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24 | (주현 후 마지막 주)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 시리즈 6 '소망 공동체 II' (The community of Hope II)
유민용 목사
골로새서 1:15-23
15 ○ 그 아들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보좌들이나 주권들이나 권력들이나 권세들이나, 온 우주의 모든 것들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아들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17 진실로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이전에 존재하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재를 유지합니다. 18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분은 근원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맨 먼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친히 만물 가운데 최고의 주권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온전함이 그 아들 안에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20 그 아들을 통하여 만물과 기꺼이 화해하셨습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참 평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21 ○ 이전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악한 행동을 일삼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 여러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 앞에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23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 안에 거하고 또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서,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가지 말아야 합니다.(쉬운말 성경)
15 Christ is the visible image of the invisible God. He existed before anything was created and is supreme over all creation, 16 for through him God created everything in the heavenly realms and on earth. He made the things we can see and the things we can’t see such as thrones, kingdoms, rulers, and authorities in the unseen world. Everything was created through him and for him. 17 He existed before anything else, and he holds all creation together. 18 Christ is also the head of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He is the beginning, supreme over all who rise from the dead. So he is first in everything. 19 For God in all his fullness was pleased to live in Christ, 20 and through him God reconciled everything to himself. He made peace with everything in heaven and on earth by means of Christ’s blood on the cross. 21 This includes you who were once far away from God. You were his enemies, separated from him by your evil thoughts and actions. 22 Yet now he has reconciled you to himself through the death of Christ in his physical body. As a result, he has brought you into his own presence, and you are holy and blameless as you stand before him without a single fault. 23 But you must continue to believe this truth and stand firmly in it. Don’t drift away from the assurance you received when you heard the Good News. The Good News has been preached all over the world, and I, Paul, have been appointed as God’s servant to proclaim it.(New Living Translation)
지난 주일은 주변 지역에 전기가 나가는 관계로 마이크 없이 설교를 하니까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까지 동원해 소리를 내었던 것 같습니다. 한말씀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 함께 배려하는 교우들의 모습속에서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빛과 소리가 꺼져 있는 공간에서 평소에 당연했던 모든 조건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주일이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사라져 갈때 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되어 주는 성도들의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이어 소망 공동체 두번째는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는 세워진 지 5년도 안된 신생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기초위에서 든든히 세워져 가는데 복음을 흔드는 이단 사상이 침투해서 기독론을 흔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단들과 일일이 논쟁하기 보다는 참된 진리이신 그리스도에 관해 바른 이해를 교훈하기 위해 골로새서를 쓴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는 엄격한 율법주의, 천사를 특별한 위치에 놓는 불분명한 신비주의 사상들, 금욕주의 등으로 그리스도만으로 부족하고 다른 것이 더 있어야 한다는 이단들의 침투로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의 소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형편과 진로에 대한 두려움, 이민 땅에서 겪게 되는 현실의 문제는 복음의 소망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상실과 좌절감이 밀려 오기도 하고, 두려움과 절망이 우리의 마음을 덮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복음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지난주일에 베드로 전한 ‘산소망’과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소망’은 원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온전함을 나타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권세를 지닌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1:15 ○ 그 아들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보좌들이나 주권들이나 권력들이나 권세들이나, 온 우주의 모든 것들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아들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첨단 과학과 물리학이 발달한 시대에 만물이 그리스도로 인해 창조했다는 말을 단순히 교리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 말씀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창조의 권세를 실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사건 안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있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존재의 시작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적인 세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상품에 제조자가 있듯이 인류의 시작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만들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초의 시작을 우연으로 믿을 것인지?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온 우주의 모든 것들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아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이신 하나님을 나타내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기 위해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설교를 준비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를 검색해 보니까 1위부터 3위까지 중국에 있었는데요. 그 중에 두번째로 긴 다리가 텐진 대교인데요. 사진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다리의 길이가 113.7km입니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첨단 기술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건널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이를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를 다 설명해 낼 수는 없겠지만, 미래 과학이 발달 할수록, 과학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하게 될 것이고 창조의 능력을 더 유사하게 모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이 12년 된 혈루병에서 치유되었듯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AI 시스템을 개발하여 뇌속에 주입되는 생각만으로 로봇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로봇의 움직임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매주일 예배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말씀이 삶의 자리를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천년 전 창조주 하나님을 깨달은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3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4 보소서, 오 주여,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시편 139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아시고,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은 특별한 관계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에 이름을 붙이게 하셨지요.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피조물이 자신의 이름을 붙일수 있나요? 이름을 붙이는 피조물은 인간 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행성들과, 별자리에 이름을 붙였고, 세계의 모든 나라마다 국가 이름이 있습니다. 여행을 해보면 도시마다 다 이름들이 있습니다. 구석구석 사람들이 붙인 이름들을 볼때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의 지혜를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를 회복하는 것을 구원의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구원은 망가지고 뒤틀린 존재의 치유이며 회복입니다. 죄의 종노릇 하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재창조 ,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를 통해서 타락한 본성이 회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존재의 변화는 성령체험으로 인한 통치자의 변화입니다. 전에는 육신이 이끄는 삶을 살았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의 토대 위에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창조성과 거룩성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17 진실로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이전에 존재하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재를 유지합니다. 18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분은 근원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맨 먼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친히 만물 가운데 최고의 주권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온전함이 그 아들 안에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믿음의 창조성과 믿음의 거룩성의 균형은 신앙의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보다 먼저 계셔서 만물을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부터 지구가 태양 사이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붙들고 계셨으며, 태양과 달 사이의 인력을 만들어 내시고,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게 하셨습니다. 여전히 보이지 않고 발견되지 않는 우주의 미지의 영역도 첨단 과학으로 발견하게 될수록 영적인 세계는 더 깊어져 갈 것입니다.
창조적 명령을 소유 지향적인 명령으로만 여긴다면 다른 만물들은 인간의 의해 파괴되고 소멸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성도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명령하십니다. 주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온전한 것들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면 말씀에 바르게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들이 귓가에 얼마나 많이 들려 옵니까? 미디어를 통한 광고들은 가까이에서 우리의 눈을 유혹합니다. 소비적 삶의 패턴, 거짓 신화, 인간의 상품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해 갑니다. 상품화된 대학교는 지식과 졸업장을 파는 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상품화된 병원은 인간의 몸의 가치 보다는 의료기술을 통한 수익사업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첨단 과학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담기지 않을 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는 무서운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는 생각의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최고의 주권을 갖으신 주님께서 영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마음속 거짓된 생각들을 거룩한 생각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십니다. 서로에게 깊은 마음을 주지 못하는 불신과 의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샘솟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함으로 번역된 ‘플레로마’는 마치 물이 흘러 넘치듯이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가르킵니다. 일상의 삶에서도 주님의 기쁨이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바울 서신에 언급되는 소망이라는 단어 헬라어 ‘엘피다’는 영어로는 hope로 번역이 되지만 원어의 본 뜻은 ‘깊은 확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깊이 확신’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베드로는 불과 같은 시험으로 근심하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깊은 확신’(산 소망)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의 터 위에서 굳게 서서 복음의 ‘깊은 확신’(소망)에서 떠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속에서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속에서 주의 거룩함으로 문화를 변혁시키도록 부르십니다. 그리스도의 거룩성은 인격과 성품에 거룩한 혁명을 일으켜서 우리가 소비 문화의 형상대로 지음 받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소망의 약속을 믿는 성도들은 삶의 자리에서 세상의 문화에 사로 잡히지 않도록 선한 싸움을 해 나가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담긴 창조적 권세와 거룩함을 ‘깊이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어진 일들을 해 나가다 보면, 성육하신 주님의 신비는 우리의 교만과 허영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도록 해 줍니다. 자기를 내세우기 보다 남을 존중하는 태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 삶의 주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최고의 통치자이신 주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시고 아름다운 삶으로 빚어 가실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부르심의 소망을 받은 자들입니다.
20 그 아들을 통하여 만물과 기꺼이 화해하셨습니다.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참 평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21 ○ 이전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악한 행동을 일삼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 여러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 앞에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23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 안에 거하고 또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서,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과 화해하며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생태계의 파괴, 기후의 변화는 이미 산업혁명 이후에 예견된 일입니다. 환경파괴는 인류가 직면한 긴박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창조물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뜻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면 1년중 1월 1일에 모든 기관들과 가게들의 문을 닫고, 하루 동안 모든 활동을 멈춘다고 합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들의 빛을 끄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이 평안하기를 기도하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지구에게 휴식을 주는 종교적 의식인데요. 인도 발리 주민들 마음 안에 지구는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태어나고 지구의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으니 구원 받은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은 생태계의 위기속에서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만물을 지배하려는 소유 의식이 아니라 존재 중심으로 생태계 환경을 개선하고, 창조적 질서를 보존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번주 수요일부터 40일 사순절기가 시작이 되는데요. 40일 동안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난방에 지출되는 에너지 사용을 절약해 보시고, 일회용품 사용도 절제하며, 음식 쓰레기도 최대한 줄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새로운 시각이 열릴 것입니다. 주님과의 뜻 깊은 교제를 위해서 밤 늦게 하던 습관도 바꿔 보시고 하루의 시작을 새벽 기도와 말씀묵상으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이 있게 되었다고 전제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불순종하던 육신의 삶을 씻기시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끈질기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 세상이 무(無)에서 유(有)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점점 더 거룩해 지고 흠이 없어지고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3개의 형용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선 성도들이 세상 끝날까지 끊임없이 견지해야 할 책임 있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현대인들은 행복하기 위해 지금을 준비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과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성도들이 품어야 할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복음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믿음의 여정을 걸으며 고난의 시간을 만나지 않고 눈물의 시간을 만나지 않는 것을 구하며 기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마주하고 문제와 부대껴 살아내 보아야 불투명한 길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 (히브리서 3장6절)
우리가 사랑하는 소망 공동체는 내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집이 되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일상이 주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도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눈앞에 놓인 목표를 향해 걷는 삶에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거하고 또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가지 않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은총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