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2024 | (성령강림후 제 5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19 예수께서 보이신 하나님 나라 (The kingdom of God that Jesus showed)
유민용 목사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이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36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를 뒤에 남겨둔 채, 예수를 모시고 배를 저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 뒤를 따랐다. 37 배를 저어 얼마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거센 폭풍이 일더니 큰 물결이 배 안으로 덮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배가 가라앉을 위험천만한 지경이었다. 38 그런데 예수께서는 뱃머리에 누워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급하게 예수를 깨우며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가 지금 빠져 죽게 생겼습니다. 왜 저희를 돌보지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더니,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명령하셨다. “고요하고, 잔잔해져라!” 그러자 바람이 뚝 그치고, 거센 물결이 잔잔해졌다. 40 그런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그렇게도 겁이 많으냐? 너희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41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렇게 수군거렸다. “이분이 대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복종한단 말인가?” (쉬운말 성경35 As evening came, Jesus said to his disciples, “Let’s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36 So they took Jesus in the boat and started out, leaving the crowds behind (although other boats followed). 37 But soon a fierce storm came up. High waves were breaking into the boat, and it began to fill with water. 38 Jesus was sleeping at the back of the boat with his head on a cushion. The disciples woke him up, shouting, “Teacher, don’t you care that we’re going to drown?” 39 When Jesus woke up, he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waves, “Silence! Be still!” Suddenly the wind stopped, and there was a great calm. 40 Then he asked them, “Why are you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41 The disciples were absolutely terrified. “Who is this man?” they asked each other. “Even the wind and waves obey him!”(New Living Translation)
1933년도에 발표한 '갈릴레아 바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1902-1950)은 문학사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갈릴레아 바다'라는 시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사의 비운이 녹아져 있습니다. 갈릴레아는 라틴어식 발음이고 갈릴리는 영어식 표기입니다. 그는 식민지로 살아가는 민족적 비애를 갈릴리에 일어난 파도에 비유했습니다. 시의 일부분입니다.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 때 없이 설레는 파도는 미한(아름다운) 풍경을 이룰 수 없도다 / 다만 주를 깨움으로 그들의 신덕은(믿음은) 복되도다 / 돛폭은 다시 펴고 / 키는 방향을 찾았도다 / 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 주는 짐짓 잠자신 줄을 / 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 나의 탄식은 깨달었도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배에 오른 채 모여든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비유를 가르쳐 주신 후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항해하는 장면입니다. 때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가르치신 그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무리를 피해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가는 배를 따라서 다른 배들을 끌고 따라 갑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며 지쳐 있으셨는지 피곤한 몸을 충전하시기 위해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마가는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와 물이 배를 덮치고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게 되는 절박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느냐고 원망합니다. 마가는 왜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를 가르치시고 그 날 저녁에 풍랑을 만나서 두려움을 느끼는 제자들의 모습을 기록했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한 필요 요소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믿음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난 배 안에 주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적당한 풍랑을 만났다면 자신들의 경험으로 배를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풍이 배를 덮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 비로소 주님을 찾아 갑니다. 믿음은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배웠다고 해서 실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을 보면 믿음이 성숙해져 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주님과 함께 이뤄가는 전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만나서 믿음의 눈을 뜰때 비로소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이 인생의 풍랑이라고 느껴진다면 고단해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인내와 성실함으로 주님의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80세에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지기까지 그는 40년이라는 시간을 공주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준비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을 보내는 동안 그는 철저하게 광야 길을 인도해야 할 지도자로 훈련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인생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실때에 그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왕자로 살아가다가 광야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도 하고 나그네와 같은 자신의 삶에 모세의 마음에는 끊임없는 파도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의 첫째 아들 이름이 게르솜인데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나그네로 살며 자신의 무능을 철저하게 절감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찾아 오시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설 때에 그는 이제껏 신던 발의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신발을 벗는 것은 내가 지금껏 걸어온 삶을 부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를 위해 걸어온 이력들을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잃어 버리고 놓친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보다는 내 생각과 경험을 신뢰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믿음의 전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은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41절을 보면 풍랑으로 인해 두려워 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두려워 합니다. 환경를 바라보는 두려움에서 주님을 향한 경외심이 생겼습니다.
41제자들이 매우 두려워하며, "이분이 어떤 분이길래 바람과 파도도 순종하는 것일까?" 하고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걸어온 인생의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전환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르심 이후 모세의 40년의 인생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의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숭배했을때 모세는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합니다. 모세의 간청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32장 31, 32절입니다. "31 모세가 주께로 가서 여쭈었다. “주여, 이 백성이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32 하지만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만일 주께서 저들을 용서하실 수 없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차라리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 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생의 길과 진리가 되셨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살아갑니다. 마가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두려워 하는 제자들을 대조하여 기록하며 하나님 나라의 실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고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 앞에 서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내려놓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시켜 나가고 계십니다.
둘째로 믿음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2-1996)는 '안식의 여정'(Sabbatical Journeys)의 책에서 서커스 곡예사 친구의 말을 소개합니다. 그네 곡예에서 뛰는 사람과 잡는 사람 사이에는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뛰는 사람이 원을 그리며 공중으로 뛰어 오르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가만히 있으면서 잡는 사람이 자신의 손을 붙잡아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뛰는 사람은 절대로 잡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게 될 경우에는 곡예를 하다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기다림은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고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릅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나의 계획이 멈춘 듯 느껴지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가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며 더딘 시간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7절을 보면 "잠잠히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무려 24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도 광야의 40년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7세에 하나님의 꿈을 꾸고 13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림으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를 통해 요셉의 형제들과 민족을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셨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림 끝에 성령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끝까지 기다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고,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도 자신들의 힘으로 안되는 일을 만나게 되니까 주님께 따지듯이 이런 상황에 잠이나 자고 있느냐고 깨웁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그런데 주님은 오히려 믿음 없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배가 침몰하지 않을거란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경험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낼 때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 나라가 되는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종말의 날에 몸의 구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8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신음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23 피조물만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우리 몸이 구속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22-23)
셋째로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은 겸손하게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람과 파도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피조물을 통제할 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주와 동일한 능력을 지니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의심하는 마음의 밭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인간 관계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없으면 깊어질 수 없듯이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해서 믿음을 다 이해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구원 이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믿음의 과정을 만나게 됩니다. 믿음의 시련이 올때 마다 성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모든 경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대부분 시련을 겪으며 믿음을 단련시켜 나갔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벧전 1:7)
제자들을 꾸짖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자녀가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 이해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시지만,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실수가 많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불안과 염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라집니다. 우리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타고 계시던 배를 따라오던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님이 계신 배를 따라가기만 해도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가 무엇인지, 광풍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갈릴리 바다가 잠잠해지는 사건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우리들의 믿음의 여정을 그려 줍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듯 주님은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갈릴리 바다의 풍랑처럼 삶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날 수 있지만 믿음의 성도는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풍랑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시련이 와도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는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전하시며 마가복음 4장 9절과 23절에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너희의 마음의 새겨 들어야 한다'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강한 풍랑으로 인해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능력의 원천입니다. 제자들은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고, 인생의 파도를 잠잠하게 합니다. 인생의 광풍이 우리의 감정을 출렁이게 할 때, 감정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세상에 증명하는 믿음의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