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2017 | 새해는 이렇게 산다 5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영성 (II) (The Lessons Learned from The Spirituality of Jesus)
김태환 목사
히브리서 5:6-10
6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7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계실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9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시고,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10 그는 하나님에 의해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6 And in another passage God said to him, "You are a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① / ①Ps 110.4
7 While Jesus was here on earth, he offered prayers and pleadings, with a loud cry and tears, to the one who could rescue him from death. And God heard his prayers because of his deep reverence for God.
8 Even though Jesus was God's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the things he suffered.
9 In this way, God qualified him as a perfect High Priest, and he 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for all those who obey him.
10 And God designated him to be a High Priest in the order of Melchizedek.
예수님의 ‘영성’에 대한 두 번째 설교 시간입니다. 영어 단어에 ‘solitud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잠깐 하던 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에 ‘solitude’ 영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35-38 같은 말씀이 대표적인 예수님의 ‘솔리튜드 영성’을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시몬과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자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내가 전도할 것이다. 내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왔다.’”
예수님의 ‘솔리튜드 영성’의 특징은 ‘솔리튜드’가 주는 benefit에 머물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온다는 것입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인가가 없는 사막이나 동굴을 많이 찾았습니다.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솔리튜드’가 주는 benefit를 즐기는 것입니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솔리튜드 영성’을 즐깁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 순례하면서 요르단에 있는 수도원도 방문했습니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 데저트 (사막)입니다. 사방에 모래와 돌들이 널려 있습니다. 석회암들이 많아서 동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주의해서 보면 그 동굴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런 동굴에 사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솔리튜드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솔리튜드 영성’이 주는 이점(利點)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아까 읽어 드린 마가복음 1:35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Before daybreak the next morning, Jesus got up and went out to an isolated place to pray (다음날 날이 밝기 전에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기도하러 ‘an isolated place’로 가셨습니다.” NIV, NKJV 성경에는 ‘a solitary place’라고 나와 있고, 'a lonely place (NASB)’ ‘a deserted place (Phillips)’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소통(疏通)하기 위해서, 그런 장소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솔리튜드’는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사역의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있은 후에 난리가 났습니다.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왕 (king)으로 만들려고 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큰 문제였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로 만든 떡 다섯 개를 가지고 5,000명이 실컷 먹고도 남았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서 몰래 제자들도 떼 놓고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요한복음 6:15) “He departed again to the mountain by Himself alone.” (NKJV) 예수님은 산에서 혼자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방향을 확정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솔리튜드 영성’은, 사역의 방향을 확정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사역의 힘을 얻고,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솔리튜드 영성’은 영적으로 새롭게 재창조 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다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 오십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내가 전도할 것이다. 내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왔다 (마가복음 1:38)”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솔리튜드 영성’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영성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삶의 유혹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혹’은 temptation을 말합니다. 우리 말로 ‘시험’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을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요,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이라고 고백합니다 (히브리서 12:2). 예수님께서 언제 유혹을 받으셨는지,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은 어떤 것이었는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유혹을 이기셨는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유혹을 받으셨습니까? 영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요단강에 가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마태복음 3:17) 이 일이 있은 후에 사탄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성경 많이 읽으면, 봉사 열심히 하면 뭔가 일이 잘 되고, 뭔가 나에게 큰 힘이 생긴 것 같 같은 착각을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혹은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고, 영적으로 뭔가 전과는 다른 수준에 도달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찾아 옵니다. 예수님도 그랬다니까요.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곧 유혹을 받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대처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돌로 떡을 만들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고, 사탄에게 경배하라는 세 가지 유혹 아니었습니까? 이 세 가지 유혹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원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사역을 하라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에게 찾아 오는 유혹도 그런 것입니다. 인생을 쉽게, 즐기면서 살라는 것 아닙니까? 너 혼자 바르게 살겠다고 요란을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 혼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칙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넓은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좁은 길로 가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8:3)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6:16)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6:13) 여러분, 이 말씀 읽으면서 무슨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까? 성경을 조금만 주의해서 읽는 사람이라면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에 대처했던 말씀이 모두 신명이 6장, 신명기 8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쉐마 (Shema)’라고 말하는 말씀입니다. ‘쉐마’라는 말은 ‘들으라’라는 뜻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그러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이런 뜻입니다. 신명기 6:5에 ‘쉐마 이스라엘’이란 말이 나옵니다. 신명기 6장, 7장, 8장은 이스라엘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교육의 핵심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 내용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렸을 때부터 쉐마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 어떤 것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통해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순간에 유혹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시편 107:2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He sent His word and healed them, And delivered them from their destructions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서 그들을 치유하시고, 파멸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의견을 구해서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길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어집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의 제시하는 가치관이 나의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모데후서 3:15-17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그대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알았는데, 이 성경은 그대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하였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하게 되고,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혹을 받는 것은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유혹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영성은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는 영성입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5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8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Even though Jesus was God's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the things he suffered (비록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예수님은 그가 받으신 고난의 일들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가장 빛나는 예수님의 영성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계실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구하셨습니다.” (6절) “While Jesus was here on earth, he offered prayers and pleadings.”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계실 때 (while Jesus was here on earth)’ 이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In the days of His flesh (NASB, 그가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 이렇게 번역한 곳도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오늘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사셨을 때’ 이런 뜻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이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니까 ‘기도’ ‘도움’ ‘죽음’ ‘부르짖으며’ ‘눈물’ ‘응답’ ‘고난’ 이런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실존(實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문제들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아무도 이런 문제들로부터 면제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결단하고,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럴 때 잘 아프지요? 목이 뻣뻣하는 증상도 많이 나타나고요.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러지요? 잠은 많이 오고요. 예수님도 우리처럼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랬을까요?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마태복음 26:38) 예수님도 우리처럼 마음이 괴롭고, 제자들의 support가 필요했습니다. 힘들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면 힘이 되잖아요?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우리처럼 예수님께도 힘든 일이 많았을까요? 많았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예수님에게 적대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모두 예수님께 감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 사회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부담이 많이 되셨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이런 사람들로부터 감시를 받고, 질시도 받고, 모함도 받고, 오해도 받았습니다.
이런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7절)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를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하셨습니다. 8절에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말씀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다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고난, suffering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로 기도하신 것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다시 8절 말씀을 읽어 보세요. “Even though Jesus was God's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the things he suffered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을 배웠습니다).”
어떻습니까? 자기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장 빛나는 영성이고,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하는 영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는 유치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배고프면 배부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고, 아프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나의 고난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영성을 배운 사람들은 그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성이 주님의 영성의 수준까지 올라 오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