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2024 | 성령강림절
건강한 교회 시리즈 14 성령의 공동체 (Community of Holy Spirit)
유민용 목사
사도행전 8:14, 17-25
14 ○ 한편,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17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18 마술사 시몬도 그 광경을 보았다. 사도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밀면서 부탁했다. 19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20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으며 말했다. “감히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못하니, 당신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소. 22 그러니, 당신은 속히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마음이 뒤틀려 있고, 죄에 사로잡혀 있소.” 24 시몬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선생님들,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지 않도록,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25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사마리아 성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두 사도는 사마리아 지역의 여러 마을에 들러 복음을 전했다. (쉬운말 성경)
14 When the apostles in Jerusalem heard that the people of Samaria had accepted God’s message, they sent Peter and John there... 17 Then Peter and John laid their hands upon these believers, and they received the Holy Spirit.18 When Simon saw that the Spirit was given when the apostles laid their hands on people, he offered them money to buy this power. 19 “Let me have this power, too,” he exclaimed, “so that when I lay my hands on people, they will receive the Holy Spirit!”20 But Peter replied, “May your money be destroyed with you for thinking God’s gift can be bought! 21 You can have no part in this, for your heart is not right with God. 22 Repent of your wickedness and pray to the Lord. Perhaps he will forgive your evil thoughts, 23 for I can see that you are full of bitter jealousy and are held captive by sin.”24 “Pray to the Lord for me,” Simon exclaimed, “that these terrible things you’ve said won’t happen to me!”25 After testifying and preaching the word of the Lord in Samaria, Peter and John returned to Jerusalem. And they stopped in many Samaritan villages along the way to preach the Good News.(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적색스톨은 성령의 불과 십자가 보혈을 상징합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교우들 마음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역사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의 증거자들로 흩어져 증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교회가 시작되었고 성령이 임한 후 교회는 흩어졌고,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의 소식은 확장되었습니다. 건물 중심적인 교회는 모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교회는 거대한 역사 가운데 형성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받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교회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부터는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을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종교와 우상숭배를 수용하고 혈통적으로는 혼합민족이라서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땅은 밟는 것 조차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경계가 무너지고 그토록 경멸하던 사마리아 지역에까지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박해속에서도 복음은 확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이 돌맹이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를 계기로 핍박이 더 심해지고, 이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고난을 통한 흩어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론의 핵심이 고난에 있는데,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다만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고 소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죄에서 비롯된 하나님과의 분리된 삶의 모습이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써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전에는 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 받은 성도들도 여전히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는 고난이 죄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고난을 그리스도의 행렬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개선장군들은 전차를 타고 로마 시내로 행진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행진하는 길은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타오르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들을 잡아 뒤에 세워 승리의 행렬을 이끌었는데 행진이 끝나면 포로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개선행진 대열 끝에 서 있는 포로들에게 이 향기는 죽음의 냄새일 것이고, 승리한 군사들의 몸에는 전쟁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이미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렬에 비유했습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이미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안에서 겪는 고난은 성도들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삶으로 그리스도를 그려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힘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뤄진 나라이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로 구원을 받고 살아가지만 어디까지나 첫열매이신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일 뿐이며, 종말의 때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고난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며 얻게 된 흔적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난 영광일 것입니다. 보냄을 받는 성도들은 보낸 자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고난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복음이 증거되는데 고난이 없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견딜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빌 클린턴의 영적 멘토로 유명한 토니 캄폴로 목사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희 남편이 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기를 기도해 주세요. 토니 목사님은 남편이 치유되어 가정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 뒤 여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지요? 그리고 여인은 남편이 오늘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을 할지 망설이던 목사님에게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그동안 분노에 차 있었어요.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찾아와도 상처주는 말만 잔뜩하고는 등을 돌려 버렸어요. 그런데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한 그날부터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데 남편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3일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웃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며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낼수 있었습니다.남편이 건강하게 되진 못했지만 영혼이 치유되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마음의 방에 마음의 얼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죄함, 자책감, 두려움, 외로움, 분노와 편견, 완벽주의, 질투, 후회 등의 감정이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게 합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며 영혼이 치유되었다고 고백한 여인의 말에는 하나님을 만난 영혼의 기쁨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령은 죄에 묶여있던 마음에 찾아 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오순절날 성령께서 임하자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이 차별받고 경멸받던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합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졌는데 성령은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켜서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자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에게 들렸습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4 한편,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냈다.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지나치게 해석해서 안수해야 성령님이 오는 것으로 여기며 안수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수 자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들의 안수로 인해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는 기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었기에 사마리아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은사 주의자들은 은사를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여기며 지나치게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에는 거듭남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앙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주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빌립이 전도할때 부터 유난히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인데 그는 스스로를 큰자라고 여겼습니다.
9절로 11절을 보시겠습니다. 9 ○ 한편, 그 성읍에 여러 해 동안 마술을 부리며 살아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양 행세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10 그래서 성읍 사람들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라고 칭찬하며 감탄하였다. 11 이처럼 시몬이 신기한 마술로 오랫동안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오늘날 혼합주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에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면 신앙이 하나님과 혼합되어 집니다. 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혼합주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에 도전하여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일평생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도와 주십니다. 또한 지속할 믿음의 동력이 약해졌을 때 새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18 마술사 시몬도 그 광경을 보았다. 사도들이 사람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내밀면서 부탁했다. 19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마술쟁이 시몬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로 성령이 임하는 표적을 보자 자신도 그 능력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술쟁이 시몬은 성읍에서 자칭 큰자라 여기며 살았는데 성령의 능력을 받고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돈은 하나님 보다 높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앞설 수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돈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교회 다니며 예배를 드려도 여전히 신앙의 목적이 잘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것에만 둔다면 믿음은 갈수록 미신화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믿음의 결과일수는 있지만 믿음 생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영적이다'라는 것은 통합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가치와 몸의 부활을 함께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구원을 통한 복도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새생명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죄로 부터 자유케 하시고, 고난을 이길 힘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릇된 생각은 신앙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리고 매우 위험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깨달음으로 인간 본성의 자기중심성과 돈을 우상화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딤후 3:1-2)
성령님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선한일 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20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으며 말했다. “감히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못하니, 당신은 이 일에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소. 22 그러니, 당신은 속히 악한 생각을 뉘우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마음이 뒤틀려 있고, 죄에 사로잡혀 있소.”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교회가 세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세상적 가치, 능력주의, 결과주의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그의 악함을 회개하라고 촉구하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 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이들은 주님을 영접할때 한번 회개했으면 회개 할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한번 목욕했다고 해서 몸을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고 싶은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주안에서 잘 지낸다는 것이 재정적, 물질적 번영을 이루고 아무일 없이 평안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다 보면 손해 볼 일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미 주신 성령은 우리를 지키고 영원토록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여러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구원받을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절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기대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지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