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024 | (성령강림후 제 17주)
건강한 교회 시리즈 30 말의 힘을 깨우다 (Awakening the Power of Words)
유민용 목사
야고보서 3:1~12
1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선생 되기를 쉽게 알아 너도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대로, 후일에 가르치는 사람 된 우리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모두는 여러 모로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만일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말을 길들여 부리려고 하면, 우리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배를 보십시오. 아무리 배가 크고 거센 바람에 밀려도, 항해사는 작은 키 하나로 배를 능히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배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혀도 매우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다 살라 버릴 수 있습니다. 6 혀 역시 불입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입니다. 비록 혀가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진실로 혀는 우리의 온몸을 더럽히고,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삶을 망쳐놓고, 결국에는 혀 자체도 지옥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7 온갖 종류의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이나 바다의 생물들은 다 길들여질 수 있어서, 사람에 의해 길들여 왔습니다. 8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혀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그 혀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이처럼 같은 혀,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11 샘이 한 구멍에서 어떻게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있겠습니까? 12 나의 형제들이여, 어찌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으며,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물을 내는 샘이 단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쉬운말 성경)
1Dear brothers and sisters,[a] not many of you should become teachers in the church, for we who teach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2 Indeed, we all make many mistakes. For if we could control our tongues, we would be perfect and could also control ourselves in every other way.
3 We can make a large horse go wherever we want by means of a small bit in its mouth. 4 And a small rudder makes a huge ship turn wherever the pilot chooses to go, even though the winds are strong. 5 In the same way, the tongue is a small thing that makes grand speeches.
But a tiny spark can set a great forest on fire. 6 And among all the parts of the body, the tongue is a flame of fire. It is a whole world of wickedness, corrupting your entire body. It can set your whole life on fire, for it is set on fire by hell itself.[b] 7 People can tame all kinds of animals, birds, reptiles, and fish, 8 but no one can tame the tongue. It is restless and evil, full of deadly poison. 9 Sometimes it praises our Lord and Father, and sometimes it curses those who have been made in the image of God. 10 And so blessing and cursing come pouring out of the same mouth. Surely, my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not right! 11 Does a spring of water bubble out with both fresh water and bitter water? 12 Does a fig tree produce olives, or a grapevine produce figs? No, and you can’t draw fresh water from a salty spring.( New Living Translation)
성령강림후 열일곱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살아가는 순간마다 따뜻하게 감싸주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서 2장은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백성들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며, 믿음의 성도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차별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믿음의 태도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혀의 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혀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입을 통해 하는 모든 말들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신창원이라는 죄수가 부산 교도소를 탈출해서 907일 동안 숨어 지내다가 결국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의 907일간의 기록을 보면,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한 교사가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넌 뭐 하러 학교 나오냐고 말하며,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부정적인 말을 했는데, 소년 시절에 그는 이 말이 자신의 마음속에 악마를 만들어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그의 삶에 악영향을 미쳐 범죄의 길로 가는 데 힘을 실어주었으며, 그의 마음을 차갑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말이 형제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선생 되기를 쉽게 알아 너도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대로, 후일에 가르치는 사람 된 우리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대부분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씀은 경솔하게 주어진 직분을 맡으려 하지 말고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말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자리에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선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랍비의 권세와 권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모든 인간이 말의 실수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말은 양날의 칼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을 살리기도 하고 마음을 배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인간의 말이 항상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말로 인한 실수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도 자신의 뜻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잘못된 가르침이 많아지고, 모범이 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말의 실수가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스스로 자신의 혀를 길들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겠습니다. 3:8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참으로 혀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떠돌아 다니며, 자극적인 말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 캠페인을 하는 후보들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상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자리에 가 보기 전까지는 후보자들의 진심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사람의 상황에 가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은 서로의 환경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비판과 갈등,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 말의 칼날을 더 날카로워 지게 합니다.
성경은 주의 자녀들에게 입술의 권세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권세는 우리가 기도하고 행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시행하신다는 의미도 있고, 성도가 살아가며 지녀야 할 말의 품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권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를 믿는 자녀들은 이 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와 마음을 치유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사람들 사이의 믿음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써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뿌리는 말의 씨앗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텐데, 가르치는 자의 책임도 따르지만 잘 감당하면 상급도 주어집니다. 즉 심판의 원리는 상급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난 날의 잘못이 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용서해 주심을 통해 선한일을 위해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야고보는 잘못된 가르침과 말의 실수에 이어서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둘째, 말에는 선과 악을 맺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3 말을 길들여 부리려고 하면, 우리는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배를 보십시오. 아무리 배가 크고 거센 바람에 밀려도, 항해사는 작은 키 하나로 배를 능히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배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혀도 매우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다 살라 버릴 수 있습니다. 6 혀 역시 불입니다. 또한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입니다. 비록 혀가 우리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진실로 혀는 우리의 온몸을 더럽히고,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삶을 망쳐 놓고, 결국에는 혀 자체도 지옥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야고보는 3절로 5절에서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 3가지 비유를 합니다.
첫째는 말의 재갈 비유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성질이 사나운 야생마라고 할지라도 고삐를 사용해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분쟁이 생기면 사나운 말처럼 비난과 비판을 서슴치 않게 되지만, 그러한 언어를 통제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비유는 거대한 배와 작은 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거센 바람에 밀려가는 배로 묘사하며, 키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항해사가 큰 배를 손에 쥔 키 하나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인생의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조절하는 키가 필요합니다. 키가 없다면 인생은 바람과 풍랑에 따라 표류하게 되고, 결국 배가 파선하듯이 자기 삶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즉, 작은 말의 열매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비유는 작은 불씨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녀서 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태운 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혀를 악으로 가득 찬 불법의 세계에 비유합니다. 불법의 세계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즉 혀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지옥불이라면, 그 위력 앞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혀를 길들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온갖 종류의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이나 바다의 생물들은 다 길들여질 수 있어서, 사람에 의해 길들여 왔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이나 새들, 심지어 야생 동물들이 사람의 말에 따라 정확한 동작을 하는 서커스 같은 것을 보며 무척 놀라워합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훈련을 시켜서 사람이 말하는 대로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입니다. (창 1:28) 그래서 인간은 태초 이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생물둘을 길들였고 또한 길들이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길들일 수 있는 동물과 길들이기 불가능한 혀를 대조하고 있는데,그런데 정작 자신의 혀를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5,6절에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평안할지어다 하라. 그 집에 평안이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의 평안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5장 7절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을 주면 사랑을 준 만큼 사랑을 받게 되는 부메랑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의 원리는 우리가 선을 행하면 인생에 복이 찾아 오고, 하나님을 떠나 악하게 살면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악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뿌린 대로 거두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말씀합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상주시지만,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걸맞게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말을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뿌린 말이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가 정죄하거나 저주하는 말들도 나의 삶과 나의 자녀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말의 변화를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인간은 본질적인 악으로 부터 스스로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은 변화되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타락한 본성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태우고 정결케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회개의 증거가 나타나고, 마음과 영혼, 우리의 입술을 정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입술이 원수를 갚는 말이나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시편 141편 3절을 보면, "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 자신의 본성이 부정하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6장 4절 5절입니다. 6:4 우렁차게 외치는 장엄한 그 소리로 인해 성전의 문지방 터가 흔들리고, 성전 안은 연기로 가득 찼다. 6:5 그때 내가 소리쳤다. “아, 나에게 재앙이 닥쳤구나!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이렇게 전능하신 만군의 왕이신 주님을 나의 두 눈으로 직접 뵙다니!”
성도는 그 날의 상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고 난 뒤에 남의 티를 중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남의 티를 말하고 가르치는 일은 되도록 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주의 자녀들은 감사의 언어, 격려와 칭찬, 남을 높이는 말을 즐겨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 기도, 찬양을 통해 우리의 입술을 거룩하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입술은 이중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혀로 찬양하기도 하고,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9절로 12절을 보시겠습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그 혀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이처럼 같은 혀,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11 샘이 한 구멍에서 어떻게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있겠습니까? 12 나의 형제들이여, 어찌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으며,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물을 내는 샘이 단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무화과'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는 속으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던진 나뭇가지로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을 때에 인생의 쓴잔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한주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생명의 향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온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주님과 함께, 성령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