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023 | 성령강림후 제 6주
꼭 한번은 걸어야 할 길 (A path you must take…at least once)
유민용 목사
사도행전 18:1-11
18:1 그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갔다. 2 거기서 본도 출신의 ‘아굴라’라는 유대인을 알게 되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리자, 그는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얼마 전 이탈리아를 떠나 그곳 고린도에 와 있던 참이었다. 3 아굴라도 바울처럼 천막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그의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했다. 4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시키려고 애썼다. 5 그러던 중,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는,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여,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심을 힘차게 증거했다. 6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심하게 대들면서 욕설을 퍼부었고, 심지어 예수를 모독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바울은 항의의 표시로 자기 옷의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지라도 그것은 당신들의 책임이지,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소. 이제부터 나는 이방인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소.7 그 후 바울은 회당을 떠나, 회당 바로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서 지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8 한편,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는 자기 집안 식구들과 함께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9 어느 날 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침묵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 될 사람이 많다.”11 그래서 바울은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다.(쉬운말 성경)
1 Then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2 There he became acquainted with a Jew named Aquila, born in Pontus, who had recently arrived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They had left Italy when Claudius Caesar deported all Jews from Rome. 3 Paul lived and worked with them, for they were tentmakers just as he was. 4 Each Sabbath found Paul at the synagogue, trying to convince the Jews and Greeks alike. 5 And after Silas and Timothy came down from Macedonia, Paul spent all his time preaching the word. He testified to the Jews that Jesus was the Messiah. 6 But when they opposed and insulted him, Paul shook the dust from his clothes and said, “Your blood is upon your own heads—I am innocent. From now on I will go preach to the Gentiles.” 7 Then he left and went to the home of Titius Justus, a Gentile who worshiped God and lived next door to the synagogue. 8 Crispu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and everyone in his household believed in the Lord. Many others in Corinth also heard Paul, became believers, and were baptized 9 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and told him, “Don’t be afraid! Speak out! Don’t be silent! 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will attack and harm you, for many people in this city belong to me.” 11 So Paul stayed there for the next year and a half, teaching the word of God. (New Living Translation)
2000년 일본 혼다사에서는 인간처럼 걷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약 2000억원을 투입해서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두발로 걷는 로봇이었습니다. 그런데 움직임이 인간에 비하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이후 2017년도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아틀라스’라는 이족보행 로봇을 만들었는데, 두발로 걷는 움직임이 세계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한 평을 받고 있습니다. 2023년 개발된 ‘아틀라스’를 영상으로 보니까 그 움직임이 정말 인간과 흡사해 보입니다. 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성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일생은 참 신비롭습니다. 인생을 걸어가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신성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생의 길을 잘 걷도록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사렛에서 부터 갈릴리 바다 부근 팔레스타인 지역을 수차례 오고 가시며 보여 주셨고, 마지막 여정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그 길은 생명의 길, 치유의 길, 낮아지심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며 걸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리는 약 11만 마일입니다. 당시 교통수단도 없던 때였는데 바울을 이토록 걷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힘이 어디서 부터 왔을까요? 그리스도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을 따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며 주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믿음의 길을 생각해 보시며 오늘 말씀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경로들을 보면 그 안에 신약성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걸은 길은 우리로 하여금 훨씬 더 근원적인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나가도록 도와줍니다. 마가 다락방에 사람들은 한곳에 모였었지만 성령강림 이후에 성령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넓게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는 말씀 그대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1 그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갔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라는 지역은 당시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로 물질적으로는 번영 했지만 도덕적 타락이 심각하여 음란한 도시로 유명하였습니다. 실제로 이곳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여명의 여사제들이 있었고 종교적으로 매춘을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 ‘고린도인이 되다’라는 헬라어 ‘코린티아조마이 (κορίντιαζομαι)라는 동사는 ‘성적으로 부도덕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가질 정도였으며, ‘코린티아스테스 ‘(κορίντιαςτες)는 ‘매춘부와 어울리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그 후에’라는 단어 안에는 바울이 걸어온 길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길은 걸어야 할 길 그리고 걸어 온 길입니다. 고린도 지역에 오기 전까지 바울의 길을 역으로 따라 가보면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많은 매질을 당하고 깊은 옥에 갇혔었습니다. 한밤 중에 기도하는데 옥문이 열렸고, 간수의 가정을 구원하여 주시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 바울과 실라는 지친 몸을 이끌고 100마일이 넘은 지역인 암비볼리, 아볼로니가를 지나서 데살로니가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몇 주간에 걸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했는데 지역의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소동을 피웠습니다. 바울이 잠시 머물던 야손의 집까지 침입하여 소란을 피웠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그들을 피해서 한밤 중에 베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워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가 했는데, 데살로니가 지역에 있던 불량배들이 다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머물고 바울만 배를 타고 4일 거리인 아테네로 홀로 가게 됩니다.
아테네는 헬라 철학의 본상지로 모든 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제단이 가득했던 지역입니다. 우상이 가득했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어려서 부터 헬라 철학으로 정통한 유명한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말리엘이라는 당대 최고였던 학자의 제자로 훈련도 받았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학문과 지성인들의 고장 아테네에 도착해서 보니 옛날에 꾸웠던 꿈이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 왔을까요? 자신이 이제껏 배웠던 헬라 철학으로 복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을 꺼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열매도 몇사람 외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보고 말쟁이라고 조롱을 하였습니다.(17:18) 철학적 논쟁만 하다가 복음사역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바울이 십자가 신학을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묻은 사랑으로 전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바울이 아테네에서는 세례를 주거나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성과 쾌락을 중시하던 철학에 빠져 있었던 이들은 바울이 전한 진리를 받아 들이지 않았고 배척했음을 볼수 있습니다. 아테네는 신들의 고향이라 알려져 있어서 그곳 사람들이 종교성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에’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그 거리는 대략 50마일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꿈꿨던 철학의 도시에서 복음 사역이 실패하고 난 후 바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좁고 협착한 땅을 밟으며 고린도까지 오는 그 걸음이 무겁지 않않겠습니까? 홀로 쓸쓸하게 고린도로 들어가는 바울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만남을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귀한 만남이 성사(成事)됩니다.
당시 고린도에 들어 갔을때 바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인데요. “3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실로 연약하고 두려웠으며 몹시 떨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들어갔을때 느꼈던 마음의 상태입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강팍한 마음 밭의 사람들과 논쟁하다가 지쳤습니다. 지성에 갇힌 이들과 논쟁하며 두려웠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선물을 준비해 두셨는데 바로 아굴라과 브리스길라 부부입니다.
2 거기서 본도 출신의 ‘아굴라’라는 유대인을 알게 되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리자, 그는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얼마 전 이탈리아를 떠나 그곳 고린도에 와 있던 참이었다.
아굴라의 고향은 본도 (Puntus)입니다. 본도는 비두니아 지역의 북동쪽에 있는 도시로 아굴라가 본토 유대인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목격한 유대인들이 본도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이때 아굴라가 복음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을거라 추측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부부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아굴라는 로마에서 상당히 큰 사업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사업을 했는데 제국의 수도 로마에 천막제조업자로 잘 정착했던 아굴라가 로마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대략 2만명 가량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유대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을 일삼게 됩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폭동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니까 로마 황제였던 글라우디오가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로마에서 나가라는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내외도 고린도 지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로마 황제의 추방령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면 바울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기 위한 위대한 섭리였습니다.
황제의 추방령으로 인해 고린도 지역에 바울 보다 먼저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먼저 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사업장에서 천막 노동자로 일하게 됩니다. 그들을 찾아 간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취직한 곳에서 일을 하다가 바울은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을 나누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의 이야기는 복음의 이야기였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비춰 보았을 것이고, 내외의 마음이 풍요로워졌을 것입니다. 훗날 바울은 이들 부부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자기를 위해 생명의 위험도 무릅썼다고 말합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이 에베소로 갈때에 함께 갑니다. 3차 전도여행중에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 보면 ,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사역의 결실이 사람이라면 사람은 지나가도 함께했던 사랑은 남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길에서 예기치 않게 찾아 온 부부를 통해서 새힘을 얻었고, 만남은 그에게 행복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꼭 필요한 사람을 곁에 두심을 알아야 합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의 글을 소개합니다. “성실(誠實)에는 마침표가 없다. 나이도, 황혼기도 없다. 매사 성실히 임하되 즐길 줄도 아는 사람, 자기 일에 몰두하되 옆과 뒤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이며,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머물러 살면서 힘을 내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핍박은 그곳에서도 있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심하게 대들면서 욕설을 퍼부었고, 심지어 예수를 모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항의의 표시로 자기 옷의 먼지를 털면서 “여러분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할지라도 그것은 당신들의 책임이지,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떠나고자 합니다. 바울은 당시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매우 큰 곤경에 처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고린도를 떠나서 이방인에게 복음 증거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 내외는 박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울 옆에서 도와 주었습니다.
사람이 감정이 상하면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감정에 휘둘려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힘들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라는 생각을 부추깁니다. 받은 은혜가 줄어들게 되니 은근히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고 믿음 생활해도 의미가 없다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끝이 아닙니다. 그 길 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생각이 바뀝니다. 믿음의 길에서 좋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십시요. 믿음의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두셨습니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될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9 어느 날 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침묵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 될 사람이 많다.”11 그래서 바울은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러 있던 ‘어느 날’ 밤에 신비로운 환상을 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침묵하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 될 사람이 많다.”
여러분 보스턴은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도시입니다. 보스턴 지역에도 주님은 ‘나의 백성이 될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참된 진리는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워 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보이지 않아도 사실 모든 사람은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고린도 성안에 구원 할 영혼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후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 동안 머물렀다고 진술합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들, 삶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랑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땅끝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지닌 사람만이 갈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땅끝은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치유가 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당장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은 먼저 기도하며 한곳에 머무르십시요. 여러분의 교회가 기도의 등불을 켜고 준비된 동역자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들입니다. 스스로 홀로 설수 없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가야할 방향이 보이고 함께 걷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길에 왜 고난을 만나게 될까 질문하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길에는 꼭 평탄한 길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걸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면 믿음의 근육이 붙고 가야할길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찾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만남은 서로의 믿음의 이야기가 만나게 되는 놀라운 복음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은 것 같아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꼭 한 번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며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설교를 마치며 이사야 43장 말씀이 생각나서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의 것이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에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때로 두려운 길 일지라도 우리가 꼭 한번은 걸어야 할 소망을 향한 길이며, 때로는 외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함께 걷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