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2024 | (성령강림후 제 9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2 쉼이 필요한 당신에게 (For Those Who Need Rest)
유민용 목사
마가복음 6:30~34
30 ○ 사도들이 전도여행에서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일과 가르친 것들을 낱낱이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그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여기를 떠나, 잠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도록 하자.” 그것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예수와 제자들이 식사조차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2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을 향해 떠났다.
33 그러나 예수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는, 온 마을에서 달려 나와 육로를 이용하여 그들보다도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34 배에서 내린 예수께서는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셔서, 여러 가지로 많은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셨다. (쉬운말 성경)
30 The apostles returned to Jesus from their ministry tour and told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31 Then Jesus said, “Let’s go off by ourselves to a quiet place and rest awhile.” He said this because there were so many people coming and going that Jesus and his apostles didn’t even have time to eat. 32 So they left by boat for a quiet place, where they could be alone. 33 But many people recognized them and saw them leaving, and people from many towns ran ahead along the shore and got there ahead of them. 34 Jesus saw the huge crowd as he stepped from the boat, and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eaching them many things.(New Living Translation)
'Retreat'이라는 단어는 ‘후퇴하다’, ‘물러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Retreat을 피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침묵기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몇년전 목회자 영성 수련회를 위한 리트릿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회장에 도착해서 보니 모든 일정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며 기도하는 수련회였습니다. 소리 내지 않고 식사하며, 서로가 대화도 하지 않고 침묵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날에는 답답함도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자 분위기를 위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사라지고 말을 해야한다는 책임감도 내려놓으니 오히려 리트릿 기간 동안 내면의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살아가는 자리에서 수많은 말들과 생각들을 듣고 살아가다가 반드시 침묵해야만 하는 시간속에 있으니 평소에 말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말을 줄이며 마음의 쉼을 갖게 되니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어색하고 답답했지만,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우는 나의 이야기가 차오를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침묵이 더욱 어렵습니다. 인정과 내 생각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사람을 만나 말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말이 우리의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할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제자들은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 와서는 두가지를 보고합니다. (막6:30) 한가지 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유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케 했던 일들이고, 또 한가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던 경험입니다. 예수께서 권세를 주셨으니 얼마나 많은 믿음의 경험들을 하고 돌아왔을까요?
첫째, 예수님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자고 하신 것이 어떤 뜻일까요? (31절)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자고 하셨습니다. 행간에 담긴 주님의 생각을 묵상하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역 후에 느끼는 내면의 감정들을 아셨을것입니다. 가르치고 치유하느라 육신이 피곤하고 지쳐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잠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더십 분야에서 40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게리 매킨토시(Gary L. McIntosh, 1947-present) 교수가 쓴 "리더십의 그림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매킨토시는 영적 리더들이 실패 앞에 무너지는 이유를 성공에 대한 강박적 집념, 인정 받으려는 욕구, 열등감 등 다양한 형태로 설명합니다. 그는 그림자가 탁월한 성과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되지만,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흔한 예로 유명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마음의 균열을 감지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그림자의 악영향에 휘말리게 됩니다. 우리는 내면의 그림자를 인정해야 하며,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다스림 받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 선지자와의 영적 승리를 경험했지만, 이세벨의 말에 의해 두려움에 휩싸여 광야로 도망쳤고, 광야에서도 하루를 더 걸어서 로뎀나무 아래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40일 밤낮으로 먹이시며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강한바람과 지진, 불 같은 힘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종교적 열심으로 가득했던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명의 사람들을 남겨 두셨음을 알려 주십니다. 엘리야의 모습은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숨겨져 있지만 내면의 강한 자아들이 어떻게 깨어지고 그 틈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엘리야를 영적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 기준과 판단을 내려놓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잠시 동안 침묵의 자리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초대 교부들은 침묵을 위해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침묵하는 시간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영적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침묵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내면의 많은 소음이 들려옵니다. 내면의 결핍감, 분노, 잊고 있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을 지니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갈망할수록 더 큰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 영적인 침체 속에서도 그분을 믿고 갈망해야 합니다.
태초의 시간은 깊은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영혼의 고통과 괴로움을 통과하며 깨어짐을 통해 만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놀라운 영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을 아껴야 합니다. 대부분의 분열과 갈등은 말로 인해 일어납니다.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는 말보다는 부정적인 소리, 실패의 속삭임, 완벽주의로 인한 강박적인 요구들, 지나친 책임감으로 인한 부담감, 관계의 경계선이 무너져 생기는 오해의 말들이 세상에 넘쳐 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자라는 표현은 그만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된 쉼으로 인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사건과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날이 저물어 갈때, 빈들에서 양식 다 떨어졌을때 모인 무리들을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십니다. 인생의 밤이 오고 마음이 허전할때 군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가의 표현을 보며 다윗의 고백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가복음 6장 38절과 시편 23장의 구절이 오버랩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마가복음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6: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푸른 잔디는 목자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해줍니다. 다윗은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에 누이듯이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심을 노래합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양 떼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양떼 가운데 어린 아이가 드린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는 교회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나눔 가운데 나타난 은혜의 사건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속에서 쉼없이 달려가는 우리에게 참된 쉼은 공동체의 나눔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데리고 온 사람들, 예수의 소문을 확인하려고 온 사람, 기적을 바라고 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34 배에서 내린 예수께서는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셔서, 여러 가지로 많은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치유와 가르침에 있었습니다.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걸으신 일들, 게네사렛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병자들의 회복 사건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6장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자는 다 회복을 얻으니라”라고 마칩니다.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만족함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면 됩니다. 우리가 구원이라고 여기며 움켜진 손을 펴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움켜쥔 손에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내가 경험했던 것, 나의 것들이 가득합니다. 믿음생활을 해도 나의 방법으로 주님을 움켜 쥐려고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내 경험과 방식으로 주님을 이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움켜쥔 손을 펴야합니다. 실패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아서 힘을 주어 잡고 있었던 것들이 내려 놓아질 때 우리 앞에 주님이 계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깨어진 인생의 조각들을 맞추시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게 해 주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그분의 품에서 참된 평안을 쉼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 주님 안에는 긍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목자가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 다녔지만 여전히 강한 자아를 지닌채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께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앞에 계시지만 여전히 허전함과 공허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목자가 없는 양이라 여기며 많은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셨습니다.
노년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바울은 고난 가운데 로마 감옥에서 인내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0절입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첫째는, 믿지 않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였으며, 두번째 이유는 주어질 영원한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제주도는 과거에 왜적의 침입이 끊이질 않는 섬이었고 정치범들의 마지막 유배지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시로 변모했지만 제주의 역사에는 선교사들의 헌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때 예수를 믿고 회심하고 난 후 긍휼한 마음으로 제주에 발을 디딘 선교사가 있습니다. 이기풍 선교사 (1865- 1942) 입니다. 그는 평안도 평양에서 태어나 대부흥 운동때 회개하며 영혼을 향한 마음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당시 우상들이 가득한 어둠의 땅, 제주도로 들어가 7년 동안 그 땅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최초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기풍 선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를 경험합니다. 어둠속을 헤매던 자신에게 긍휼함을 베풀어 주신 주님이 살아 계시니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선할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기에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성경을 가르치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 구원의 신비로 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하나의 곡이 완성되려면 음과 음 사이에 쉼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고난은 아름다운 삶의 노래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주기의 반복적 과정들 보다 영적으로 주어진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성도들도 죄로 부터 해방시킨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쉼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에 뿌리를 두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8장으로 가면 예수께서 맹인 한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의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신 후에 무엇이 보이냐고 묻자,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다는것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또 한번 그의 눈에 안수하시니 그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어도 자신의 실존을 걸어 다니는 나무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어서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목자가 되시는 주님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받아 들이고 다시 눈을 떠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실존을 정확히 바라볼때에 영생을 얻게 됩니다. 참된 본질을 본 사람은 인간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수 없고, 새로운 삶은 하나님께서 긍휼의 마음으로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8:25 예수께서 다시 한 번 그 맹인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마땅이 보여야 할 만큼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최종적 쉼의 때를 향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며,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회복과 안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아픔과 외로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면 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치유와 가르침의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맛보게 하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셨습니다. 배움을 통해 너희가 마음의 쉼을 얻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깊이 알고 배우고 계십니까?
복음이 깊어 질수록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달라지고 변화되고 있으신가요? 우리의 신실한 기도와 신실한 행위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이정표를 바라보시며 주어진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삶에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뜻이 우리의 삶속에 임하는, 그 거룩한 힘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