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2023 | 대림절 세번째 주일
기다림 시리즈 3 "아름답고 감동적인 고백의 이야기: 룻" (The beautiful and touching story of confession: Ruth)
유민용 목사
룻기 1:1-5, 14-18
1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그 땅에 기근이 크게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남자가 기근을 피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아내는 ‘나오미’이고, 두 아들은 각각 ‘말론’과 ‘기룐’이었다.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에브랏 집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모압 지방에서 살았다. 3 그러던 중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4 그리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았다. 큰며느리의 이름은 ‘룻’이었고, 작은며느리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이 모압 땅에서 10년쯤 살았을 때, 5 말론과 기룐도 세상을 떴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여의고, 홀로 남게 되었다…
14 두 며느리는 다시 소리 높여 울었다. 그런 다음, 둘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곁을 절대 떠나려 하지 않았다. 15 ○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얘야, 네 동서는 자기 동족들과 자기 신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니? 너도 어서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룻이 말했다. “저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함께 머물겠어요. 어머님의 동족이 제 동족이고, 어머님이 섬기시는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눈 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겠어요. 어머님 곁에 묻히겠어요. 주께서 설령 제게 심한 벌을 내리신다고 해도, 저는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전 어머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그토록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쉬운말 성경)
1 In the days when the judges ruled in Israel, a severe famine came upon the land. So a man from Bethlehem in Judah left his home and went to live in the country of Moab, taking his wife and two sons with him. 2 The man’s name was Elimelech, and his wife was Naomi. Their two sons were Mahlon and Kilion. They were Ephrathites from Bethlehem in the land of Judah. And when they reached Moab, they settled there. 3 Then Elimelech died, and Naomi was left with her two sons. 4 The two sons married Moabite women. One married a woman named Orpah, and the other a woman named Ruth. But about ten years later, 5 both Mahlon and Kilion died. This left Naomi alone, without her two sons or her husband…14 And again they wept together, and Orpah kissed her mother-in-law good-bye. But Ruth clung tightly to Naomi. 15 “Look,” Naomi said to her, “your sister-in-law has gone back to her people and to her gods. You should do the same.”16 But Ruth replied, “Don’t ask me to leave you and turn back. Wherever you go, I will go; wherever you live, I will live. Your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will be my God. 17 Wherever you die, I will die, and there I will be buried. May the Lord punish me severely if I allow anything but death to separate us!” 18 When Naomi saw that Ruth was determined to go with her, she said nothing more.(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우리는 세례식을 하게 됩니다. 세례 받는 이들은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여정을 걷게 될 것입니다. 세례는 신앙세계 밖에서 외로움의 자리를 벗어나 신앙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처음에는 교회 문화가 낯설고 익숙치 않지만 신앙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지체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환대를 경험하며 믿음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례 받는 모든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고백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과 동행해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입니다. 우리는 신앙 여행의 동반자로 오늘 세례 받는 이들의 믿음이 더 깊어지도록 함께 기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먼저 된 자들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자녀들은 축복의 기회를 얻은 자녀들입니다. 믿음의 부모와 함께 신앙공동체에서 자라갈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속에서 태어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 은혜가 덧입혀 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여인은 룻입니다. 룻기서는 룻이 모압여인이라는 사실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룻기서는 신앙생활을 처음 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신앙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있었던 여인입니다. 성경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룻이라는 여인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확고한 믿음의 고백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살아갈 소망과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1)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1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그 땅에 기근이 크게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남자가 기근을 피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아내는 ‘나오미’이고, 두 아들은 각각 ‘말론’과 ‘기룐’이었다.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에브랏 집안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모압 지방에서 살았다. 3 그러던 중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4 그리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았다. 큰며느리의 이름은 ‘룻’이었고, 작은며느리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이 모압 땅에서 10년쯤 살았을 때, 5 말론과 기룐도 세상을 떴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여의고, 홀로 남게 되었다.
룻기서는 유다 지방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으로 시작됩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은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 땅으로 이주를 합니다. 한 가정이 잘 살아 보려고 꿈을 안고 이민을 갔는데 외국땅에서 나오미는 남편 엘리멕렉을 잃게 됩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나오미의 두 아들들은 어머니의 삶의 전환을 위해서였을까요? 두 아들 모두 모압 지역에 있는 이방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큰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성경책 제목인 룻이라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10년쯤 지났을 때 나오미의 두 아들 마저 죽게 됩니다. 이때 나오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성경해석자들은 엘리멜렉 가문의 불행이 하나님의 땅 유대지역 베들레헴을 떠나서 이방나라 모압으로 이주한 결과라고 보기도 하는데 사실 성경은 불행의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면서 사는 삶을 산다면 남의 삶의 이야기와 불행을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시대에도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오미는 다시 역이민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여인 두 며느리들에게 이제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종용합니다.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와 동행하고자 하는 결심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압땅과 모압의 신, 평생 자라며 익숙했던 문화를 포기해야 하는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가는 길은 새롭고 낯선 지역으로 가는 모험인 것입니다. 믿음의 모험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떠나야 합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안고 가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제 주님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결심은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깊은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께서 자기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으로 증언하는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요한에게 세례 받았던 세례식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으니 기독교에서 세례는 참 중요한 예식입니다. 세례의 본질이 마음의 변화라고 한다면 세례식은 앞으로 믿음의 여정에서 주의 사랑과 신비를 담아 내기 위한 그릇인 셈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익숙했던 옛삶을 청산하고 새삶을 얻는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를 키울때에 아이의 모습을 우리는 끊임없이 사진과 영상으로 남깁니다. 그때의 순간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아이의 사랑스러움과 소중함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처음 말을 했을 때, 처음 걸었을 때, 처음 이유식을 먹었던 순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사회로 한발 한발 내딛게 되고 어느 순간이 되면 부모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성장입니다. 사랑스럽다고 아이의 시절에서 성장이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으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아닌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6 룻이 말했다. “저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함께 머물겠어요. 어머님의 동족이 제 동족이고, 어머님이 섬기시는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눈 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겠어요. 어머님 곁에 묻히겠어요. 주께서 설령 제게 심한 벌을 내리신다고 해도, 저는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전 어머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그토록 자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룻의 이 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 우리도 함께 가고, 예수께서 머무시는 곳에 우리도 함께 머물겠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주께하듯 섬기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백성이라 부르는 형제와 자매는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형제 자매입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를 앞으로 함께 지고 따를 것이며, 예수께서 앉아 계신 하늘보좌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바라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땅에서 살아 내겠습니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주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고백이 삶속에서 저절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시간 간절하게 한번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장을 경험합니다.
룻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공동체 안으로 들어 섭니다. 유대 풍습과 문화가 룻에게는 낯선 것들일테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낮춰보는 문화였는데, 모압 여인으로 유대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이 고생일수도 있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면 룻이 모압 땅에 머무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기 1장 14절을 개역개정으로 보면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더라’고 기록합니다. ‘붙좇았다’는 ‘다바크’라는 단어인데 연합한다는 의미이며, 전인격적인 삶으로 함께하다라는 뜻입니다. 나오미가 볼때에도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고 눈에 보이는 보장된 것이 없었는데 시어머니인 자신을 믿고 발걸음을 떼는 룻을 책임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먼저 된 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 주었습니다. 낯선 문화속으로 들어가 적응해 가는 나오미의 가르침을 룻은 순종함으로 따릅니다. 믿음은 개인의 회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관계속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게 됩니다. 공동체는 우리 안에 부족한 모습을 보게 해주기도 하고, 서로를 지지해 주고 격려 해주며 성장시켜 줍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게 될 이들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참 중요합니다.
첫째는 기도생활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며 믿음이 견고해 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인격적 관계에서 가능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될수록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말씀생활입니다. 시편 119편 10절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둔 우리의 마음을 밝히 비춰 주십니다. 왜 사람들이 죄의 길, 욕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닫지 못합니까? 사랑의 빚 진자임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사랑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거칠어 지고 메말라 지는 것입니다.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뤄가는 자리이며 개개인의 마음안에 있는 외로움의 자리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삶은 너무도 치열합니다. 걱정과 근심은 끊이질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안한 자아를 만나는 시대입니다. 세상의 풍조는 거대한 바다처럼 우리의 믿음을 요동치게 하고 공동체로 부터 밀려나게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공동체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믿음의 방향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룻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국을 떠나 외국이라는 땅에서 믿음의 모험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자기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며 수많은 인내와 아픔의 시간을 달려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믿음의 길을 이민 땅에서 절실하게 만나 인생이 변화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안전하고 평탄한 길만 찾다 보니 내 신앙의 자리도 예전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분도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제자의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불행한 인생속에서도 믿음의 고백으로 찬란한 소망의 여인이 된 룻처럼, 참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관심을 갖어야 합니다.
룻기의 역사적 배경은 사사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사람마다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부르짖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멈추지 않으시고, 우연처럼 주어지는 일상의 삶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룻의 이야기는 이름없는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해 줍니다. 현실의 불빛만 보고 주저한다면 창조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의 빛을 못 본채 인공빛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때에 죄와 사망의 삶으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일은 그 고백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결단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철저하게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속에서도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딪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속에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나가십니다. 이스라엘에는 친족의 대가 끊기게 되면 대를 이어 주어야 할 ‘고엘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된 여인임을 알려 줍니다. 나오미 가문에 기업무를 자로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삼고, 오벳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훗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낳았습니다. 즉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룻이 모압에 머물렀다면 이 일 은 일어 날수 없었습니다. 룻과 나오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이었지만 조각난 부분들을 하나씩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보게 합니다
룻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고, 믿음의 공동체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믿음의 여정은 우리가 참여하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룻의 삶은 조각난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은 조각난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서 회복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주님을 따라 주께서 지으신 세계속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알게 하시고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 낯선 길을 걸었던 룻처럼 간절함으로 이 자리에 나온 지체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여 아픔의 자리를 대신해 주고, 살아갈 공간을 허락해 주는 아름다운 교회와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