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15-19, 24-27

15 그러나 여러분은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오. 여러분은 오늘 스스로 선택하시오.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유프라테스 강 저쪽에서 경배하던 신들을 섬길 수도 있고, 이 땅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을 섬길 수도 있소. 그러나 나와 내 후손은 여호와를 섬기겠소.16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17 우리는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여호와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땅에서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으며, 우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또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물리쳐 이기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이 곳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을 물리쳐 이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9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를 잘 섬긴다고 하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오. 왜냐하면 여호와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오. 또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오. 만약 여러분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죄를 짓는다면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오……24 그 때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겠습니다.25 그 날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백성이 지켜야 할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이 일은 세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6 여호수아는 이 일들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큰 돌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소 근처에 있던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27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이 돌을 보시오 이 돌은 우리가 오늘 한 일에 대해 증거가 될 것이오. 여호와께서는 오늘 이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소. 이 돌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기억나게 해 줄 것이오. 이 돌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저버리지 못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오.(쉬운성경)

 15 But if you refuse to serve the Lord, then choose today whom you will serve. Would you prefer the gods your ancestors served beyond the Euphrates? Or will it be the gods of the Amorites in whose land you now live? But as for me and my family, we will serve the Lord.”16 The people replied, “We would never abandon the Lord and serve other gods. 17 For the Lord our God is the one who rescued us and our ancestors from slavery in the land of Egypt. He performed mighty miracles before our very eyes. As we traveled through the wilderness among our enemies, he preserved us. 18 It was the Lord who drove out the Amorites and the other nations living here in the land. So we, too, will serve the Lord, for he alone is our God.”19 Then Joshua warned the people, “You are not able to serve the Lord, for he is a holy and jealous God. He will not forgive your rebellion and your sins. ……….

24 The people said to Joshua, “We will serve the Lord our God. We will obey him alone.”25 So Joshua made a covenant with the people that day at Shechem, committing them to follow the decrees and regulations of the Lord. 26 Joshua recorded these things in the Book of God’s Instructions. As a reminder of their agreement, he took a huge stone and rolled it beneath the terebinth tree beside the Tabernacle of the Lord.27 Joshua said to all the people, “This stone has heard everything the Lord said to us. It will be a witness to testify against you if you go back on your word to God.”( New Living Translation)

 

신앙생활에는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애벌레가 어느 순간이 되어 껍질을 탈피하고, 날개를 펴서 하늘을 날게되는 시점이 전환점입니다. 과거를 매듭 짓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발돋음 하는 것도 전환점입니다. 성도들에게 구원의 경험도 전환점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관성적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영으로 호흡하며 날마다 은혜의 삶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피조물임을 자각하는 순간,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용서 받아야만 살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은 마음의 할례라는 것은 성결해진 영혼의 습관적 성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 성도들은 새롭게 태어난 증표들로 마음의 재형성이 이뤄집니다. 이전에는 마음 안에 거룩함이 없었는데, 내면에 거룩한 감정들이 차오르니까 그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이후에 거룩한 습관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살아내며 예수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지역의 길갈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사건은 할례의식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의 여정을 완수했지요. 가나안 땅을 정복했고, 각 지파들에게는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출애굽 이후 60년의 세월이 지나며 1세대들은 가나안을 앞두고 모세를 비롯해 다 죽게 되었고, 2세대는 여호수아처럼 나이가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 3세대는 출애굽의 구원과 광야의 고난을 경험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세겜 지역에 불러 모으고, 고별설교를 한 것은 모든 백성들의 믿음을 다시 한번 점검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언약식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애굽으로 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적을 행하셨고, 광야길을 걷는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설교한 것입니다. 이곳 가나안 땅을 얻게 된 것도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들을 쫓아 내신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난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고별설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애굽의 400년 종살이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길도 없는 거칠고 황량한 광야에서 인도하신 은혜를 잊지 말아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경험하지 않는 세대들은 가나안에 들어와 모든 것이 넉넉한 상황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과 여호수아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온도차이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지파별로 땅도 할당 되었으니, 훗날 지역적인 감정적 문제들이 생길테고, 가나안 지역의 신들과 신앙도 혼합되어 질 것이 염려되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기까지 가나안 땅에 있는 헤브론 지역과 세겜지역에 다 묻혔습니다. 이들은 나그네 같은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야곱도 죽기 전에 자신을 이집트가 아닌 약속이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합니다. 여호수아서 24 32절에 보면 요셉도 자신의 뼈를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와 그의 아버지 야곱의 땅인 세겜에 묻었다고 나옵니다요셉은 이집트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해 지면 무뎌지게 됩니다. 삶이 평안해지면 고생을 언제 했느냐고 잊게 되는 존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으로 다짐하고 결심해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익숙해지지 않도록 여러 통로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은혜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예배 드리는 자녀, 찬송을 고백하는 자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자녀들을 주목하십니다.

 

저는 지난주 코아부 팀장들이 준비한 새벽기도 특송영상을 보면서,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들을 눈에 담으며 몇번을 돌려 보게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지체들의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이 뭉클해 지더군요. “주를 섬기는 일에 후회가 없다는 찬양의 가사의 고백이 제게도 귀한 울림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단 앞에서 기억나는 삶을 살아 가자고 말씀을 전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말과 행동으로도 누군가에게 믿음의 도전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코아부 찬양을 듣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느끼고 나니 제 발걸음이 기쁨으로 기도의 자리로 향했습니다. 공동체가 주는 힘이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을 양육하는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번이 아니라 매일 아이들이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설레임으로 준비하고, 각팀의 리더들은 주를 섬기는것에 후회가 없음을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 사랑과 교제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할때에 현재에 보기에는 나의 선택과 다르고 가시밭길 같고 고난의 길 같아 보이나 지나고 보면 그 길은 우리를 믿음으로 성숙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매주일 강단에서 설교를 전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일입니다. 보다 편한 삶을 위한 본능적인 끌림을 거부해야 하기도 하고, 사명이 무거움이 아니라 진정한 기쁨임을 깨닫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말씀속으로 들어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에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주어진 삶에 다음에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말씀에 순종하는 일도 지금의 결단입니다. 누군가에게 생명의 싹을 틔어 주는 섬김도 다음에라는 말은 없지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바로 순종해 보십시오. 그 은혜는 여러분의 삶에 깊은 고백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지녀야 할 생각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은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오. 여러분은 오늘 스스로 선택하시오.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유프라테스 강 저쪽에서 경배하던 신들을 섬길 수도 있고, 이 땅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을 섬길 수도 있소. 그러나 나와 내 후손은 여호와를 섬기겠소. 16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섬기다라는 히브리어는 아바드עָבַד인데, 이 단어의 뜻은 예배하다, 따르다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많은 것이 다른 우리지만 우리를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게 하시고 한 뿌리로 거듭난 형제로 불러 주신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섬김은 곧 예배입니다. 세상의 차원에서의 섬김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향한 섬김의 자리와 세상속의 빛과 소금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섬김과 나눔, 돌봄과 이해입니다.

 

성경은 옛자아를 벗어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적당하게 믿고,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 많이 해도 나를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구원은 어떠한 조건없이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등지고 산 날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부어 주십니다. 섬김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예배할수록 그 은혜가 더 깊어 집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또 다시 못박는 존재임을 깨닫고 무너질때에 괜찮다하시는 큰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우리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걸림돌인지 아니면 디딤돌인지선명하게 알게 됩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은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년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상태를 보고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의 진멸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옛자아를 철저히 부인하는 구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2)라고 말씀하지요가나안 땅을 소유한 젊은 출애굽 세대들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도 우리가 변화시키면 되지 꼭 다 없앨 필요까지 있을까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은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여호수아는 신앙이 대대로 이어져야 하기에 하나님과 이방신 가운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와 내 후손은 여호와를 섬기겠소라는 신앙은 나만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십자가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19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를 잘 섬긴다고 하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오. 왜냐하면 여호와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오. 또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오.

 

하나님의 ‘질투’는 또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도함 받기 위해서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곳을 향하던 시선을 멈추고, 하나님의 마음 안에 머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민의 끝. 소유의 끝. 불평의 끝. 두려움의 끝에서 선택을 하면 또 다른 염려가 따라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잘 살고 싶은 욕망과 열심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 욕망이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싶은 욕망에서 누구도 자유롭지가 않습니다하나님의 뜻은 편가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된 삶을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복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겨울 한복판에서 따뜻한 봄이 새싹을 틔우며 생명을 알리는 것처럼 거친 세상에서 온기를 품고 살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우리에게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일. 내 것을 포기하고 들어 줄 수 있는 용기, 다투지 않고 화해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흉흉한 소식에 믿음 안에 의심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머무르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단단히 결속되어지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신앙에 안주하지 말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헬라어 프로네오: φρονέω 신약성경에 동사형으로 26번이 나옵니다. 주로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단어인데요. ‘생각하다, 질문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의 생각을 넘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뜻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남들이 그냥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십시요.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다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신비라고 부릅니다. 알면 알수록 더 깊어지고, 진리의 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이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생각속에 더 깊어지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 단어 중에 도키마조: δοκιμζω라는 단어는 분별하다:discernment’라는 뜻으로 성경( 12:2; 1:10; 요일 4:1)에 쓰여집니다. 이제껏 신앙생활을 하며 내가 믿는 말씀들 중에 경험시켜 주신 말씀들을 분별해 보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제대로 증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생활을 지켜 봅니다. 주일에 교회 나와서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예배 후에 돌아가며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부모의 물질관, 내세관, 세계관을 보고 배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자리에서 보여지는 믿음의 태도가 우리의 신앙의 상태입니다

 

셋째로, 신앙교육은 언약의 증거입니다.

24 그 때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겠습니다.25 그 날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백성이 지켜야 할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이 일은 세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6 여호수아는 이 일들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큰 돌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소 근처에 있던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27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이 돌을 보시오 이 돌은 우리가 오늘 한 일에 대해 증거가 될 것이오. 여호와께서는 오늘 이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소. 이 돌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기억나게 해 줄 것이오. 이 돌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저버리지 못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오.

 

인생은 믿음의 증거들을 삼는 시간입니다. 부모님이 평생을 살아오신 믿음의 발자취가 자녀들에게는 믿음의 돌이며, 공동체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도 증거의 돌입니다. 목회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며 목양하는 일도 증거의 돌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체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격려해 주는 일도 믿음의 돌을 남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삶 그래서 내 품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삶, 섬김의 발자취는 믿음의 돌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생명을 담는 예배가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시대와 세대가 급격히 변화되어 질수록 후손들에게 신앙교육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날 시대는 가치와 문화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사고가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살아가는 세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세대를 읽지 못해서도 안되고 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우상들은 시대마다 우리의 믿음을 유혹하지요. 이러한 빠른 변화속에서 신앙의 이어짐이 끊겨 버리게 되면 신앙의 미래는 없습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흘러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다음세대들을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걷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로의 사랑을 나눌수 있는 광장이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어울림의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음악 용어 중에 레가토(legato)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두개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라는 표시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혼자만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 수준의 믿음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레가토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충돌은 우월의식에 기초합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기 위해 엎드리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말 보다는 기도하고 엎드리며 삶을 살아내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배우고 아는 것에 그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생각에 주목해야 합니다. 새시대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이 겸손하게 함께 지어져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 믿음으로 살아내기를 결단하는 남자들의 예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모여 각자 세상에서 버려야 할 것들을 예배의 자리로 나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고백하는 모임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모여서 시작했는데 갈수록 인원이 줄어드는 겁니다.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믿음으로 결단하고 살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결단을 못할것 같아서 점점 인원이 줄었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살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이기에 때때로 무너지고 나약해져도 같이 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택할지 우상을 택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백하며 예수님의 가치를 붙들고 살아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평생에 가장 잘한일은 내가 예수님을 주로 섬긴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고백이 되어야합니다. 여호수아의 결단식을 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여호와를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5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고 나가실 때에 삶의 자리앞에 내가 교회됨을 기억하시며 걸음을 걸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