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017 | 종려주일 메시지
온 세상이 그를 따르고 있다. (The Whole World is Following Jesus)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2:12-25
12 다음 날, 유월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3 그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4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발견하시고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위에 타셨습니다.
15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너의 왕이 오신다. 그분은 어린 나귀를 타셨다.”
16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비로소 이 말씀이 예수님에 관해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과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7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 내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때, 예수님과 함께 있던 많은 군중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언하였습니다.
18 이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19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계획은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이 저 사람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20 유월절에 예배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21 이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인 빌립에게 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였고, 안드레와 빌립은 다시 예수님께 그 말을 전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12 The next day, the news that Jesus was on the way to Jerusalem swept through the city. A large crowd of Passover visitors
13 took palm branches and went down the road to meet him. They shouted, "Praise God!① Blessings on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ail to the King of Israel!"② / ①Greek Hosanna, an exclamation of praise adapted from a Hebrew expression that means "save now." ②Ps 118.25-26; Zeph 3.15
14 Jesus found a young donkey and rode on it, fulfilling the prophecy that said.
15 "Don't be afraid, people of Jerusalem①. Look, your King is coming, riding on a donkey's colt."② / ①Greek daughter of Zion ②Zech 9.9
16 His disciples didn't understand at the time that this was a fulfillment of prophecy. But after Jesus entered into his glory, they remembered what had happened and realized that these things had been written about him.
17 Many in the crowd had seen Jesus call Lazarus from the tomb, raising him from the dead, and they were telling others① about it. / ①Greek were testifying
18 That was the reason so many went out to meet him?because they had heard about this miraculous sign.
19 Then the Pharisees said to each other, "There's nothing we can do. Look, everyone① has gone after him!" / ①Greek the world
20 Some Greeks who had come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celebration
21 paid a visit to Philip, who was from Bethsaida in Galilee. They said, "Sir, we want to meet Jesus."
22 Philip told Andrew about it, and they went together to ask Jesus.
23 Jesus replied, "Now the time has come for the Son of Man to enter into his glory.
24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is planted in the soil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ts death will produce many new kernels?a plentiful harvest of new lives.
25 Those who love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lose it. Those who care nothing for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keep it for eternity."
오늘 말씀은 “유월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12절)”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유대나라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는지, 사람은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3절)” 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 내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때, 예수님과 함께 있던 많은 군중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언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17-18절)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표적(表迹)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일곱 개의 표적이 나옵니다. 각 표적마다 요즘 말로 하면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여 주셨을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을 때는 사람들 사이에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귀신이 들어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했고, 예수님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옹호했습니다. 그의 부모를 불러서 심문했고, 본인을 불러서 심문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그냥 덮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예수라는 사람이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회당에서 추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회당에서 추방하는 것을 전문 용어로 ‘ex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ex-’는 ‘추방한다 (put out)’이라는 뜻이지요? ‘communica¬tion’이란 말은 라틴어 ‘커뮤니카티오 (commūnicātiō)’에서 온 말입니다, ‘공동체 (community)’ 혹은 ‘교제 (communion)’이라는 말 뒤에 명사형 어미가 붙은 것입니다. ‘공동체’로부터, 혹은 ‘교제’로부터 추방하는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조기(早期)에 진정 시키기 위해서 예수가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가장 큰 형벌을 내렸던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먼저 눈을 뜬 당사자를 회당에서 추방했습니다. 가장 큰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이 사람을 만나 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을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9:35). 사실 이 사람은 눈은 떠서 보게 되었지만, 그를 고쳐 주신 예수님을 자세히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얘기해 본 적도 없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회당에서 추방 당한 사람을 ‘excommunicate’라고 하거든요? 예수님께서 ‘excommunicate’를 만나 주십니다. 눈은 보게 되었지만, 졸지에 유대 사회에서 격리된 불이익을 당한 이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자기들의 지혜를 동원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뜬 사람의 표적 이야기가 좀 사그라들 때, 또 다시 엄청난 표적 이야기가 유대 사회를 강타합니다. 이번에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살려냈다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도 보고 나사로도 보기 위해서 모여 들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러 나온 것은 이런 배경을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아직 한 번도 사람을 태워 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여러분, 이 때 광경을 머리에 연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개선 장군처럼 말을 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한번도 태워 본 적이 없는 나귀를 타셨으니까요. 그 나귀가 뒤뚱뒤뚱 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에는 그 말씀이 없습니다만, 공관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나귀 새끼 등에 자기들을 옷을 벗어 깔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환영 나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옷을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잘라 길에 깔았다고 합니다. 우습잖아요? 위용 있는 말 안장에 앉으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벗어 준 옷을 안장 삼아 나귀 새끼 위에 앉으셨습니다. 무슨 레드 카펫이 그 앞에 깔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옷을 벗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았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자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기존의 왕의 입성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요한에게도, 다른 제자들에게도 이 광경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성경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너의 왕이 오신다. 그분은 어린 나귀를 타셨다!’” (15절).” 이 말씀은 구약 스가랴 9:9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사실 하나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5. ‘호산나 (hosanna)’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런 뜻입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를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레드 카펫을 밟고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옷을 벗어 깐 길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입성하셨지만, 예수님은 힘으로, 권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나는 내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 (ransom)로 주려고 왔다.” (마가복음 10:45) 예수님은 스스로 하신 말씀대로 겸손한 섬김의 왕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환영하는 것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계획은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이 저 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Common English Bible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See! We’ve accom-plished nothing! Look! The whole world is following him!” 모든 사람들이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자인 저의 눈에 들어 온 말씀은 요한이 ‘the whole world’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모든 사람 (everyone)’ 이렇게 말해도 될 텐데, 요한은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고 ‘the whole world’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the whole world’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Greek 성경에는 이 단어가 ‘코스모스 (κόσμος)’라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세상 (world)’ 혹은 ‘우주 (universe)’라는 말로 번역되는 말이지요? 지금 요한의 머리 속에는 비록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고 받고 있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온 세상, 온 우주를 구원할 그리스도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코스모스’라는 말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여기서만 ‘코스모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16)” 이 말씀에도 ‘코스모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9:5)”라는 말씀을 기록할 때도 ‘코스모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구원 (salvation)’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나의 구원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구원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구원, 전 우주의 구원입니까? 저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생각을 온 세상에까지, 온 우주에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대한 좁고, 이기적인 편협한 생각이 아니라, 온 세계까지, 온 우주까지 여러분이 가진 구원의 개념이 확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교회에 미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요한이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사실을 기록한 것을 우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유월절에 예배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20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 사람들은 유대교로 개종 (conversion)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그리스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23-25절) 예수님은 자기가 하는 말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진리를 듣는 사람, 진리를 깨우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진리가 가진 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 말씀이 진리이다. 너희가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대로 산다면 이 말씀이 너희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자유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 알 하나가 죽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밀 알이 죽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예로 들어 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더라면, 비유적인 의미에서 밀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그래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형제나 자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 많은 형제와 자매가 생겼습니다. 이 얘기가 그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서 8:29에 나오는 말씀이잖아요?
이제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단순히 몇 몇 열심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온 우주’가, ‘코스모스’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오래 살았다고 하지요? 신학자들은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때를 A.D. 85-90년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 요한은 허리가 굽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코스모스’가 들어 있는 거인(巨人)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머리, 우리의 마음에도 ‘코스모스’가 들어와야 합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우리 머리에 요한이 품었던 ‘코스모스’가 들어와야 합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는 ‘코스모스’의 비전을 마음에 품는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 알처럼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가지고는 ‘코스모스’를 마음에 품을 수가 없습니다. 설령 ‘코스모스’를 마음에 품는다고 해도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가지고는 ‘코스모스’의 비전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미워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야 ‘코스모스’의 비전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