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017 | (어버이주일/졸업예배 메시지)
하나님의 은혜로 (By His Grace on Me)
김태환 목사
고린도전서 15:10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 (쉬운성경)
But whatever I am now, it is all because God poured out his special favor on me—and not without results. For I have worked harder than any of the other apostles; yet it was not I but God who was working through me by his grace.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어버이주일과 졸업예배를 같이 드리는 주일입니다. 이번에 우리교회 졸업생들이 모두 52명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는 친구들이 4명이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받는 친구들이 20명이고요 대학원을 마치고 석사학위 받는 친구들이 21명이고요. 박사학위를 받는 친구들이 7명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들은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박사학위 4-5년, 대학교부터만 계산해도 모두 10년이 넘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직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있을 나이인데 부모를 떠나고, 집을 떠나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이 있게 해 주신 분들 중에 가장 감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고요. 그 다음에 감사해야 할 분은 여러분의 부모님이십니다. 다 동의하시죠?
부모가 없이 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이 더 예쁘고 똑똑한 데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제일 예쁘고 똑똑한 줄 압니다. 부모는 자식을 볼 때 객관적(客觀的)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요. 주관적(主觀的)으로 보는 눈만 있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이 있는데, 늘 만나면 손자 자랑을 합니다. 자기 손자를 찍은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김목사, 우리 손잔데, 이것 봐. 내가 보기엔 천재 같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놀려 주려고 “목사님, 천재는 무슨? 그만한 때 애들 다 그래요!” 그러면 “우리 손자는 정말 천재라니까!” 하면서 기분 나빠 합니다. 부모도 그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자기 딸이 못났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고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기릅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을 써도 아깝지 않습니다. 온갖 사랑을 다 쏟아 붇고도 더 쏟아 부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이번에 졸업한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실 지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은 살아 계신가요? 건강하신가요? 전 다음 주간에 한국에 잠깐 다녀 오려고 합니다. 아버님 연세도, 어머님 연세도 90이 넘으셨습니다. 연로하신다 보니 건강이 아주 않 좋으십니다. 제가 한국에 가면서도 두려운 것은 저를 혹시라도 못 알아 보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건강할 때 잘 해 드려야 하고, 건강할 때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데, 이제 연로하셔서 저를 못 알아 보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한국을 떠나 온 지가 3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부모님을 뵈었겠습니까? 늘 목회한답시고, 교회 일 한답시고, 제대로 뵌 적이 없습니다. 뵈어도 잠간 밖에 뵙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한자로 ‘효’ 자를 어떻게 쓰는지 아시지요? 위에는 ‘노인 노(老)’자가 있습니다. '노(老)' 자는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형태인데요. ‘효(孝)’자는 지팡이 대신 ‘아들 자(子)’ 자가 있습니다. 글씨 형태로 보면 연로하신 부모님을 지팡이 대신 아들이 받치고 있는 것을 형태입니다. 제가 한자를 배울 때는 ‘효’자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아들이 엎고 가는 모양이라고 배웠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 찾아 보았더니 아들이 연로하신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가는 모양이라고 설명한 데도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부모님에 최선을 다해 드리세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자주 부모님 곁에 있어 드리세요.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 친부대(子欲養而親不)”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말인데요.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라는 말씀이 자꾸 마음에 떠 오릅니다. 공자가 유랑을 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답니다. 그래서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슬피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고,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고,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 교제를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참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조은아 작사, 신상우 작곡인데요. 오늘 읽은 말씀 고린도전서 15:10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작사했고, 곡을 붙였습니다. 가사도 곡도 아주 훌륭합니다. 신상우 씨가 캐나다 밴쿠버에 살 때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갈 곳에 없어서 밴쿠버에 있는 고형원 씨 집에 얹혀 살았는데, 고형원 씨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하나님님께 헌신하겠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나에게 어려움을 주시는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경 말씀은 꾸준하게 묵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고린도전서 15:10 말씀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묵상하다가 나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밴쿠버에 살고 있던 조은아 씨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사를 하나 써 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조은아 씨는 그 다음 날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가사를 써 왔다고 합니다. 종이에 만년필로 쓴 가사였는데, 이 가사 첫 줄,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을 읽으면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태어난 곡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곡이라고 합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whatever I am now, it is all because God poured out his special favor on me—and not without results. For I have worked harder than any of the other apostles; yet it was not I but God who was working through me by his grace.”
이 말씀이 주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but whatever I am now’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 무조건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내가 성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무조건 성공하고, 무조건 잘 되고 이것 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중에 계획대로 안 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학점 문제로 학교와 문제가 있어서 이번에 졸업을 못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만 그런 것 아닙니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또 어려움 겪고 있는 분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또 취직 문제로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보세요. 모두 잘 된 사람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 위에서 신상우 씨도 그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때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를 다시 일으켜 준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5:10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든지, 내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좋은 위치에 있는지 낮은 위치에 있는지 상관 없이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하게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실패와 절망 중에 있는 내가 성공했을 때, 낮은 자리에 있던 내가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이 ‘by God’s grace on me’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졸업생 여러분들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겸손에 대하여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1828-1917, 남아프리카공화국)가 그의 책 ‘겸손 (Humility, 1895)’에서 한 말입니다. “Just as water ever seeks and fills the lowest place, so the moment God finds you abased and empty, His glory and power flow in.” “물이 항상 낮은 곳을 찾아 채우는 것처럼, 당신이 낮아지고 비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발견하시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당신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 말씀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겸손에 대해서 한가지 말씀을 더 볼까요? 잠언 3:5-6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do not depend on your own understanding. Seek his will in all you do, and he will show you which path to take.”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네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지 마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그리하면 네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보여 주실 것이다.”
비록 이 말씀 안에 겸손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씀 자체가 이미 겸손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understanding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길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이 보입니다. 이것이 겸손한 사람이 받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는 교만하고 똑똑한 사람이 이기는 것 같지만, 교만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자기가 결정한 길을 걷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을 걷는 사람 중에 누가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겠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공한 사람만 이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 당장에 앞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이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What-ever I am now it is all because God poured out his grace on me”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내가 어느 형편에 있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성공과 실패와 절망 속에도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고 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려고 다른 어떤 사도들 보다도 자기는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일 마저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그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요. 여러분들 다들 아실 겁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자서전을 냈는데, 자서전 제목이 ‘최선을 다 하는 삶 (Why Not The Best)’입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 하는 제목입니다. 그는 재임 중에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크리스천인 카터는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2002년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항상 겸손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의 귓전에 저의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들립니다. “목회 열심히 해라. 교회 일 열심히 해라. 넌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니까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목회 열심히 해라!” 어머니가 정정하실 때는 이 말을 하시면 “알았어요!” 하고 짧게 대답하곤 했는데, 지금 어머니를 찾아 뵈면 그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못 알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떠나 보내실 때 눈물을 훔치시면서 “목회 열심히 해라!” 늘 하시던 이 말씀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