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18-27, 골로새서 1:18

18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안에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19 모든 것이 하나의 지체뿐이라면 몸은 어디 있겠습니까? 20 그러나 지금 그런 것처럼 지체는 많아도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너는 내게 필요 없어!”라고 없으며, 머리가 발에게 “너는 내게 쓸데없어!”라고 말할 없습니다. 22 이와는 반대로 몸에서 약해 보이는 부분이 오히려 요긴하며, 23 몸에서 고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를 우리는 더욱 고귀하게 대하고 볼품없는 부분들을 품위 있게 꾸밉니다. 24 반면에 우리 중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부분들은 특별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지체들을 함께 모아 부족한 지체들에게 더욱 영광을 주셨습니다. 25 그래서 우리 몸에 나뉨이 없게 하시고 몸의 여러 지체들이 서로 돌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26 몸의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사람 사람은 몸의 지체입니다.(쉬운성경)

1:18 그분은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또한 모든 것이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죽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살아나셨으므로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십니다. (쉬운 성경)

18 But our bodies have many parts, and God has put each part just where he wants it. 19 How strange a body would be if it had only one part! 20 Yes, there are many parts, but only one body. 21 The eye can never say to the hand, “I don’t need you.” The head can’t say to the feet, “I don’t need you.” 22 In fact, some parts of the body that seem weakest and least important are actually the most necessary. 23 And the parts we regard as less honorable are those we clothe with the greatest care. So we carefully protect those parts that should not be seen, 24 while the more honorable parts do not require this special care. So God has put the body together such that extra honor and care are given to those parts that have less dignity. 25 This makes for harmony among the members, so that all the members care for each other. 26 If one part suffers, all the parts suffer with it, and if one part is honored, all the parts are glad. 27 All of you together are Christ’s body, and each of you is a part of it.(New Living Translation)

18 Christ is also the head of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He is the beginning, supreme over all who rise from the dead. So he is first in everything. (New Living Translation)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마을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에 있는 대성당까지의 거리가 대략  800㎞라고 합니다. 이 길은 하루에 20~30km를 걷는다고 가정해 보면 약 30~35일이 걸리게 됩니다. 긴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이들은 성찰의 여정을 갖게 됩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아마도 그 걸음에는 자신들의 삶의 다양한 스토리가 함께 하고 있을 겁니다. 삶의 낙심과 가지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 끝없는 외로움, 허전함의 마음들은 그 길을 걸으며 또 다른 여유와 평안함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존번연(John Bunyan1628-1688)은 침례교 목사이자 천로역정의 작가입니다. 영국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서 대장장이 일을 하며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청교도 혁명에 의회군으로 참여하며, 내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지요. 이때 번연은 동료가 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천로역정 안에 구원받기 위해 괴로워 하는 기독교인들이 아름다운 집을 향해 언덕 꼭대기 십자가에 도착하자 마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은 아래로 떨어지고 그들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안에 있는 은혜의 개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사순절기에 매년 지키는 40일 영적 순례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기도의 자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자리에 친히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사순절기를 통하여 우리의 무거워진 짐을 내려놓고 말씀으로 평안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사순절기를 준비하며 제 마음을 두드린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인데요.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땅끝에 있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교우들이 생각났습니다. 교우들을 위한 기도가 마칠때즘에 교회는 고통 당하는 지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제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해 지쳐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삶에 거친 풍랑이 불어와 위기를 만난 지체들이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믿음 생활을 하다보면 곤고한 날도 찾아 오고, 근심과 걱정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날들도 찾아오기도 합니다. 밤이 깊은 긴터널을 통과하다 보면 몸이 피곤하고, 영혼이 낙심 되면 길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때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힘은  믿음으로 서로가 떠 받쳐 주는데서 나옵니다. 믿음은 고난 당한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땅끝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께 절실히 기도하게 됩니다. 사순절 십자가에 우리의 영혼을 걸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도 짐이 될 것입니다. 이 시기를 통해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로보는 이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삶의 문이 열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십자가 아래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교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부모의 품을 잃어버린 지체들이 하나님의 품을 느끼게 해주며, 낯선 땅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이 아름다운 여정을 향해서 다시 걸을 있는 힘이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즉 그리스도의 몸을 비유하며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거나 또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두고 등급을 메기며 교만의 방편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받은 은사가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다른 은사를 가진 이들에게 기도의 깊이를 모른다고 무시한다면 공동체는 분열이 되는 것이죠. 예언을 하는 이들은 방언만 하는 이들을 열등하다고 말하고, 병을 고치는 사람은 섬기는 은사를 받은 분들을 낮게 평가한다면 은사는 분열의 도구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주신 은혜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도구입니다. 은사를 분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성령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공동체를 흔들리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을 이루어야 한다고 편지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지체들이 통일성을 이루며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을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는 지체들입니다.

18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몸 안에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19 모든 것이 하나의 지체뿐이라면 몸은 어디 있겠습니까? 20 그러나 지금 그런 것처럼 지체는 많아도 몸은 하나입니다.

인간의 몸은 여러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피곤한날에는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아파옵니다. 잠시 쉬면 금새 또 괜찮아집니다. 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십자가 보혈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몸은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해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겨 주셨고 한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지체들이 교회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서로 신비로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위해 섬기고, 마음을 다해서 서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주일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며, 성찬을 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고백하는 세계 모든 교회는 공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공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공통의 분모를 지닐 때에 서로에게 속하게 되고, 그리스도께 기대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거룩한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또한 모든 것이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죽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살아나셨으므로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십니다. ( 1:18) 교회의 으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는 이들은 새로운 삶을 살며,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은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것을 보시고,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치워버리고. 3일 만에 다시 성전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에 비로소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했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부활의 생명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세포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망가지게 하는 세포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으로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순결한 마음은 분열하는 마음을 들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이지요. 외적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몸을 해치는 세포들이 많이 생기면 결국은 교회공동체의 질서가 파괴됩니다. 유기적 생명의 관계가 유지되려면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세포들이 왕성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판단과 정죄, 분열과 분리, 위선과 형식주의 신앙 안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생기가 없는 것은 몸속에서 병이 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할까요?

첫번째 특성은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참된 것이란 부족한 지체들을 사랑으로 설득하며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눈이 손 더러 필요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손이 칼에 베이거나 다치게 되면 입은 자연스럽게 그 아픔을 표현합니다. 눈에서도 눈물이 나오게 되지요. 이것이 사랑 안에서 서로가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 전체가 아픔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어떤 반응도 없다는 것은 연결이 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두번째 특성은 개개인의 성도들이 다른 영적인 은사를 풍성하게 계발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체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사는 뜻에 맞게 덕을 세우며 주님을 높이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뤄가는 것이기에 다양성 가운데서도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번째 특성은 교회는 강력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1세기 지중해 연안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유인도 있고, 종들도 있었습니다. 헬라어는 사용하는 사람들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피부색도 출신과 고향도 달랐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그런데 교회는 한사람을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께 소유된 백성이지요.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비를 얻는 사람들입니다.(벧전2:10) 성령의 역사를 통해 문화, 신분, 인종, 성별, 지위의 벽이 완전히 무너져야 합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교제를 통해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속의 교회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반대로 교회속에 세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포용하지 않는 것은 한 몸인 지체들이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기 비판의 능력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속의 구별된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무교회주의자처럼 행동합니다. 이것도 교회속에서 세상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독립적으로만 행동하는 신앙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둘째로, 교회는 부족한 지체가 더 존귀해져야 합니다.

22 이와는 반대로 몸에서 더 약해 보이는 부분이 오히려 요긴하며, 23 몸에서 고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를 우리는 더욱 고귀하게 대하고 볼품없는 부분들을 더 품위 있게 꾸밉니다. 24 반면에 우리 몸 중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부분들은 특별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지체들을 함께 모아 부족한 지체들에게 더욱 큰 영광을 주셨습니다. 25 그래서 우리 몸에 나뉨이 없게 하시고 몸의 여러 지체들이 서로 돌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회사나 기업이 아닙니다. 교회는 갑을관계나 상하관계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은혜 아래에서 형제 자매가 동일한 인격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는 사회적인 지위로 판단하거나 우열을 가려서도 안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들이 서로이 든든한 토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절망의 무게를 지닌 지체들이 하늘의 희망을 노래하도록 힘이 되어 주고, 그들의 고된 삶에 주님의 빛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연약한 사람들, 유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요긴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몸에서 고귀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지체를 더욱 고귀하게 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내게 부족한 신체 부위를 더 아름답게 꾸미게 되지 않습니까? 볼품없는 부분들은 더 신경이 쓰이고 몸의 여러 지체들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까? 아름다워지는 것은 날마다 부족한 부분을 꾸미기 때문입니다. 몸의 일부분 중에 아픈 부위가 생기면 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고 치료를 받는 이유도 아픈 부위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이의 허물이 보인다면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님의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한몸을 이루며 연약한 지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도록 섬기십시요. 섬기는 당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몸속에 오장육부라는 장기는 약하기 때문에 몸의 안쪽에 배치하셨습니다. 대부분 기관들은 약한 것들은 몸속에 있습니다. 귓속에 있는 작은 달팽이 관 한개의 이상만 생겨도 어지러워서 몸 전체가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신비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몸의 기관들은 서로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서로에 대한 헌신 위에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교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25 그래서 우리 몸에 나뉨이 없게 하시고 몸의 여러 지체들이 서로 돌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26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몸의 한 지체의 고통을 함께 당하라는 말씀 안에는 고통받고 있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의 백성은 순례의 길에서 서로가 도와주고, 떠받치고 부축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교회로 받아 들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는 개개인이 전체라 주장할수 없지만 각각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교회안에서 우리는 지치고 고된 인생을 사는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노크를 하고 문밖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디. 아픈 마음을 곁에서 이해해 주고, 때로는 기다림 가운데 선한 영향력으로 곁에 있어주면, 몸의 한 지체들이 공동체 안에서 홀로가 아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공동체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숙한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교칙을 배우며 사회성을 습득하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은혜의 통치 아래 공동체성을 배워나가도록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삶의 자리에서 진정한 작은 교회가 되어가는 과정을 감당하게 될때에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아는데 기도의 힘은 아는데 기도해도 말씀 안에 있어도 여전히 우리의 연약한 본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대로 살때에 나의 삶의 모습이 누군가를 지켜낼 힘이 되고 연약한 이들이 딛고 올라갈 언덕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가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존재 자체를 먼저 인정해 주시고, 교제하는 모든 지체들이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점점 고독해지고 외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짐으로 인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던 정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지만 죽은 물고기는 물결따라 흘러갑니다. 케임브리지 교우들은 세상속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수없이 많은 만남과 삶의 현장에서 작은 교회가 되어가는 은혜를 누리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지체들과 사순절 기간의 깊은 영적 순례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인생의 깊은 밤이 정말 길다고 느껴지고 삶이 너무 고되다고 느낄때마다 내가 선택한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끌어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들이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수 있도록 함께 사랑으로 이 길을 걷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