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9: 13-16

139:13 진실로 주께서는 내 몸 깊은 곳의 모든 장기를 다 만드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몸을 온전히 빚어 주셨습니다. 139:14 이 몸이 이토록 신기하고 오묘하게 빚어졌으므로, 주께서 하신 일이 하도 경이롭고 놀라워, 내가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솜씨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신지, 내 영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139:15 내가 은밀한 어머니 뱃속에서 빚어지고 있을 그때에, 곧 내가 땅 밑 깊은 곳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짜 맞추어지고 있을 그때에도, 주께서는 이 몸의 형체를 이미 다 알고 계셨으니, 내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인들 어찌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겠습니까! 139:16 내 몸의 형체가 아직 갖추어지기도 전에, 주님의 눈은 나의 온전한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나를 위해 정해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책에는 이미 다 기록되었습니다. (쉬운말 성경)

 

13 You made all the delicate, inner parts of my body and knit me together in my mother’s womb. 14 Thank you for making me so wonderfully complex! Your workmanship is marvelous—how well I know it. 15 You watched me as I was being formed in utter seclusion, as I was woven together in the dark of the womb. 16 You saw me before I was born. Every day of my life was recorded in your book. Every moment was laid out before a single day had passed.(New Living Translation)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시작이자 기회입니다. 서로의 속도가 다를지라도, 주님께 드리는 모든 섬김과 예배 가운데 진심을 담아 한해를 시작하길 소망합니다.

작년에 52개의 주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2024년 성탄주일에 주보를 준비하면서 순번이 한주씩 밀리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지난 주보들을 살펴보니, 종려주일 12번 주보 이후 13번을 건너 뛰고 부활주일 주보를 14번으로 기록하는 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주보 번호가 하나씩 밀린 상태였고 성탄 주일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을 53번의 번호로 마무리해야 할지, 아니면 51번을 두 번 기록하고 52번 주보로 마쳐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온전하게 주보를 마치기 위해서는 51번의 주보를 2개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1 2라는 분명한 명제를 믿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사랑의 개념 안에서는 우리의 자아가 죽고 주님만 드러낸다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생각끝에 결국 2024년도 주보는 52번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한 창조의 계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어려움이 있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단지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창조하신 자리에서 시작되었음을 믿고, 뜻을 따라 겸손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새해 말씀 시리즈는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문장을 믿을 ,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는 그분과 동행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선택하게 될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비록 13 주보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연말에야 알게 것처럼, 결국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처럼,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출생과 죽음에 대해 정직하게 대면해 보면, 우리가 있는 대답은 " 없다"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것을 목격한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창세기 1 1절에 담긴 성경의 권위를 믿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궁금증을 품습니다. " 그런지?", "이게 무엇인지?" 수많은 질문을 부모에게 던집니다. 진리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로부터 왔는가?",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같은 궁극적인 물음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성경은 간단히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길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예수님의 선언 가운데 여섯번째 진술은 내가 곧 길이요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길이 되신 주님, 그 길을 우리는 기웃거리기 보다 용기 내어 따라가야 합니다. 홀로 걷는 길 같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당시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이 길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알려 주자 수제자 베드로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주님께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썩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런 다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졸지에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사단이라 불렸습니다.

최초의 인류의 죄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한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는 교만의 표출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선악과 나무 앞에서 했던 질문은 죄를 지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자유롭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유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기쁨과 자유를 주셨는데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형상을 주입시켜서 에덴의 언약을 깨뜨리게 했습니다. 오늘날 시대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우리의 관점으로 판단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부당하게 느껴지도록 유혹합니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자신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라고 주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삶에서는 정작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곧 길이니,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청지기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데 우리가 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강하신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의 기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생명 여정을 하나님의 신비로운 손길로 찬양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시편의 인간 창조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인간의 출생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몸속의 모든 장기는 단순히 오장육부를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정서, 의지, 개성까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139:13 진실로 주께서는 내 몸 깊은 곳의 모든 장기를 다 만드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몸을 온전히 빚어 주셨습니다. 139:14 이 몸이 이토록 신기하고 오묘하게 빚어졌으므로, 주께서 하신 일이 하도 경이롭고 놀라워, 내가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솜씨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신지, 내 영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솜씨에 감탄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위대하고 놀랍다고 표현합니다. 그 결과 모든 장기와 심장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만 터져 나오는 감탄입니다.

139:15 내가 은밀한 어머니 뱃속에서 빚어지고 있을 그때에, 곧 내가 땅 밑 깊은 곳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짜 맞추어지고 있을 그때에도, 주께서는 이 몸의 형체를 이미 다 알고 계셨으니, 내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인들 어찌 주님 앞에 숨겨질 수 있겠습니까! 139:16 내 몸의 형체가 아직 갖추어지기도 전에, 주님의 눈은 나의 온전한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나를 위해 정해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책에는 이미 다 기록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은 생명을 품어내는 사랑의 장소입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모든 생명은 탯줄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숨을 쉬며 10개월 동안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나올 때에는 탯줄을 끊고 새로운 방식으로 숨을 쉬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세상에 태어납니다. 시편 51 5절은 "보라,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중에서 나를 임신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태어난 이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어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마주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 안에서만 아니라, 구속의 계획 안에서도 온전하게 의미를 찾을 있습니다.

깨달음은 단순한 질문에서 감탄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감탄이 없는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강점이 교만을 부추기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들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약점은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자격지심에 빠지게 합니다. 수천 년 전, 이 시를 썼던 시인의 믿음과 통찰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디서 부터 우리가 왔는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 7-9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참된 자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벨론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이 유년기든, 청소년기든, 청년기든, 혹은 청장년기든 그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앞에서 세상의 '바벨론'이라는 영적 탯줄을 끊고 살아가라고 2025년의 새로운 시간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또 다시 참된 인생을 부여 받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시작된 시간도 점차 지나가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발견된 구원은 궁극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세상의 눈물과 고통, 절망과 죽음을 거두어 가신 주님은 우리가 한해 동안 겪는 모든 일들 속에서 새로운 출구가 되어 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는 삶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로 믿는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비웃고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믿음이라는 기적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는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깊이 아시기에, 그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사계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이 있듯,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도 다양한 시기와 변곡점이 있습니다. 2025년이 어떤 이에게는 봄날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겨울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각자의 계절에 맞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은혜와 도우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안에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어린이에게 노년기의 성숙함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온전한 삶의 배움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맞춰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계절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새해가 시작되며 새로운 결단을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믿음의 도전을 던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이들은 점점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계절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적과 삶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고, 새해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