로가 돕고 베풀며 연약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생존에 밀려 낙오된 이들이 다시 일어 설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에 깊이 뿌리 내리며 거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의 신비속에서 서로 공생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비드가 시작되고 락다운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늘 가던 곳이 닫혀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마음도 서로를 향한 관심도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지요. 저도 그 시간에 늘 토론토에서 걷던 길이 있었습니다 매일 그 길을 걸으며 자연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구했습니다. 추운 겨울 성탄절이 다가오던 즈음에 언제나 걷던 그 길가의 큰 나무에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기뻐합니다. 어제는 그냥 걷던 산책길이었는데 누군가의 사랑과 섬김으로 따뜻한 산책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곳곳에 그런 사랑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환경과 역경들 가운데 진정한 교제 가운데로 나와서 아픈 삶을 드러내시며 말씀으로 위로 받고 깊이 뿌리 내리십시요. 하나님의 집은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연결되어 유지되고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영혼이 기쁨을 누리시기 축복합니다. 서로를 바라보시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채교수는 시카고 노스웨스턴대 종양내과 의사입니다. 그는 말기암 희귀암 전문의인데, 실제 병실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Can I pray for you?)’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이 말이 책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하는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랑이 없는 마음에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셔서 아프고 피곤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진료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매달린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겸손, 이 가난한 마음이 없이는 나에게 소망이 없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나는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쭐해 하고 잘난 사람을 보고는 우울해 했다. 배후에는 엘리트들이 놓 지 못하는 자기사랑, 자기연민이 있었다. 자아가 없어진 공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고, 비로소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 옆에서 끝까지 옆에서 마라톤을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완주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자아가 깨어진 곳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사랑이 필요한곳에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우리가 만나는 지체들에게 많은 말보다 이 한마디로 마음을 전할수 있는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