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023 | 종려주일
마지막만찬 (The Last Supper)
유민용 목사
마가복음 14:22-26
막14:22 <마지막 만찬> 식사를 하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23 또 잔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잔을 주어, 제자들이 마셨습니다.2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실 그 날이 올 때까지는 결코 다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26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22 As they were eating, Jesus took some bread and blessed it. Then he broke it in pieces and gave it to the disciples, saying, “Take it, for this is my body.”23 And he took a cup of wine and gave thanks to God for it. He gave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24 And he said to them, “This is my blood, which confirms the covenant[e] between God and his people. It is poured out as a sacrifice for many. 25 I tell you the truth, I will not drink wine again until the day I drink it new in the Kingdom of God.” 26 Then they sang a hymn and went out to the Mount of Olives.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40일 순례길도 이제 한주 남았습니다. 이제껏 함께 동행해 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리고, 참여하다가 멈추신 분들, 아직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도 고난주간 순례길은 지체들과 함께 동행해 주시길 권면 드립니다. 사랑하는 이의 격려가 평생 마음에 남는 것처럼, 어려울 때의 함께함이 든든함이 되는 것처럼, 우리 지체들에게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이 시간이 서로의 삶에 감사의 기억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대교 절기는 그들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축제’ 였지요.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이 애굽에서 해방시킨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이스라엘은 해방 된 민족이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을 격려하는 축제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유월절이 예수님에게 마지막 만찬의 자리인 것을 제자들은 알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매년 치뤄지는 이스라엘의 축제이고, 성대한 절기라고 생각했겠지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알아 차리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에 어린양의 고기 없이 떡과 포도주를 먹을때 성만찬의 의미를 말씀해 주셔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주님을 보며, 최후의 만찬에서 보이지 않던 어린양의 실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만찬은 환호성을 부르는 경기장이기 보다 모두가 떠난 뒤에 텅빈 경기장이 주는 고요함이 더 맞으리라 싶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자신을 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8절에 보면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꼭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니었어도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을 텐데 가롯유다는 스스로 뉘우칠 기회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마음에 선과 악을 구분할 분별력은 사라져 버렸고, 하나님의 계셔야 할 자리에 은30냥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이지만 신앙에 있어서 책임적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말을 남겨놓은 글을 유언이라고 합니다. 유언은 사람이 죽어야만 말씀이 효력이 있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잘 살아가기 위한 웰빙(wellbeing)의 삶에 주목하지요. 그러나 성도들은 믿음이 성숙해져 가는 성화(聖化, 거룩하여짐)의 삶, 웰에이징(wellaging)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날 밤에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섬김의 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후에 식탁의 자리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찬을 통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찬은 실제적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22-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 23 또 잔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잔을 주어, 제자들이 마셨습니다. 2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쏟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락방 식탁에서 하신 말씀을 열거한 이야기들을 제정사(Institutuon narrative)라고 합니다. 성찬(Eucharist)이라는 유카리스트 단어는 ‘감사를 드린다’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고, 역사하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심을 보여주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예수께서는 빵과 잔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감사 기도를 하신 후에 떡을 떼고 잔을 부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 빵과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평소에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매일을 살아있는 것도 생명을 주시는 분을 통해 생명을 얻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주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행해진 이 의식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심에 자리 잡았습니다.
설교는 듣는 것이고, 성만찬은 복음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우리 교회의 상황상 매주 할 수는 없지만 우리교회는 종려주일과 세계성만찬주일날 성만찬을 통해 주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교우들이 성찬에 초대됨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무엇이지 더 분명하게 경험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찬에 참여 하실때에는 ‘생명을 얻는다’는 말을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것임을 보여 주셨고, 이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라’하셨습니다. ‘살아내라’는 의미입니다. 라틴어로 ‘이테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 이제 예배는 끝났으니 세상으로 나가십시요’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양식이 되어 주셨으니 우리도 누군가의 양식 되어 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Liturgy after liturgy” 즉, “예배 후의 예배”입니다. 주일예배 때 말씀을 듣고 난 뒤에 교회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보여지는 예배가 시작됩니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 예배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연장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케임브리지 교우들이 매일을 살면서 ‘생명의 예배’가 더 분명하게 느껴지시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성찬에 참여하며 주님과 함께 걷고, 사는 경험을 보다 가깝게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빵, 잔 그리고 포도주의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가지고 있지 않는 다섯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Word, Water, Bread, Cup, Light 말씀, 물, 빵, 잔, 빛>입니다.” 오늘은 다섯가지 중에 빵과 잔 그리고 잔에 담긴 포도주에 대한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도 이것을 가지고 있지만, 거룩한 백성들은 이것이 은혜의 수단으로 현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성찬을 하지 않더라도 ‘떡과 잔’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장소가 거룩한 장소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느끼는 감각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우리는 성찬식 가운데 ‘빵’을 먹습니다. 주님께서는 축복하시고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떼어’라는 헬라어는 ‘에클라센’입니다. ‘조각으로 부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요. 이 빵은 채찍질 당하실 때 떨어져 나가는 ‘주님의 몸’을 가르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창에 찔리실 때의 주님의 찢겨진 몸을 가르킵니다. 우리는 빵을 뗄 때에 주님의 찢긴 몸을 생각해야 합니다. 막14:3을 보면 “…주께서 앉아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감송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병을 깨뜨려 주의 머리에 붓더라”(KJV) 옥합을 깨뜨려 그리스도의 발 앞에 부었던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신실하다고 칭찬 하셨지요. '깨뜨려'로 표현하는 원어의 뜻도 ‘부수다, 산산히 깨뜨리다,’ 등으로 표현됩니다. 완전히 부수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어져야 향유가 나오고 완전히 깨어져야 회개의 눈물이 쏟아집니다. 여러분과 제가 사랑하는 주님의 몸이 형용할 수 없이 깨어졌을 때 그의 보혈이 쏟아져 온 인류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순종이 깨어져야 순종이 나오고, 불신이 깨어져야 믿음이 나옵니다. 불평이 깨어져야 감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교만이 깨어져야 겸손이 나옵니다. 깨어지는 것은 일회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깨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어지는 것은 완전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은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잔’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 하셨습니다. 주님께 ‘잔’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 영혼의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어라."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요. "지금 나는 괴로워 죽을 것 같다. 여기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그리고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피할 길을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주님의 고통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올리브를 눌러 짜서 기름을 짜는 틀인데 ‘겟세마네’의 주님의 기도는 육체적 고통을 이기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 ‘잔’은 육신의 몸으로 달린 십자가 형벌의 고통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잔에 담긴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는 숙성이 되면서 포도의 성분이 변화가 됩니다. 포도 알갱이를 으깨어 짠 포도는 오랜 시간 숙성되어 성분이 변화가 되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고, 이기심이 변해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넘치는 곳에 믿고 뛰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새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생명과 행복이 넘치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빛과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내려 놓고, 마음에 섞여 있던 죄들을 말끔히 씻겨 버리십시요. 죄가 씻겨 질수록 부활의 생명은 더 선명해 집니다. 예수이 흘린 보혈은 죄 가운데 있는 사람도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미리 맛보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셋째로,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은 옵니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실 그 날이 올 때까지는 결코 다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26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새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논’는 ‘이전 것 보다 더 나은’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차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것 보다 더 좋고 새로운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성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혼인 잔치가 베풀어 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성찬은 종말의 축제를 앞당겨 즐기는 종교의식입니다. 종말이 축제인 이유는 생명이 완성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축제의 잔치를 미리 앞당겨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만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누구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 세리와 죄인들을 식사의 자리에 초대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버거울 때에 하나님의 그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명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님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주시고 지속 할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해 주십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새힘이 필요한 우리에게 주님은 가장 좋은 길로 완전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추운 겨울 십자가 붙들고 다시 예배하고 믿음으로 나아갈때 인생의 봄날은 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며 세상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시 결단합시다. 성찬의 식탁에 참여하는 교우들에게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의 무뎌진 믿음 생활을 깨우고 삶의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실한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일서4:7~11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으며, 그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 역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거룩한 성찬의 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에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