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2016 |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3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Lord, You Are My Strength)
김태환 목사
시편 59:16-17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할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주의 사랑을 노래할 것입니다. 주는 나의 성벽이시며 어려울 때에 찾아갈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17 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주는 나의 성벽이시며,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16 But as for me, I will sing about your power. Each morning I will sing with joy about your unfailing love. For you have been my refuge, a place of safety when I am in distress.
17 O my Strength, to you I sing praises, for you, O God, are my refuge, the God who shows me unfailing love.
오늘로 하나님의 말씀 시리즈를 마치려고 합니다. 첫 번 설교에서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설교했고, 두 번째 설교에서는 ‘앞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설교했고, 오늘은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9월 달에는 새로 보스턴에 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도시 생활에 적응하랴, 새 학교에 적응하랴 마음이 분주하고, 마음이 불안한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몇 주 전에 청년부 임원/팀장 리더 수련회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새로 시작하는 학기, 새로 시작하는 보스턴 생활, 새로 시작하는 직장생활에서 오는 부담감와 무관(無關)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다릅니다. 사람의 말은 힘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힘이 들 때 옆에서 친구가 그래요. “너무 걱정하지마. 다 잘 될 거야!” 이런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친구가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입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병원에 문병갈 때 암담할 때가 많습니다. 병이 상당히 심각한데 “염려하지 마세요. 꼭 나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도 정말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잖아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성경 말씀을 펴서 어디 어디를 읽겠습니다” 하면서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能力)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영화 ‘인천 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둔 역을 맡은 Liam Neeson이 상륙하기 전에 등대에서 빛이 비치기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공대가 들어가서 기뢰 (naval mines)를 제거하고 아군에게 상륙해도 좋다는 등대 빛을 비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맥아더에게 마침내 등대 불빛이 어두운 바다를 환하게 비칩니다. 그 때 맥아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빛이 있으라’” “God said ‘Let there be light.’” (창세기 1:3) 제가 보기에 이 장면이 전체 영화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똑 같은 몸을 입고 태어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4). 이것을 신학 용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 아이는 아주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멀쩡하다가 가끔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쓰러집니다.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있을지 몰라서 아버지는 안절부절합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이 아이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데, 어떤 때는 물에도 쓰러지고, 불에도 쓰러진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간절하게 매달립니다. “하실 수 있으면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 주십시오.” 그 때 예수님이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What do you mean, `If I can'? Anything is possible if a person believes." (‘내가 할 수 있으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 그 때 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I do believe, but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예, 제가 믿습니다. 제가 불신앙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마가복음 9:22-24)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When Jesus saw that the crowd of onlookers was growing, he rebuked the evil① spirit. He said "Listen, you spirit that makes this boy unable to hear and speak, I command you to come out of this child and never enter him again!" (마가복음 9:25) /①Greek unclean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읽은 시편 59편 말씀을 보세요. 이 시편도 역시 다윗이 썼습니다. 이 시편 첫 머리에 ‘사울이 군인들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킬 때’ 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울은 군인들을 보내서 다윗을 가택연금을 시키고, 기회를 봐서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집 안에 갇혀 있는 다윗이 얼마나 무섭고 떨렸겠습니까? 우리가 살다가 보면 이런 일도 당하게 됩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앞을 단 몇 시간도 내다 볼 수가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잖아요? ‘Helicopter View’ 혹은 ‘Bird’s Eye View’를 가지고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충고한 사람이 있었다고요. 그 사람이 솔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전도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제 때에 아름답게 지으셨고, 사람의 마음에 영원의 감각을 주셨지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행하실 일은 다 깨달을 수가 없다 (but people cannot see the whole scope of God’s work from beginning to end).” (전도서 3:11)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그가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모르게 해 놓으셨습니다. 다 모르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다윗의 시편으로 돌아가 볼까요? 지금 밖에서는 사울이 보낸 군인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언제 군인들이 들이닥쳐 다윗의 생명을 빼앗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있는 다윗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할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주의 사랑을 노래할 것입니다. 주는 나의 성벽이시며 어려울 때에 찾아갈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오 나의 힘이신 하나님,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주는 나의 성벽이시며,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집 안에 있는 다윗은 불안에 떠는 대신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주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하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밤에 주님의 사랑을 노래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아침에 주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했을까요? 무섭던 밤이 지났잖아요? 지난 밤을 무사히 보내고 새 날을 맞이 했잖아요? 무섭던 밤이 지나고, 또 새날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윗은 눈을 뜨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사울이 보낸 군인들이 에워싸고 있지만, 다윗은 사울의 군인들보다 더 강하고 튼튼한 하나님의 성벽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For you have been my refuge, a place of safety when I am in distress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내가 불안할 때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17절)
이제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 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불안하고 무서울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기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하고 하나님의 임재(臨在, God’s presence)를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7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But the Lord stood at my side and gave me strength.” (NIV) “But the Lord stood with me, and strengthened me.” (NASB) 누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 제자 디모데에게 한 말입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을 때, 외롭고 힘들 때, 무섭고 떨릴 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살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때 기도하게 되고, 우리가 어떤 때 하나님을 찾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내가 성공했을 때인가요? 아니면, 내가 실패했을 때인가요? 내가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인가요? 아니면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인가요? 내가 건강할 때인가요? 아니면 내가 병들었을 때인가요? 내가 계획한대로 잘 나가고 있을 때인가요? 아니면 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물거품이 되었을 때인가요? 내가 강할 때인가요? 아니면 내가 약할 때인가요? 내 옆에 친구들이 많이 있을 때인가요? 아니면 내 옆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버려져 있을 때인가요?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해 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들이 이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합니다. 왜요? 그 때 성경을 읽지 않으니까요. 조금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찾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예를 들어 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으로 부르신 것은 그의 나이가 80세가 다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세는 젊었을 때 애국심으로 충만했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이집트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한 모세는 자기가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identity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에는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대신 ‘십계 (The Ten Command-ments)’ 같은 영화를 보면 흥미진진하게 잘 나와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그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가 그렇게 히브리 민족을 위해서 일하려고 했을 때는 부르시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모세는 미디안 (Median)이라는 시나이 반도 남쪽으로 피신을 하잖아요? 그 때 모세의 나이가 40이었습니다. 거기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또 40년이 흘러갑니다. 이제 모세에게 젊었을 때의 힘도, 의욕도, 꿈도 다 사라졌을 때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는 것에 절망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져서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를 위해서 40년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사실입니다.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몸을 찌르는 가시 (a thorn in his flesh)’가 있어서, 그 가시를 빼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응답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어진 하나님의 응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자기는 지금 이 가시 때문에 힘들과 아파 죽겠는데, 하나님은 지금 너는 나의 은혜를 충분히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능력은 너의 약함을 통해서 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귀해서 오늘 주보 겉장에 실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의 약한 것들을 더욱 기쁘게 자랑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약할 때나 모욕을 받을 때나, 궁핍하게 될 때나 핍박을 받을 때나,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를 위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약할 그 때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9-10)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강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 강해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아요. 자기가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자기가 소유한 것이 많고, 자기 힘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약한 사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약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약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약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 기도 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1-32)”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까? 자기가 약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리더십에 대한 책을 많이 쓰는 Max Lucado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God never said that the journey would be easy, but he did say that the arrival would be worthwhile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의 삶의 여정이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종착점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의 가정에, 직장에, 여러분의 자녀들을 키우는 일이, 또 여러분이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은가요? 하나님께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도착한 우리 ‘종착점 (the arrival)’ 매우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나의 삶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생활에 힘들고 지쳐 있나요? 한번 오늘 주의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의 시각을 바꿔 보세요.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약함을 통해서 드러날 때입니다. 앞의 화면 보면서 우리 같은 목소리로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12:9에 나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