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2016 | 마가복음 강해설교 49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김태환 목사
마가복음 12:28-34
28 율법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논쟁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그가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30 네 모든 마음과 모든 영혼과 모든 뜻과 모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1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들보다 더 중요한 계명은 없다.”
32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고,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33 모든 마음과 모든 지식과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다른 모든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보다 더 중요합니다.”
34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지혜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 나라에 가깝구나.” 그 뒤로는 아무도 감히 예수님께 더 묻지 않았습니다. (쉬운성경)
28 One of the teachers of religious law was standing there listening to the debate. He realized that Je-sus had answered well, so he asked, "Of all the commandments, which is the most important?"
29 Jesus replied, "The most important commandment is this: `Listen,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the one and only LORD.
30 And you mu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all your mind, and all your strength.'① / ①Deut 6.4-5
31 The second is equally importan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① No other commandment is greater than these." / ①Lev 19.18
32 The teacher of religious law replied, "Well said, Teacher. You have spoken the truth by saying that there is only one God and no other.
33 And I know it is important to love him with all my heart and all my understanding and all my strength, and to love my neighbor as myself. This is more important than to offer all of the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required in the law."
34 Realizing how much the man understood, Jesus said to him,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And after that, no one dared to ask him any more questions.
성령강림절 후에 제자들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지난 몇 주간을 걸쳐 사도행전 말씀을 읽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7-8, 개역성경)”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또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면 됩니다. “But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you may ask for anything you want, and it will be granted!” (New Living Translation) 다른 번역 성경에는 ‘remain’이라는 말 대신 ‘abide’라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remain’이라는 말은 ‘산다’ ‘머문다’는 뜻이고, ‘abide’라는 말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모두 감수하고 그것을 떠나지 않고 충실하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주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맞게 충실하게 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성령이, 주님의 영이, 주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일이 없이는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주님의 영이 자기들에게 임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제자들은 전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기록입니다.
사도행전은 모두 28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28장 마지막 절이 이렇게 끝납니다.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꼬박 이 년을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쳤습니다.” (30-31) 뭔가 여기가 끝이 아닌 것 같은 여운을 남기는 ‘open-ended story’ 형식으로 끝이 납니다. 사도행전이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은 이제 저와 여러분과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속 사도행전의 기록을 쓰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와 이 교회는 이 시대의 사도행전 저자 (author)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결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그동안 잠깐 중단했던 마가복음 말씀을 읽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님, 모든 계명 중에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고 물었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 22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두 복음서의 말씀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이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질문했던 의도에 대하여 마태는 “One of them, an expert in religious law, tried to trap him with this question (그들 중에 율법 전문가 한 사람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이 질문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이 질문이 평범한 질문이 아니라, 이 질문에 잘못대답하면 그들이 파 놓은 덫 (trap)에 걸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않은가요? 그 많은 율법의 계명 중 어느 하나를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에 나오는 이 율법학자는 전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율법학자는 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 (an expert)’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서기관 (a scribe)’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직은 성경 두루마리를 카피 (copy)하는 것입니다. 꼼꼼하고 정교하게 카피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이들은 율법에 대한 많은 지식과 식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두개파 사람들의 질문에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과연 예수님의 입에서 어떤 말씀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어떤 의도로 질문했든지 상관 없이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느냐 하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신명기 6:4-5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Listen,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the one and only LORD. And you mu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all your mind, and all your strength.” 직역하면,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유일하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주 너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이런 뜻입니다. 간단히 이 말씀을 ‘쉐마 (shema)’라고도 합니다. ‘쉐마’는 “들으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phylacteries’라고 해서 작은 상자에 넣어서 손목에 맵니다. 이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reminder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항상 이 말씀을 낭송합니다. 유대인들의 집 대문에는 ‘메주자 (mezuzah)’라는 것이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속에도 이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집을 나가고 들어오면서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The second is equally important (이와 똑 같이 중요한 두 번째 것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18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하나로 통합 시키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윌리엄 버클레이 (William Barclay, 1907-1978)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대단한 저술가이고 탁월한 설교자입니다. 그의 저서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은 ‘Series of Daily Bible Studies’라는 것이 있는데, 모두 17권으로 된 것입니다. 신약성서 전체를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해설해 놓은 책입니다. Barclay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일 성경을 해설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해설했던 것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 17권의 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1955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그 당시엔 엄청난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버클레이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두 계명을 하나의 계명으로 말씀할 때까지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다 (No one until Jesus came took and put the two commandments together and made them one).”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문제와 인간을 사랑하는 문제가 같은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따로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따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생활을 병들게 하고, 건강하게 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동시에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주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믿음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내에서도 사람들과의 교제를 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교제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humanist들이 그렇습니다. 이웃에 대해서 selfish한 사람들이 많은 것만큼, 이웃에 대하여 humanist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인정도 많이 베풀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배가 아니고, 성경공부가 아니고, 기도가 아닙니다. 이웃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humanist들입니다. 크리스천 휴머니즘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과 인정이 자기들 속에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흘러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휴머니즘’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 율법학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옳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고,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모든 마음과 모든 지식과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다른 모든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보다 더 중요합니다.” (32-33절) 쉬운성경에는 그냥 “선생님, 옳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만, NKJV이나, NLT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이 “Well said, Teacher. You have spoken the truth (정말 잘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번역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그 다음에 나오는 이 사람의 말과 잘 연결이 됩니다.
유대인들의 제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물입니다. ‘희생 제물 (sacrifices)’과 ‘번제물 (burnt offerings)은 유대인들의 제사의 핵심입니다. 이 사람은 직업이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이 사람은 제물에 대한 세밀한 율법의 규정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평생 율법을 연구하면서도 한번도 이렇게는 생각하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희생 제물과 번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구나! 그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여러분, 자기가 평생 알아왔고, 평생 믿어왔던 지식과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울의 회심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율법에 대한 자기 신념을 바꾸었기 때문이잖아요? 이게 책상 앞에서 입으로만 했던 말이 아니라, 정말 그의 생애가 변화 되었잖아요? 지금 이 율법학자에게 사울의 회심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율법학자의 말을 한번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보세요. “Well said, Teacher. You have spoken the truth by saying that there is only one God and no other. And I know it is important to love him with all my heart and all my understanding and all my strength, and to love my neighbor as myself. This is more important than to offer all of the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required in the law (선생님, 참 잘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고 하시니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온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또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율법에서 요구하는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더 중요합니다)." (32-33절)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드렸던 번제물과 희생 제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드렸던 그 많은 번제물들과 희생 제물들, 이것이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것이 이 율법학자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 (You are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너의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설교 말씀 듣고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고, 잘못 살았구나” 이런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새롭게 배운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깨달은 것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무가 무화과 나무인지, 그 나무가 찔레나무인지,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6). 우리가 정말 진리를 들었고, 우리가 정말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열매가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율법학자는 하나님의 나라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 받은 대로, 깨달은 대로, 배운 대로 사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열매로 증명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