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10

1 그러므로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2 ,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시고, 많이 참으십시오. 3 평강의 띠를 매고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 모두는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5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천지 만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일하시고, 만물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7 ○ 하지만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신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가 높은 보좌로 올라가실 때 포로들을 사로잡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9 이처럼 그가 “올라가셨다.”라고 하셨으니, 이 말은 곧 그가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또한 이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던 그 자신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니, 그것은 그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쉬운말 성경)

 

1Therefore I, a prisoner for serving the Lord, beg you to lead a life worthy of your calling, for you have been called by God. 2 Always be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with each other, making allowance for each other’s faults because of your love. 3 Make every effort to keep yourselves united in the Spirit, binding yourselves together with peace. 4 For there is one body and one Spirit, just as you have been called to one glorious hope for the future.5 There is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6 one God and Father of all,who is over all, in all, and living through all.7 However, he has given each one of us a special gift[a] through the generosity of Christ. 8 That is why the Scriptures say,“When he ascended to the heights, he led a crowd of captives and gave gifts to his people.”[b]9 Notice that it says “he ascended.” This clearly means that Christ also descended to our lowly world.[c10 And the same one who descended is the one who ascended higher than all the heavens, so that he might fill the entire universe with himself.(New Living Translation)

1985년에 발표된 "We Are the World"는 천재지변과 기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2차 대전 이후에 1990년 초까지 전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로 국제 질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6.25 전쟁 이후 분단된 조국땅에서는 올림픽 개최식 때 손에 손잡고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노래는 이념과 민족의 장벽을 넘어 하나됨을 위한 갈망의 노래였습니다. 이번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는 희소병을 겪고 있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셀린 디옹이 1 7개월 만에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개막식때에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국제 대회인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서, 인류의 통합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지나친 경쟁심은 하나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경기를 보는 국민들도 민족주의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시간이지만 세계인들의 하나됨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은 고대 세계에서 힘과 용맹을 과시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축제는 종종 종교적 행사와 결합되었고, 그리스에서는 그들의 신이던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종교적 축제를 벌이며 더 강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가나안에서는 풍요와 다산의 신과 관련된 종교적 축제를 열었고, 남성의 힘을 과시하는 종교 의식을 갖었습니다. 로마시대에 로마가 추구하던 코스모 폴리탄(cosmopolitan) 즉 세계시민의식과 바울이 추구하던 코스모폴리탄은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그는 헬라 문화권인 다소라는 도시에서 성장하며 나는 유대인인가? 아니면 헬라인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이방인 유대인으로 생활하면서 외국인로서의 경험을 직접 피부로 겪었습니다. 오늘날의 이민 2세대가 부모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새로운 시각이 열렸습니다. 유대의 종교관을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됩니다. 당시 로마 사회가 군사적 힘으로 '하나의 도시'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그의 삶을 헌신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복음의 연결 다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두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고,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구약 성경의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성경의 전통적인 관점을 배웠고,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그러므로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1장부터 3장까지 기독교 믿음의 교리, 즉 믿음의 이론에 대해서 서술했다면 4장 부터는 믿음의 실천편을 기록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한 하나의 공동체는 다원주의나 종교적, 사회적 통합, 전인류적인 사랑 차원의 하나됨이 아닙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구별됨에서 시작을 합니다. 출발점이 한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예수의 마음에서 확장되어 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까지도 감수하며 기뻐했고,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연대했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하나됨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연합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에 담긴 하나됨의 신비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1절에서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몸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한다고 말합니다. 순교를 앞둔 바울의 이 권면은 힘이 있었고,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빚진자들입니다. 죄사함의 은혜가 깊어질수록 누군가를 환대하고, 용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누구나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뜻대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아들의 결말이 어땠습니까? 모든 재산을 잃고, 그 삶이 궁핍해 졌습니다. 결국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를 먹는 지경에 이르러 비로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내면의 결핍감이 있습니다.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어합니다. 나를 증명하는 일,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 게다가 소비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부족함을 주입합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유대교적 성전의 의미를 뛰어 넘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종교적 형식 안에 갇혀 있다가 성령 안에서 내면의 충만함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변화가 됩니다. 그 새생명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일치와 하나됨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며, 하나됨을 기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되게 하신 것을 믿고 지켜 나가게 됩니다.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믿음을 통해서 하나됨을 경험하고 연습하며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4:2 ,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시고, 많이 참으십시오.
4:3
평강의 띠를 매고서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바울의 권면들은 그리스도의 집을 튼튼하게 세우는데 필요한 재료들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겸손과 온유함의 모델이신 그리스도께 길들여 져야합니다. 멍에를 매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께 배워 나가야 합니다. 배우라는 것은 훈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기질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고유한 것이기에 상대방을 변화시킬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용납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변화가 됩니다.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마음을 돌이키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던 모세는 이땅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2:3) 성도는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질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내 것을 위해서 상대방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용납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셨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뿌리가 됨을 증거하십니다. 우리의 내면에서는 인간의 욕구와 하나님의 성품이 충돌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되게 하시는 평강의 띠가 되십니다.

계속되는 권면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4절로 6절입니다.  4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여러분 모두는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5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천지 만물의 아버지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일하시고, 만물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몸은 참 신비롭습니다. 우리의 눈이 하루에 몇 번이나 깜빡일까요? 인간의 뇌의 저장용량은 얼마나 될까요? 몸속의 세포는 몇 개나 되며, 피를 생성하는 심장은 하루에 몇 번이나 뛸까요? 물론 기본적인 지식은 검색하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몸의 신비로움입니다. 우리의 몸은 유기체적으로 여러 기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며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를 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한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를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한소망 안에서 부르십니다. 성령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천지 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우리교회는 지역 특성상 신앙생활을 하다가 공부를 마치고 나면 보스턴을 떠나게 되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보여지는 지역 교회 안에서 한몸이 되려고만 한다면 시간이 흐르고 떠나는 교우들을 볼 때마다 허전한 마음이 들고 지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교우들이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세례가 하나라는 것은 한번 세례를 받음으로 일생동안 교회의 일원으로, 세상속에서 한 사람의 교회로 살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자아가 죽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의 믿음이 다르고, 예배하는 방법이 달라도 한 분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의 교회가 됩니다.

또한 몸은 시간이 흐르면 녹슬게 됩니다. 어느 한 기능이 약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부서의 지체들이 함께 이루어 나갈 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고, 한몸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연약한 지체들을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4:7 그러나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신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4:8 그래서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가 높은 보좌로 올라가실 때 포로들을 사로잡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4:9 이처럼 그가 "올라가셨다."라고 하셨으니, 이 말은 곧 그가 낮은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4:10 또한 이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던 그 자신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니, 그것은 그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Dietrich Bonhoeffer, 1906~1945)'성도의 공동생활'의 책에서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몸과 몸을 부대끼며 함께하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옥에 갇힌 바울은 죽음이 임박하여 디모데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찾아와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다시 보길 원했으며 디모데를 보는 것이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사귐을 갖는 것이 육신적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세리와 죄인들과 친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축복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각자가 그리스도께서 나눠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은사를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서로의 다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한 몸에서 손과 발의 역할이 다르고, 눈과 귀의 역할이 다르듯이, 교회 안에서도 각자가 맡은 역할과 은사가 다를 뿐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나치게 한 사람이 많은 짐을 지고 섬기다 보면 지치게 되고, 섬기는 사람들은 번아웃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며 맡겨진 분량에 따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3에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하며 사역 중 갈등이나 위기를 극복하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샐러드는 다양한 재료들이 각각의 맛을 내지만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요리가 됩니다. 서로 달라도 조화를 이루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 힘을 모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은 서로의 다름이 기쁨이 될 것이며, 상대방의 부족함은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의 신비를 경험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