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2023 | 성령강림후 제 20주
당신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나요? (Where do you belong?)
유민용 목사
사도행전 23:23-35
23 ○ 천부장은 즉시 백부장 두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너희는 오늘 밤 아홉 시에 가이사랴로 출발할 수 있도록 보병 200명과 마병 70명, 그리고 창을 쓰는 병사 200명을 대기시켜라. 24 또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무사히 호송할 수 있도록 그를 태울 말도 준비하라.” 25 그런 명령을 내린 뒤, 이어 천부장은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26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을 드립니다. 27 제가 보내는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제가 군인들을 보내어 구출해 냈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8 저는 유대인들이 왜 이 사람을 고발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그를 유대인의 공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29 그 결과, 저는 그가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로 고발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를 감옥에 가두거나 혹은 사형을 시킬 만한 죄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30 그런데도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어, 곧바로 그를 각하께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를 고발한 자들에게도 앞으로는 그에 대한 사건을 각하 앞에 제소하도록 일러 두었습니다.” 31 ○ 천부장에게서 명령을 받은 대로, 군인들은 그날 밤에 바울을 안디바드리까지 호송했다. 32 이튿날, 군인들은 바울을 호송하는 일을 마병들에게 맡기고 병영으로 되돌아갔다. 33 마병들이 바울을 호송하여 가이사랴에 무사히 도착하자, 그들은 천부장이 보낸 편지와 함께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넘겨주었다. 34 총독은 천부장에 보낸 편지를 다 읽은 다음, 바울에게 어디 출신인가를 물었다. 바울이 대답했다. “길리기아 출신입니다.” 35 총독이 바울에게 말했다. “당신을 고소한 자들이 이리로 오게 되면, 그때 당신의 말을 듣기로 하겠다.” 그런 뒤, 총독은 바울을 헤롯 궁 안에 가둬 놓고 잘 지키라고 명령했다. (쉬운말 성경)
23 Then the commander called two of his officers and ordered, “Get 200 soldiers ready to leave for Caesarea at nine o’clock tonight. Also take 200 spearmen and 70 mounted troops. 24 Provide horses for Paul to ride, and get him safely to Governor Felix.” 25 Then he wrote this letter to the governor 26 “From Claudius Lysias, to his Excellency, Governor Felix: Greetings! 27 “This man was seized by some Jews, and they were about to kill him when I arrived with the troops. When I learned that he was a Roman citizen, I removed him to safety. 28 Then I took him to their high council to try to learn the basis of the accusations against him. 29 I soon discovered the charge was something regarding their religious law—certainly nothing worthy of imprisonment or death. 30 But when I was informed of a plot to kill him, I immediately sent him on to you. I have told his accusers to bring their charges before you.” 31 So that night, as ordered, the soldiers took Paul as far as Antipatris. 32 They returned to the fortress the next morning, while the mounted troops took him on to Caesarea. 33 When they arrived in Caesarea, they presented Paul and the letter to Governor Felix. 34 He read it and then asked Paul what province he was from. “Cilicia,” Paul answered. 35 “I will hear your case myself when your accusers arrive,” the governor told him. Then the governor ordered him kept in the prison at Herod’s headquarters.(New Living Translation)
지구 건너편 전쟁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이 시대의 큰 슬픔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명의 가치가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될 때에 인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은 부정적 감정들로 인해 인간의 영혼을 빈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외에도 로마 총독과 천부장, 로마의 군사들이 등장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로마사를 다시 펼쳐보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기원전 29년은 로마사에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 때입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는 공공연히 독재를 행했고, 황제에게는 주인을 뜻하는 도미누스(dominus)라는 칭호가 성행했습니다. ‘위대한 자’에서 제국을 지배하는 ‘주’ 또는 주인’이라는 칭호로 격상됩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된 것이지요. 그의 권력은 카이사르 조차 소유해 본 적이 없는 로마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막강한 군대의 지휘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황제의 조각상이 세워지고, 그를 위한 각종 경기들이 열렸으며 법정에 계류중인 재판의 사면권과 각종 귀족들의 지위를 하사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1세기 로마 제국에는 제국을 지탱하는 ‘후원자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상위 계층의 사람이 ‘후원자’가 되어 하위계층의 ‘피후원자’를 돌보는 것인데, 얼핏 보면 약자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하층민은 후원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가 로마제국을 떠받치는 핵심 구조였습니다. 피라미드의 계급의 질서에 가두어 로마 질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로마제국의 질서안에서 사람들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부속품인 것입니다. 제국주의가 최상의 가치로 숭배 받던 것이 로마의 힘이었다면 예수께서는 당신의 것을 내어 줌으로써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는 이땅에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제도나 정치도 참된 평화를 제공할 수 없기에 세상에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23 ○ 천부장은 즉시 백부장 두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너희는 오늘 밤 아홉 시에 가이사랴로 출발할 수 있도록 보병 200명과 마병 70명, 그리고 창을 쓰는 병사 200명을 대기시켜라. 24 또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무사히 호송할 수 있도록 그를 태울 말도 준비하라.”
31 ○ 천부장에게서 명령을 받은 대로, 군인들은 그날 밤에 바울을 안디바드리까지 호송했다. 32 이튿날, 군인들은 바울을 호송하는 일을 마병들에게 맡기고 병영으로 되돌아갔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470명의 군사들의 보호속에서 야간 행군으로 62km 떨어진 ‘안디바드리’까지 가게 됩니다. 32절에 보면 이튿날 도착했으니까 그날밤에 400명의 병사들이 62km를 걸어 간 것입니다. 70명의 마병과 400명의 보병이 바울을 밀집 대형의 중간에 두고 보호하며 걸었을 것입니다. 초기 로마군대의 보병은 여덟줄 내지 열두줄까지 밀집 대형을 이루고 진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병사 개개인은 긴 창을 들었고, 병사는 왼팔에 바짝 밀착시킨 방패와 투구, 몸통 갑옷과 온통 쇠로 된 정강이 받이로 자기 몸을 보호했습니다. 아마도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라면 하룻밤 만에 중무장 한 상태로 이 거리를 행군하는 것은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말을 타지 않은 채 밤새도록 진군하는 일도 고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튿날 ‘안디바드리’에 도착했을 때 400명의 보병들은 온 길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후 말을 탄 병사 70명과 계속해서 32km 떨어진 예루살렘의 북서쪽 해안도시인 가이사랴로 가게 됩니다.
이때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고소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법정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내면에는 두려움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섭리를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그 밤에 들렸을 마병의 말발굽 소리는 구원역사를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심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고, 무장한 병사들이 행군하며 나는 소리는 바울을 보호해 주시는 불말과 불병거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로마의 군대는 제국의 질서와 지휘체제 안에서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지만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로마에도 복음을 증거하시려는 주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바울을 데리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이들은 로마의 총독 벨릭스에게 그를 인계했습니다. 당시 52년에서 59년 사이에 유대지역 로마의 총독이었던 벨릭스는 노예의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 총독의 지위에 오르게 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당시 태생이 비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독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은 신분상승을 위해 정치적 야망으로 살았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벨릭스의 생애를 보면, 그는 공주의 신분이던 여인들과 3번이나 결혼을 했으며,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던 야심찬 인물로 소개가 됩니다. 교활하고 속임수가 가득한 인물입니다. 당시 총독의 자리는 정치, 군사, 사법의 모든 통치권으로 관할하는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 지역의 총독들을 황제가 직접 임명했으니 로마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가 충성을 바친 대상이 누구였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천부장의 이름도 언급됩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인데 앞의 글라우디오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는 큰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사고 나서, 본래 이름 루시아 앞에 로마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천부장이 총독에게 쓴 서면을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해줍니다.
26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을 드립니다. 27 제가 보내는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제가 군인들을 보내어 구출해 냈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 사람인 것을 알고서 구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21장을 보면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죽이려는 바울이 이전에도 소요를 일으켜 자객 4천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 사람인 줄 착각 했습니다.(21:38) 그래서 천부장은 쇠사슬로 바울을 결박해서 끌고 가서 채찍을 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대인들의 소요를 그치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바울은 스스로 로마 사람임을 밝힘으로써 천부장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게 했습니다. 따라서 천부장이 로마 사람인 줄 알고 구출해 내었다고 쓴 편지의 내용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흠은 은폐하고 로마인을 보호했다는 공로만을 인정받기 위한 거짓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편지의 두번째 내용을 보면,
28 “저는 유대인들이 왜 이 사람을 고발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그를 유대인의 공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한 것은 소란이 벌어진 연유를 알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군중들의 소요로 인해서 자신에게 초래될 불이익을 염려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마치 온 마음을 다 쏟아서 사태의 진실을 철저히 파악하려고 공정한 노력을 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천부장은 로마제국에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스스로를 의인인 채 가장해서 출세하려는 욕망에 눈이 멀었던 사람입니다.
편지의 세번째 내용을 보면,
29 그 결과, 저는 그가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로 고발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를 감옥에 가두거나 혹은 사형을 시킬 만한 죄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30 그런데도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어, 곧바로 그를 각하께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를 고발한 자들에게도 앞으로는 그에 대한 사건을 각하 앞에 제소하도록 일러 두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로 고발 당했지만 바울에게서 어떠한 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쓴 내용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천부장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바울을 석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일어날 유대인들의 소요를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를 로마 총독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470명의 군인을 동원해서 가이사랴에 바울을 보낸 것입니다. 결국 천부장은 지극히 정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한 일로 사용하십니다. 이로 인해 바울을 죽음의 위협에서 보호하셨습니다. 또한 천부장이 쓴 29절의 상소문의 기록으로 인해 바울은 이후에 받게 될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왕에 서게 되는 3차례의 재판에서 무죄를 증명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불공평한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때론 악인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거짓과 헛된 욕망으로 쌓아올린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날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나라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결수 신분으로 가이사랴에 도착하게 하신 것은 인간의 판단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대로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의 일생은 들풀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구원을 노래하는 인생이 얼마나 존귀한 삶인가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에 다른 것들이 침투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있고, 부족해도 인생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세상의 끝이 올때에는 사람들이 돈과 쾌락을 사랑하고 난폭하고 무정하고 절제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마음안에 있는 인간의 죄성, 절제하지 못하는 자기욕망, 쉬고 있어도 알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주님은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주는 평안은 죽음의 세력, 어둠의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최후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1세기 로마가 제국의 힘을 의지했다면 예수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들에게 십자가를 지시며 부활하셨습니다. 2천년 전에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펼치셨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고,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셨고, 확장 시켜 나가셨습니다.
2천년이 지난 우리는 소비사회를 살아가며 여전히 선택의 문제 앞에서 생각이 충돌합니다. 소비사회속에서 마음의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물질을 숭배하는 순간 문질의 노예로 전락되어 인간의 삶은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존재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슬로우패션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이 해시태그는 저가로 만들어 얼마 안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 의류산업에 대항하여 나온 새로운 운동입니다. 패스트 패션에서는 옷이 점포에 들어오자마자 곧 유행이 지나가 버려 어떤 브랜드들은 매년 엄청난 양의 상품을 그대로 폐기합니다. 슬로우 패션 운동은 사람들이 천천히,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권합니다. 항상 최신 유행을 따라가려는 강박감에 이끌리는 대신, 몇 벌을 사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질 좋고 윤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품목들을 사라고 권장합니다.” 신앙은 ‘패스트 패션’ 사고 방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서서히 변화시키시고, 점진적으로 이루어 지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믿음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해 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그분의 뜻을 지속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앞에 서는 일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눈을 피해 살아 갈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천년 동안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충만하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린 결과 놀라운 결실을 삼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아픔과 고통,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6:9,10)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참고 인내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 마음을 깨닫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 어느 소속의 사람인지 묻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는 에베소 교우들에게 편지하기를 세상 풍조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던 삶에서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도록 지음 받는 존재라고 편지합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 3:12)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 받은 사람이고, 둘째는 거룩한 사람이며, 셋째는 사랑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됩니다. 소속이 변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녀됨을 빼앗아 갈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고 거룩한자로 사랑받은 자는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성품과 믿음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우리는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정진할 뿐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한주도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은혜가 삶을 감싸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