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2017 | 마가복음 강해설교 55
하나님의 드라마 (The Unfolding Drama of God)
김태환 목사
마가복음 14:12-21
12 무교절의 첫 번째 날, 즉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유월절 음식을 어디에 가서 준비할까요?”
13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서 두 명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으로 들어가거라. 물병을 든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선생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이 어디냐고 물으십니다’라고 하여라.
15 그러면 집주인이 너희에게 준비된 커다란 다락방을 보여 줄 것이다. 그 곳에서 음식을 준비하여라.”
16 제자들이 떠나서,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17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그 집으로 가셨습니다.
18 식사를 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19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한 사람씩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설마 제가 그 사람입니까?”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다.
21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지만, 인자를 넘겨 주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12 On the first day of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when the Passover lamb is sacrificed,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to prepare the Passover meal for you?"
13 So Jesus sent two of them into Jerusalem with these instructions: "As you go into the city, a man carrying a pitche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14 At the house he enters, say to the owner, `The Teacher asks: Where is the guest room where I can eat the Passover meal with my disciples?'
15 He will take you upstairs to a large room that is already set up. That is where you should prepare our meal."
16 So the two disciples went into the city and found everything just as Jesus had said, and they prepared the Passover meal there.
17 In the evening Jesus arrived with the twelve disciples.
18 As they were at the table① eating, Jesus said, "I tell you the truth, one of you eating with me here will betray me." / ①Or As they reclined
19 Greatly distressed, each one asked in turn, "Am I the one?"
20 He replied, "It is one of you twelve who is eating from this bowl with me.
21 For the Son of Man must die, as the Scriptures declared long ago. But how terrible it will be for the one who betrays him. It would be far better for that man if he had never been born!"
보스턴 신학교에서 구약학 교수로 있었던 버나드 앤더슨 (Bernhard W. Anderson, 1916-2007)이 1953년에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제목이 ‘The Unfolding Drama of The Bible’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펼쳐지는 성경의 드라마’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 66권을 6개의 막 (scene)으로 설정했습니다. 1막 ‘A Way into the Future (미래로 가는 길)’ 2막 ‘The Discipline of Disaster (재난을 통한 훈련)’ 3막 ‘The New Exodus (새로운 출애굽)’ 4막 ‘The People of the Torah (토라의 사람들)’ 5막 ‘Victory through Defeat (패배를 통한 승리)’ 6막 ‘The Church in the World (세상 속의 교회)’ 이 책은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입니다. 저는 신학교 영어 시간에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앤더슨의 드라마에 의하면 오늘 읽은 말씀은 제 5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5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루는 장인데, 지금부터 예수님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게 전개가 됩니다. 하나님의 드라마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무교절 첫 번째 날, 즉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시작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했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Passover)’이라는 말은 ‘넘어간다’는 뜻인데, 이 말 자체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문 틀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집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처음 난 것들은 모두 죽는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결국 이 심판을 견디지 못해서 이집트의 바로 (Pharaoh)는 모세에게 네 백성을 데리고 우리나라를 떠나라고 합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히 이집트를 떠나면서 누룩 (leaven)을 넣지 않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빵을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무교절’은 그 때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무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라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양을 잡고 만찬을 먹는 하루 축제이지만, 그 다음 날부터 일주일은 ‘무교절’로 지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혼동합니다. 오늘에도 두 절기를 혼동해서 ‘유월절’을 ‘무교절’이 시작되는 날로 기록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들은 양을 잡아 문틀에 피를 바르고, 고기는 저녁 식사 때 가족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만찬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유월절 음식을 어디에 가서 준비할까요?” 하고 질문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 두 사람을 예루살렘 성으로 들여 보내시면서 “성으로 들어 가면 물 항아리 (a jar of water)를 들고 오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를 따라가거라.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이 어디냐고 물으십니다’ 라고 말씀 드려라. 그러면 집주인이 너희에게 준비해 놓은 커다란 다락방을 보여 줄 것이다. 그 곳에서 음식을 준비하여라.” (13-15절)
이 말씀도 예사로운 말씀은 아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두 제자가 성으로 들어갔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항아리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났고, 그를 따라 갔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한번 기록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시기 직전에 올리브 산 기슭에 있는 벳바게 (Bethphage)와 베다니 (Bethany) 마을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마을로 들여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을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러십니까?’라고 물으면, 이렇게 말하여라. ‘우리 주님이 필요하시답니다. 곧 이리로 돌려 보내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3) 그래서 두 제자가 마을로 들어갔는데, 정말 어느 집의 문에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를 풀어서 끌고 오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 사람이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놀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말하지 않고 나귀 새끼를 데리고 가라고 허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가가 기록한 두 이야기가 보여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설교자인 저의 눈에는 뭔가 이 이야기 속에 특별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지금 예수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하나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제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이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집 문에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해서 끌고 온 일, 예루살렘 성 안에서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난 일, 그리고, 유월절 만찬 장소를 구한 일들은 그냥 신기하고,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 그리고 예수님의 신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 메시지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순절은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께 집중하는 40일 동안의 기간입니다. 지금 새벽 기도에서는 사순절을 위해 특별히 선택한 복음서의 말씀들을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말씀, 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신 말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신 소문이 멀리 시리아에까지 전해졌다고 하는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도 우리의 구원과 관계되지 않은 말씀이 없습니다.
유월절 만찬 중에 예수님께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18절) “One of you eating with me here will betray me."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제자들은 한 사람씩 “설마 전 아니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Greatly distressed, each one asked in turn, ‘Am I the one?’” (19절) NASB에는 “They began to be grieved”라고 나와 있습니다. 근심했다, 슬퍼했다, 힘들어했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좀 더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열 둘 중 한 사람이며,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다.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지만, 인자를 넘겨 주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0-21절)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이 부분을 더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으나, 예수님께서 누구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 요한이 예수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을 접시에 찍어 주는 자가 나를 배반할 자이다’ 하시면서 빵 조각을 집어서 접시에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빨리 하여라!’ 거기 앉은 사람 중에는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돈을 관리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필요한 물건을 사라고 말씀하시는 줄로 알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줄로 제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을 받고, 곧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때는 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21-30)
예수님은 제자 유다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꼭 집어서 말씀하셨지만, 제자들 중 아무도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눈치를 챈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요한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다의 배반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지금까지 “과연 대통령이 탄핵이 될 것이냐? 아니면 기각될 것이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여기서도 그랬습니다만, 아마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면 탄핵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탄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0일 안에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헌법에 대통령이 탄핵될 경우 그렇게 하도록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누가 다음 번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성경 이야기도 그렇거든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배반자는 내부에 있었습니다. 유다 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돈을 관리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유다는 열 둘 중 한 사람 이상의 의미가 있는 제자였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관리했는지는 모르지만, 돈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임이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다가 돈은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는 돈주머니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종종 돈주머니에서 돈을 제 마음대로 꺼내 쓰곤 하였습니다.” 오직 요한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이 말씀이 나옵니다.
결국 유다는 자기가 좋아했던 돈의 유혹을 못이겨서 예수님을 팔아 넘기게 됩니다. 마가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 줄 좋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 14:11)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그것이 돈에 대한 욕심이 되고, 탐욕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 그 사람에게 우상이 됩니다. 돈이 우상이 된 사람은 결국 돈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타락의 공식입니다. 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그것이 그 사람이게 우상이 되면,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은 망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와 있잖아요?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골로새서 3:5)
가룟 유다의 배반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가룟 유다의 배반 때문에 예수님은 체포되어 넘겨집니다. 제자 중 아무도 이 일을 제대로 눈치 챈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유다를 지명해서 말씀하셨는데도,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고?” 하면서 대책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 밤에 체포되고, 이 후에 일들은 빠르게 진행됩니다. 바보 같은 제자들을 원망스럽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나요? 그렇지 않고 반대로. 제자들이 똑똑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자들은 유다가 그런 일을 못하도록 집 안 어딘가에 감금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켰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될까요?
유다의 배반이 있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급격하게 옮겨 갑니다. 마치 탄핵을 말하던 사람들의 관심이 이제는 대통령 선거로 옮겨 진 것처럼,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있은 후에, 무대의 스포트 라이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추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드라마가 정말 멋지게 전개 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배반을 이용하셔서 오히려 구원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로 무대를 옮겨 놓으십니다. 어떤 때, 하나님께서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인간의 도움을 물리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한심하게도 잠을 잡니다. 하지만, 그 시간 만큼은 오직 예수님 혼자,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힘든 밤을 보내셔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사순절은 이스라엘의 40년 간의 광야생활이 연상이 될 만큼 긴 시간입니다. 결코 40일은 짧지 않아요. 40일을 보내는 동안 눈이 오기도 하고, 갑자기 추워 지기도 합니다. 예보가 자꾸 바뀌고 있습니다만, 바람 불고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도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해야 하는 때입니다.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고 다른 것들로 우리 마음을 채우고 살았던 시간들을 회개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예수님에게 생각을 집중하는 축복의 기간입니다. 40일 간의 여정 속에 춥고, 바람 불고, 눈이 오고 하는 일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을 우리는 즐겁게 이겨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