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2024 | (성령강림후 제 12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25 새사람의 평화 (Peace of the New Nature)
유민용 목사
에베소서 4:25~5:2
25 ○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은 여러분은 무엇보다 거짓을 버리고, 각자 이웃에게 진실만을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마십시오.” 아무리 분한 일이 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다 풀어 버리십시오.
27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을 해왔던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땀 흘려 자기 손으로 힘껏 벌이를 해서, 도리어 궁핍한 사람들에게 뭔가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29 남을 헐뜯는 나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는 선한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30 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 주신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31 모든 독설과 분노와 성내는 버릇과 말다툼과 비방하는 말을 삼가고, 모든 악의도 함께 던져 버리십시오. 32 오직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용서를 베푸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는 자들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쉬운말 성경)
25 So stop telling lies. Let us tell our neighbors the truth, for we are all parts of the same body. 26 And “don’t sin by letting anger control you.”[d] Don’t let the sun go down while you are still angry, 27 for anger gives a foothold to the devil. 28 If you are a thief, quit stealing. Instead, use your hands for good hard work, and then give generously to others in need. 29 Don’t use foul or abusive language. Let everything you say be good and helpful, so that your words will be an encouragement to those who hear them. 30 And do not bring sorrow to God’s Holy Spirit by the way you live. Remember, he has identified you as his own,[e] guaranteeing that you will be saved on the day of redemption. 31 Get rid of all bitterness, rage, anger, harsh words, and slander, as well as all types of evil behavior. 32 Instead, be kind to each other, tenderhearted, forgiving one another, just as God through Christ has forgiven you. 5:1Imitate God, therefore, in everything you do, because you are his dear children. 2 Live a life filled with love, following the example of Christ. He loved us[a] and offered himself as a sacrifice for us, a pleasing aroma to God.(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성령강림절 열두번째 주일입니다. 매주 교회력의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게 되는데요. 이번주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주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벌써 광복의 기쁨을 누린지 79년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인 광복절은 光 (빛 광) , 復 (돌아올 복)으로 '빛을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잠시 평화로운 땅이 되었지만 한반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아직까지도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음 아픈 기도제목 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역사적으로 서로의 땅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테러와 전쟁을 겪어왔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함을 느낍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이 언급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단순히 사회적 갈등에만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삶에서도 평화로운 마음의 질서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약의 주요 용어 가운데 샬롬은 평화입니다. 대략 350번 정도 나오는데, 신약에서 평화의 복음은 구약의 샬롬의 약속들을 토대로 평화를 소개합니다. 한가지 예가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중심부에 평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서 새창조의 상태 즉 새사람을 입게 될때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누린다고 보았습니다. 구약의 이사야가 예언한 평강의 왕의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평화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입니다.
첫째, 새사람에게 주시는 증거가 평화입니다.
찰스 버틀러(Charles F Butler:1804–1892)의 '내 영혼이 은총'입어' 찬송가는 한사람의 마음의 고백이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고,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은 마음의 평화로 임하게 됩니다.
이 찬양은 버틀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 그의 삶의 변화를 고백한 것인데 가사를 한번 보실까요? “1 내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2 주의 얼굴 뵙기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찬양을 통해 천국과 하늘나라를 고백합니다. 천국하면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고 내세로 생각나게 되는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의미로 전달이 됩니다. 신약에서도 보면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 나오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로 번역을 했습니다. 바울서신도 보면 천국대신 하나님 나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만 천국이라는 단어로 번역했을까요?
유대인이었던 마태는 1차 독자인 유대인들의 시선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도 안된다는 율법의 기록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서 하늘 나라 하면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천국과 하늘나라는 같은 뜻입니다. 새사람을 입는 성도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다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통치에 삶을 맡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옛본성을 버리고 주안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25 ○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은 여러분은 무엇보다 거짓을 버리고, 각자 이웃에게 진실만을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마십시오.” 아무리 분한 일이 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다 풀어 버리십시오. 27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을 해왔던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땀 흘려 자기 손으로 힘껏 벌이를 해서, 도리어 궁핍한 사람들에게 뭔가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29 남을 헐뜯는 나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는 선한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적인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사람이 된 성도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거짓이 없으니 거짓을 버리고, 사랑으로 이웃에게 진실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거짓은 평화의 공동체를 깨트리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부당하게 나의 이득만을 취하는 것도 도둑질하는 삶입니다. 남을 헐뜯고 나쁜 마음을 품는 일도 다른 이의 삶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을 입은 성도는 기회가 닿는 대로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 선한 말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분한 일이 있어도 해가 지기전에 풀고,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서로가 한 몸의 지체이기에 그렇습니다. 성도는 매일 새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말을 하고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새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주님이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실 것 이라는 약속을 믿고 그 위에 서는 것이 새옷을 입는 것입니다. 평화의 공동체에는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거짓, 분노, 죄를 짓는 것, 분한 일, 도둑질, 남을 헐뜯는 말, 나쁜말이 있을 자리가 없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평화의 증언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둘째, 평화는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향기입니다.
30 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 주신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31 모든 독설과 분노와 성내는 버릇과 말다툼과 비방하는 말을 삼가고, 모든 악의도 함께 던져 버리십시오. 32 오직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용서를 베푸십시오.
일평생 교회를 뜨겁게 사랑한 존스토트 목사님은 교회론을 분명히 하라고 말씀합니다. 요즘은 대중적인 교회론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인데 그 이유는 현대 문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1921-2011) 목사님은 '살아있는 교회'라는 그의 책에서 교회의 본질을 네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배우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사도들을 교사로 부르신 것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학교에도 임명한 교사가 있듯이 예수님은 성령학교를 세우시고, 훈련시킨 사도들을 통해 3천명의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주님을 배울때 성령께서 이해되도록 도우십니다.
둘째는 돌보는 교회입니다. 돌봄은 주안에서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서로의 물건을 통용했습니다. 물론 현대사회에 옆집의 물건을 편하게 빌려 쓰고 빌려주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개인생활이 침해당하거나 무례하게 침범하는 것에 대해 민감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주안에서 서로의 필요를 따라 재산과 소유를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일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셋째는 예배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는 제도적 교회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완성시키 위해 오셨고 주 안에서의 예배를 통해 평화의 공동체는 끊임없이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교회는 살아납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예배를 드려 보면 알수 있습니다. 예배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임합니다. 반면에 건강하지 않는 교회는 모이면 분쟁하고 다투고, 의심하고, 서로의 힘을 모으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경계하는데 그 힘을 다 쏟게 됩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 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예배 드리고 나면 우리에게는 삶의 예배가 시작됩니다. 흩어진 삶의 자리에서 전도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예배하고 그 예배가 확장되어 전도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세상의 소리에 귀가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지만 세상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받은 사랑으로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을 돌보고, 모이기에 힘쓰며 예배 드린 후에는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성령의 탄식 소리는 말할수 없는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마음에 독설과 분노와 화내는 버릇, 말다툼하고 비방하는 말을 그치게 합니다. 바울은 마음을 정결하도록 하고 모든 악의와 함께 던져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좋은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고 좋지 않는 말은 상한 음식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비방하는 말은 사람들의 영혼을 쪼그라들게 하고, 평화를 사라지게 하지만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성도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향기를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좋은 말을 아낌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모델이 되는 방법입니다. 주님은 인류의 모델이 되어 새로운 옷을 선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옷을 입었으니 그리스도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은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주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삶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 받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삶의 무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드러내는 삶은 좁은 길일지라도 반드시 그 길 위에서 생명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셋째, 평화의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답게,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는 자들이 되십시오.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살면서 평화에 관한 일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만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면, 말씀을 절실하게 사모하기 보다는 세상의 다른 일들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원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정작 가정과 직장의 현장에서 평화의 주님을 기대하기 보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듣게 되는 원망의 말들에 집중합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 멈추지 않는 세상이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원망과 정죄하는 말들을 하나님은 듣고 계시며 하루 한순간도 갈등과 죄악이 멈추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 주셔야만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삼아 주시고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예수는 죄의 권세를 이기셨고, 교회는 이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기에 충분하십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질문하고 그 평화의 길이 되신 주님 앞에 마음의 상처, 죄책감, 배신감, 원망하는 마음으로 인한 마음의 풍랑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한시도 기도할 수 없느냐고 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육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를 따를 힘이 없음을 아시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평화를 회복하는 길은 성도들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평화의 주님을 믿고 더욱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평화가 있는 그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울고 있는 자, 지극히 작은 자 가운데 복음을 전하자는 가운데 주님이 계십니다. 누가 주님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작은 자에게 친절을 베풀며, 주의 복음을 함께 전하시겠습니까?
세상은 늘 우리를 갈등과 불안으로 살아가게 하지만 믿음의 성도들은 그 안에서도 평화의 도구가 되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믿음의 성도들의 삶에 깊이 자리잡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평안이 영혼까지도 덮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