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24 | (주현 후 제 1주, 신년주일)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1 '말씀 공동체' (The bible community)
유민용 목사
요한복음 17:14-20
14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 역시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지금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곧 그들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역시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17 아버지여,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 주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0 ○ 그리고 나의 기도는 오직 제자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통하여, 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쉬운말 성경)
14 I have given them your word. And the world hates them because they do not belong to the world, just as I do not belong to the world. 15 I’m not asking you to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o keep them safe from the evil one. 16 They do not belong to this world any more than I do. 17 Make them holy by your truth; teach them your word, which is truth. 18 Just as you sent me into the world, I am sending them into the world. 19 And I give myself as a holy sacrifice for them so they can be made holy by your truth. 20 “I am praying not only for these disciples but also for all who will ever believe in me through their message.(New Living Translation)
얼마전 보스턴에 한국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을 해서 많은 분들이 관람을 하고 오셨을 것입니다. 영화속에 전두광이라는 인물이 ‘이 정도 각오도 안했습니까?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개혁’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 보면 개혁을 한 이들은 또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혁 속에서 국민을 이해하지 않고 특정한 인물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에 개혁은 역사속에서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 됩니다. 건강한 역사관이 중요하듯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정치는 특정한 세력의 호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바른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틀을 견지(堅持)해야 합니다. 인간 안에는 하나님을 닮은 흔적이 지문처럼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양심을 두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참된 진리로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 엄청난 혁명을 일으킨 Chat GPT는 우리가 배운 성경의 지식을 뛰어 넘을 수도 있고 말씀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기반한 정보 제공일 뿐 영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삶의 실제의 믿음을 갖지는 못합니다.
2024년 1월은 우리에게 다시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새해에 저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로 설교를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정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주일학교에서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첫번째는 말씀 공동체입니다. 새해에는 성경 말씀을 정해 놓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결단이 필요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일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삶의 언어로 삶의 자리에 담아내 보는 훈련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먼저 기도의 무릎으로 살아내야 하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내는 기쁨을 맛보아 아시는 교우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 안에 담긴 주의 교훈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질 때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게 됩니다.
14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 역시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본성과 부딪힙니다. 예수는 독선적이거나 이기적인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세상의 질서가 서로 충돌하면서 사람들은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따르지 않고 예수를 미워하였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부딪힌 것입니다.
웨슬리는 1730년 11월 15일 옥스포드 대학에서 첫번째 설교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인간 존재를 세가지로 ‘형상화’ 하였는데 ‘자연적 형상, 정치적 형상, 도덕적 형상’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타고난 자질로 하나님과의 의식적인 관계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성과 의지, 자유로 옷 입혀져 있다는 것이 자연적 형상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속성이기에 지각함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도록 지어진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이성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의지가 타락으로 인해 부패하게 되었고, 의지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손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타락한 의지는 죄의 힘에 포로가 되어 자기요구, 자기중심적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타락한 의지와 선을 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정치적 형상은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창조물들을 다스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창조물 사이의 소통의 역할을 하도록 청지기적 사명을 부여 받는 피조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지요. 창조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우주적 드라마는 정치적 소명 가운데 창조주께 통치를 받는 관계성에 서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을 충만하게 하는 특별한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하나님의 형상은 도덕적 형상입니다. 도덕적 형상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반영하고 있는데 웨슬리는 인간이 죄로 인해 거룩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봅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리 목사가 체험했던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은혜에 마음을 열게 된 사건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전달되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웨슬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추상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영역으로 나타났고, 웨슬리는 은혜의 삶을 영적 호흡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면 더 중요한 것은 구원 이후의 삶인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질서와 가치에 저항하며 때로는 미움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질서를 향한 적개심일 뿐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신 주께서 우리 안에 하늘의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세상에는 언약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용서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의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세상이 우리를 유혹해도 하나님께 뜻을 정하고 예수로 사는 인생은 도리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게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을 떠나서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여 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으로 부터 불러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아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이 은혜를 누리며 세상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본회퍼 목사는 성도란 그리스도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와 너 사이에 내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타인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런 사람이고 저런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규명해 버립니다. 그런데 건강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타인의 모습을 인식해야 합니다. 나의 기준과 시선 보다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상속에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떠나서 교회만을 위한 길을 걷는다면 교회는 희망이 되는 빛을 상실해 버리게 될 것입니다. 빛을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에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새해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말씀은 우리를 악한 세력으로 부터 지켜 줍니다.
15 내가 지금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곧 그들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 통해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악에서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드린 기도의 목적은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을 악으로 부터 지켜 달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신 것은 예수가 떠난 후 다가 올 유혹과 핍박의 상황을 염두 해 두고 하신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밑바탕에는 자기희생과 헌신,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독특성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세상을 떠나서 믿는 우리끼리 잘 살면 더 속편하겠지만 성도는 세상을 모른 체하고 살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위한, 온전한 복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이 세상속에 거하면 우리는 세상의 물결따라 속절없이 끌려 다니게 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공동체를 구출하셔서 광야길을 걷게 하셨는데 출애굽 이후에 애굽에서 살던 옛삶을 씻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 구원이라면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구원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배우고 하나님의 이끄시는 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배워가는 일입니다. 이 마음이 있는지 없는 지의 차이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4-28)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실제가 되는 감격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부서가 있습니다. 이는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안에 있는 작은 교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살피고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허락하신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연합을 하고 각자의 믿음의 분량은 다르지만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함께 걷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삶을 공유하며 머뭇거리지 않도록 바른 선택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기독교가 가진,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공격 받고 있기에 절대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고(범신론 신앙) 세상은 다 섞어 버리려고 합니다.(혼합주의 신앙) 게다가 인간의 무지와 죄성, 교만과 욕심은 영적 분별력을 흐릿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살아 있는 믿음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주와 함께 지속적으로 걷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핍박하는 악에 집중하지 말고, 말씀의 렌즈를 통해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교회가 할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기에 제자들이 악한 자의 공격과 시험으로 부터 보호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한해 동안도 주어진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마음에 몰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수록 부활하신 예수의 능력을 힘입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는 말씀으로 예수를 믿게 하라는 것입니다.
1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0 그리고 나의 기도는 오직 제자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통하여, 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공황 장애를 앓고 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미래와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도 있었고 주위의 평가에 대한 불안함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야할 길에 대해서 항상 불안해 하고 자신의 삶에 진정한 쉼을 차단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교제와 관계의 문도 닫고 자신의 삶만 붙들고 살아가던 그 청년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답은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계속하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벗어내지 못한 불안과 염려의 시간을 걷던 그 청년은 어느날 예배안에서 뜨겁게 사모하는 친구들을 만나 지금껏 감추어 두었던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이제서야 세상속에서 끼고 있던 인공호흡기를 떼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삶의 악한 세력은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자신이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여겼던 마음이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갇혀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찾는 순간 그렇게 두려워했던 사람들과 세상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갈 힘을 발견하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의 풀무불속에서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맑고 순수한 믿음으로 만들어 가시며 우리의 영혼을 윤택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증인입니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는 세상속에서 빛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상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세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될 이들이 있습니다. 광야의 시기를 걸으며 어려움을 겪고 이들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붙드는 제자로 서있으십시오. 기독교인은 성경책에 기록된 대로 세상속으로 들어가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고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늘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도 해 보시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힘써서 성경을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1:14)라는 말씀처럼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주님과 말씀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기도로 악한 세력을 이겨내는 삶, 말씀안에서 진정한 회개와 회복을 누리는 가정과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가야 합니다.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동일한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믿는 사람들, 계속해서 하나가 되어지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세상을 품기 위해 애쓰고 고민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2024년 우리 모두는 나를 위한 더 많은 소유에서 안전을 느끼는 삶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함 받는 삶에 도전해 보시며 주님과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는 한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