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4-20

14 ○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원했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가 아니면, 앞으로 다시는 내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17 그리고 예수께서는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이 잔을 받아, 너희가 서로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이제 나는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19 예수께서 또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이다. 이것을 먹어, 나를 기념하여라. 20 유월절 식사가 끝나자, 예수께서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쉬운말 성경)

14 When the time came, Jesus and the apostles sat down together at the table. 15 Jesus said, “I have been very eager to eat this Passover meal with you before my suffering begins. 16 For I tell you now that I won’t eat this meal again until its meaning is fulfilled in the Kingdom of God.”17 Then he took a cup of wine and gave thanks to God for it. Then he said, “Take this and share it among yourselves. 18 For I will not drink wine again until the Kingdom of God has come.” 19 He took some bread and gave thanks to God for it. Then he broke it in pieces and gave it to the disciples, saying,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20 After supper he took another cup of wine and said,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between God and his people—an agreement confirmed with my blood, which is poured out as a sacrifice for you(New Living Translation)

올해는 사순절 절기가 조금 빨리 찾아왔습니다. 부활절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해마다 다른 이유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해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 vernal equinox)이후의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1697년 동안 지키는 모든 교회들의 약속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부활절을 기준으로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거슬러 올라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로 부터 사순절기를 보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셨는데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하여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이제 월요일 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은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의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시고 유월절 절기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예루살렘인데, 예수님에게 그해의 유월절은 달랐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의 살해 음모를 꾸미고, 가롯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처형할 빌미를 제공하기로 제안하고, 대제사장과 군관들은 그 대가로 돈을 주기로 약속합니다. 그해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일로 보내던 때에 체포 당하신 후 재판 받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수요일을 침묵의 날, 기도의 날로 보내시고 목요일 밤부터 십자가 고난을 시작으로 십자가에 달리사 금요일 오후 3시쯤 운명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 같은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에 이 일들이 모두 일어 났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날은 유월절 대표적 음식인 어린양을 포도주와 떡으로 대체하셨습니다. 주님은 고난 당하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의 자리였습니다. 포도주를 마시며 감사 기도를 드리셨고 많은 사람을 위해 내가 흘리는 보혈이니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찬의 의미를 말씀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에게도 마지막 식사의 시간은 찾아옵니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가 아니면, 앞으로 다시는 내가 유월절 음식을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17 그리고 예수께서는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이 잔을 받아, 너희가 서로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이제 나는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한 만큼만 위로 할 수 있고 사랑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소중한 사람과의 마지막 식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언젠가는 떠나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도 마지막에는 나의 것이 아님을 내려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내가 그토록 부딪히며 완고했던 자아와 생각도 끝까지 가지고 갈수 없습니다. 전도서의 기자가 헛되고 헛되다 하시는 말씀은 삶의 허무주의가 아니라 더 소중함으로 살아내라, 살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죽음을 성찰하며 현재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이 소중하고 삶을 긍정의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 기쁜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감사할 일보다 걱정거리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오늘날 미디어에서는 성공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성공에 대한 압박을 받아 왔기 때문에 잘 되는 일에 대한 감사는 자연스럽지만 삶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주변에는 말 못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간증은 성공 스토리가 아닌 하나님과 살아 낸 이야기가 고백 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지금의 삶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이들의 상처가 변하여 감사가 되도록 해 주십니다. 십자가는 끊임없이 찾아 오는 인생의 쓴잔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니, 주님의 자녀는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약속을 믿는 이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시고, 생명의 참된 의미를 통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리나 미디어로 인해 주님의 성찬의 참 의미를 듣지 못하며 살아가지만  성찬식은 고요하게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새언약이 되신 주님은 인생의 참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약시대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이 이루어짐으로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찬은 우리의 불완전한 삶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우고, 삶의 현장에서는 주님의 능력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의 능력을 입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실수가 많던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주님께서 새언약이 되심을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찬은 우리가 듣는 설교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며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실제로 내 삶의 아픔, 고통과 두려움, 염려와 걱정을 그리스도께 맡기며 감사의 언어로 몸과 마음을 빚어내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 안에 주님께서 거하시며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성찬은 삶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연결고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품과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산산히 부서졌을때에도 진정한 감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에 무뎌진 믿음을 다시 깨우시는 것이 감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은혜를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찬은 주안에서 '하나임'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수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그 믿음의 씨앗을 마음 안에 심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죄된 욕망으로 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하는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미움과 시기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아가라고 그리스도의 참 사랑으로 매일 부어주십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회심은 관계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종들과 주인들이 함께 떡을 떼었고, 변화된 종과 주인은 서로에게 주의 교훈을 가르치고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을 이뤘습니다. 신분의 차이가 뚜렸하던 시대임에도 종과 주인이 서로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서로가 한몸처럼 베풀고 나누며 그리스도인들은 실제적 믿음을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고백하게 하시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찬식을 준비할때마다 성찬 위원들은 성만찬을 준비하는 일주일의 말씀을 가지고 한주를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의 말씀은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또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소, 살아 계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또 내가 아버지로 인해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인해 살것이오" 라는 말씀 구절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와 깊은 연합이 되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찬을 준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깊이 경험하고, 우리의 영혼이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있게 됨을 느낄 때 우리가 나누게 되는 성찬은 예수님의 생명이 됩니다. 우리 안에 그 생명이 나눠지게 될때에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그분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속하여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2천년 전에 주인과 노예 사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여기라고 했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믿게 되는 일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평강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관계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찬은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우리의 발걸음을 돌려 하나님께 향하도록 해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와 너를 연결하는 사랑이며, 삶에 대한 긍정의 마음을 지니게 해줍니다.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관계를 새롭게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주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이제 우리가 나누며 살아야 할 구체적인 음식은 무엇입니까?

 

19 예수께서 또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이다. 이것을 먹어, 나를 기념하여라. 20 유월절 식사가 끝나자, 예수께서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유월절 식사에서는 전통적으로 몇번에 걸쳐 잔을 들게 됩니다. 첫번째 잔을 들고 기도한 후에는 쓴나물, 누룩없는 빵 외에 붉은색 쨈이 주어집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고생한 노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잔을 들고는 시편의 찬양시를 불렀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축복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어떠한 이론을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실제적으로 나눠야 할 음식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성찬을 통하여 새로운 언약의 중요한 예식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음이 모든 가정의 큰아들을 삼키려 했지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더니 하나님은 죽음으로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맏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유래입니다. 그 어린양의 피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마지막 때까지 우리를 죽음으로 부터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예수를 팔고, 배신할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다 알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 148,9절입니다.

 

"8 그러므로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 것이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어준 것이오. 9 내가 분명히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온 세상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이 갸륵한 일도 함께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녀를 길이 기억하게 될 것이오.

 

이 여인의 행위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었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주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수의 기적과 이적을 따랐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때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 여인의 순종은 성경에 기록되어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의 삶을 복되게 해 주시고 성경에 기록해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함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했던 이 여인의 반응이 우리의 삶속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세상속에 있으나 하나님의 차별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맡겨 주신 삶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이뤄 나가야 합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만 급급한 삶이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더 깊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되도록 살아갑시다.

 

이제 많은 사람을 모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한사람 한사람을 찾아 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한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그들과 동행하며 끝까지 찾아 가신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붙들어 주셨고,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그날 밤에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게 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나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릴 수가 없는데 마음을 깨트린 옥합을 어떻게 드릴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옥합을 깨트리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한 여인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고 비방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엎드리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여인의 순종을 성경 말씀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1963년에는 미국인의 65퍼센트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절대적 진실로 믿는다고 대답했다. 15년후인 1978년에는 그 수가 38퍼센트로 줄어들었다. 1992 1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32퍼센트로 다시 줄었다. (PRRC Emerging Trends) 영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1981년의 26퍼센트에서 현재(1992) 31퍼센트로 감소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1981년의 52퍼센트에서 48퍼센트로 감소했다. (International Christian Digest)'

 

30년 전의 이 통계가 지금은 어떠한 결과로 남아 있을까요? 이제 우리의 교회와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개인의 믿음을 회복하여 복음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어쩌면 믿고 있으면서도 갈급하고 곤고한 이유가 내가 가진 옥합을 깨트릴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 능력의 절정은 남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신 십자가에 있으며, 이제 우리의 삶의 실제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랑을 배워가는 예수의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참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풍성한 교제를 소개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