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2022 |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옵니다 (The Day of Christ Is Coming)
유민용 목사
로마서 13:11~14
로마서 13:11~14
11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옴>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활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히 행동합시다. 난잡한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술 취하지 마십시오.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생활을 버리십시오. 다투지 말고 질투하지 마십시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쉬운성경)
11 This is all the more urgent, for you know how late it is; time is running out. Wake up, for 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12 The night is almost gone; the day of salvation will soon be here. So remove your dark deeds like dirty clothes, and put on the shining armor of right living. 13 Because we belong to the day, we must live decent lives for all to see. Don’t participate in the darkness of wild parties and drunkenness, or in sexual promiscuity and immoral living, or in quarreling and jealousy.14 Instead, clothe yourself with the presen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don’t let yourself think about ways to indulge your evil desires.(NLT)
여러분 어제 리뉴 집회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단정지을 수 없고 제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 받은 처음 자리를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개척을 하고 담임 목회를 시작했을 당시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고, 공감과 이해의 영역에서 조금 먼 듯한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년 컨퍼런스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화려한 무대와 수백명의 청년들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빛이 구석에 있는 작은 자들의 자리를 비춰 주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내면에 날서있던 감정들을 하나님께서 정리해 주시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힘으로 하면 못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기시에 주시는 힘입니다. 주방에서 묵묵히 음식을 만드신 그 섬김들, 밤잠을 설치며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미디어 사역과 전체 집회를 컨트롤 했던 스텝들. 기도의 자리에서 매주 간절함으로 함께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들,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을 섬겨준 찬양팀. 다음날의 집회를 준비하며 교회의 구석 구석을 치우고 정리한 우리 집사님들. 다 표현할수 없는 섬김이 리뉴 안에 가득했지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손해보는 일을 누가 자처해서 할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남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아낌없이 순종함으로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서 회복이 됩니다.
달력을 보며 벌써 한해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8월의 여름에 보스턴에 왔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현재의 믿음이 더 깊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우리는 예배 드리러 나왔다고 해서 주님 안에 있다고 전제해서는 안됩니다. 헌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건인데,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몰려오는 세속의 물결과 자기중심적 욕망에 휩쓸려 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간들이 무한하지 않기에 선택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재림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오는 때는 있지만 가는 때와 시기는 순서가 없습니다. 도적같이 온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거부할 능력을 주시며 죽기를 각오하셨지요. 십자가에서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시며 사랑의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옵니다. 주께서 오신다고 하신 시간표가 이미 2천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만큼 주께서 오실날이 가까워진 것이지요. 어둠이 깊어 질수록 낮이 가까워지는 것을 매주 마주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되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주님은 약속대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오심’과 ’하늘로 올라가심’의 시간표는 이미 성취되었고, 우리는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으로 살아가고 있느냐’이지요. 그래서 자기욕망에 흠뻑 취해 사는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Κρόνος)에 따라 가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선물로 주어진 ‘선사된 시간’(Καιρός) 속에서 불확실한 세상을 한걸음 한걸음 믿음의 균형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의 명예를 지켜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대강 대강 보내는 절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라는 뜻에서 보라색 스톨을 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주까지는 녹색 스톨을 하고 있었지요. 초록색은 생명을 더하고 성장과 소망을 표시하는 색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색깔이 달라지니까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줄 알았다구요. 그런건 아니구요. 절기별로 바꾸게 되는데 이번주부터 4주 동안은 보라색을 보시게 됩니다. 이 색은 오시는 왕의 위엄과 존엄을 의미합니다. 제가 다른 색으로 바뀔때 또 그 의미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대강절기를 보내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잠에서 깨지 않으면, 깨지 못할 때가 옵니다.
11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주어진 삶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저는 2010년 그 해를 잊지 못합니다. 외국에 나와 사랑하는 아버님을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 드리고 찬바람이 불던 그해 겨울 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운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무렵 성경대로 살아보자 외치시던 한국교회의 존경하던 목회자들이 한분 한분 별세하시는 소식을 들으며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제게 더 분명하게 주셨습니다. 주님의 시간표로 보니 이 땅에서는 슬픔이지만 하늘에서는 기쁜 날이었고, 주님의 품에 안기시는 믿음의 선배들을 잘했다 칭찬하시는 주의 음성이 제 안에 가득 찼습니다. 수고로운 삶을 살며 애썼다고 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그 시선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때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는 죄와 어둠의 행실들을 볼때에 주님의 때가 더 가까이 있음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표를 알지 못하면,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가 준비없이 깊은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신부는 한 명도 없을겁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너무도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의 과실을 맺기 위해 사명으로 타오르는 신실한 예배자들을 찾으십니다. 사명감은 영적으로 어두워져 가는 시대속에서 빛이 투영되게 하는 것이죠.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은총의 빛이 비춥니다. 그 은총의 빛은 우리의 눈에 주님의 눈물이 차오르게 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삶의 옥합을 깨트리고 여인처럼 주님 발앞에 머무르십시요. 신실한 예배지들은 그날을 꿈꾸며 완전한 평화가 임하게 되는 그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무감각해져 있다면 이제 깨어나십시요. 깊은 밤이 오기 전에 깨어 나십시요
시편 108편에서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전쟁을 앞두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울까요? 마음이 오그라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불안한 상황과 시간속에서 하나님만 섬기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선을 주께 두는 것이지요. 다윗은 그의 시선을 보좌에 계신 어린양께 두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12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갑옷은 언제 입지요. 전쟁을 할 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적군의 공격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갑옷을 입습니다. 죄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성도들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지요(엡 5:9) 예배자들은 이 갑옷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빛은 죽음이 가져오는 상처와 어그러진 관계, 어둠의 행실들을 폭로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일은 사실 무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육체의 정욕을 거스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손해를 보게 되는 일도 경험하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빛의 갑옷은 세상을 향해 저항하게 합니다.
“한 처녀가 등대지기에게 시집왔습니다. 총각의 이름은 제이콥 워커(Jacob Walker)였습니다. 이 두 젊은이는 등대하나만 있는 외딴 섬 로빈스 리프(Robins Reef)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신부는 이런 데서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1개월간이나 짐을 풀지 않았으나 혼자 떠날 수도 없어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3년 뒤에 남편 제이콥은 폐렴이 되어 스태튼 아이랜드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하기 전에 제이콥이 남긴 마지막 말은 등대에 마음을 써달라.(Mind the light)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시체를 등대에서 보이는 언덕 위에 묻고 20대인 워커 부인은 등대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번 섬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북바쳐 오르는 고생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만 70세까지 41년간을 이 여성은 혼자서 등대를 지켰던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려는 때마다 언덕 위에서 등대에 마음을 쓰라는 남편의 음성이 그녀의 발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이 시대가 어떻습니까? 미디어 안에 음란과 죄악의 열매들이 얼마나 가득합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에 중독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음란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수많은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인터넷의 발전으로 음란물은 더 은밀하게 찾아오고 너무도 가까이 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접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넘어서야 했다면 이제는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인터넷 기사만 보아도 도처에 음란물 광고가 뜹니다. 스스로 구하지 않아도 찾아오는데, 찾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광활한 어둠의 세계가 열려지겠습니까? 그래서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질 때 즉시 회개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살전 5:22) 회개를 통해 순결한 옷을 세탁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옷은 더러워 지고 그리스도의 음성은 희미해 질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세상속에서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원수의 위협에도 신실함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고백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택하지 마십시요.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 빛의 갑옷을 입고 기다립시다. 오늘은 예배를 드린 후에 주님의 마음으로 인사와 교제를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다가올 때에 케임브리지 공동체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때를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다른 모습도 인정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각자 다르게 지어 주셨습니다. 당신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칭찬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함과 진실함을 드러내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육신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사단이 40일간 예수님을 유혹한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인 욕망들입니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 지배하고 싶은 욕망, 매직 같은 인생을 꿈꾸는 욕망들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버리는 것은 광야의 훈련입니다. 우리의 옛 생활, 어둠의 습관, 나의 고집과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절개 수술하는 것처럼 도려 낼 때에 아픔과 통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잘렸던 부위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두려워 말고 이전에 해 오던 습관의 옷을 버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기로 결정하실 때 죽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죽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깨어진 세상을 선택하고 죄를 선택하고 돈을 선택하고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지만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스스로 죽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주님이 날마다 입혀 주시는 옷으로 마음의 옷장을 채우십시요. 부패하고 썩어질 것들을 옷장에서 꺼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고독한 기도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끌어 안으시기 위해 자신을 아들을 죽게 내버려 주시면서 까지 주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세상속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영광에서 멀어진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질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은 성어거스틴을 변화시킨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의 뒤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수년동안의 눈물의 기도에도 어거스틴은 여전히 방탕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지요. 답답했던 어머니는 교회의 감독을 찾아갑니다. 어거스틴을 만나서 타이르고 혼내서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 것이지요. 감독은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스스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끈질기게 매달리는 어머니에게 감독은 말합니다.“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이렇게 눈물을 뿌리는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방황하며 죄의 열매를 맺고 지내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입었던 빛의 갑옷은 어두움에 거하던 아들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유언입니다 “내 몸은 어디에 묻어도 좋다. 그 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 단 한 가지만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하나님에게는 먼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에 나를 부활시킬 장소가 어디인 줄 모를까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저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줄것이 이것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녀들에게 우리의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제단앞에서 우리를 기억할수있는 그런 삶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