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2017 | 성령강림절 메시지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 (The Wonderful Things God Has Freely Given Us )
김태환 목사
고린도전서 2:9-14
9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였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 지혜를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속속들이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11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13 우리는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말하지 않고 성령으로부터 가르침받은 말씀으로 말합니다. 성령님께 속한 것은 성령에 속한 것으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4 성령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에 속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런 것들은 영적으로 식별되는 것이므로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9 That is what the Scriptures mean when they say,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and no mind has imagin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① / ①Isa 64.4
10 But① it was to us that God revealed these things by his Spirit. For his Spirit searches out everything and shows us God's deep secrets. / ①Some manuscripts read For
11 No one can know a person's thoughts except that person's own spirit, and no one can know God's thoughts except God's own Spirit.
12 And we have received God's Spirit (not the world's spirit), so we can know the wonderful things God has freely given us.
13 When we tell you these things, we do not use words that come from human wisdom. Instead, we speak words given to us by the Spirit, using the Spirit's words to explain spiritual truths①. / ①Or explaining spiritual truths in spiritual language, or explaining spiritual truths to spiritual people
14 But people who aren't spiritual① can't receive these truths from God's Spirit. It all sounds foolish to them and they can't understand it, for only those who are spiritual can understand what the Spirit means. / ①Or who don't have the Spirit; or who have only physical life
성령강림절 (6월 4일) 후 오늘까지 세 번에 걸쳐 시리즈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기 위하여 (To Know The Wonderful Things God has Freely Given Us)’ 이런 제목이 더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믿음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크리스천의 믿음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모두 ‘참된 예배 (the true worship)’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생활을 계속한다면,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터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23-24)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 Father is looking for those who will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로 (in spirit and in truth)'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in truth'라는 말은 비교적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진정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이렇게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in spirit'이란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 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in spirit'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산 밑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조하게 모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아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낸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시오.” (출애굽기 32:1) 백성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아론은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모아서 불이 녹여 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낸 신이다!”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삼천 명이 죽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God in spirit”이라는 말의 의미는 광야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금붙이를 모아서 송아지 상을 만들었던 사건을 반성해 보면,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그 답이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일, 지나치게 예배에 물질적인 것을 동원하는 일, 인위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을 조작해 보려고 하는 일 등은 모두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막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 'in spirit'이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성령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드리기 전에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드리는 이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모든 인간적인 시도를 중단하게 하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가게 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의 영이 깨닫는 예배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예배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진정한 예배가 불가능합니다. 예배 중에 찬송은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찬송을 부르는 방식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불러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여 드리는 찬송이 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16에 "시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로써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Sing spiritual songs to God with thankful hearts"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5:19에도 "Sing spiritual songs among yourselves, and making music to the Lord in your hearts"라고 나와 있습니다. 찬송의 가사와 곡조를 통해서 내 영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부르는 찬송을 'spiritual songs (영적인 노래 혹은 찬송)'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기도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간구하십시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ray in the Spirit at all times and on every occasion.” "Pray in spirit." "Sing the spiritual Songs in spirit." "Worship God in spirit." 모두가 'in spirit'입니다. 여러분,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는 말씀 속에 기도 생활의 중요한 열쇠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이 말씀 속에 올바른 기도생활의 열쇠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어려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어디에도 기도가 힘든 일이라고 나와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는 그런 식으로 기도하셨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는 이른 아침에 성전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루에 한번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저녁 식사 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그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식사 후)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뒤따라 갔습니다." (누가복음 22:39) '늘 하시던 대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s usual'이란 뜻이잖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기도가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면, 예수님도 기도를 힘들어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는 기도가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제가 얻은 결론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법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무엇이든지 제대로 알고 하면 훨씬 쉽습니다. 훨씬 힘이 덜 듭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법을 모르고 하면 어럽고 힘이 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기도가 응답되는 즐거움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그런 기도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응답 받는 기도를 하고 계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4-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관심을 가지시고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이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바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 뜻을 내려 놓고,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시려고 하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 아닙니까?
이제 저는 오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고린도전서 2장에 있는 말씀으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말씀이 조금 어려운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요점을 정리해 보면 아주 쉬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전에 들어 보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는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하나만 묵상해 보십시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십자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십자가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보십시오. 모두 인간으로부터 제물을 받고, 인간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달라요.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희생합니다. 하나님께 아들이 여러 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 (only son or only begotten Son)'을 우리를 위해 내 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죄인인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 (the wonderful things)'을 누가 이해하고, 누가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세상의 영 (the spirit of the world)'을 가지고는 죽었다 깨도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만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영'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왜 공부를 합니까? 모두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합니까? 그 권력을 가지고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에서 내려 오기 전에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세상의 영'이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놀라운 일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 (the spirit from God)'을 받은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읽어 보면, 이 편지를 쓴 바울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과 '성령 (the holy Spirit)'이라는 말을 같은 말로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1)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기도의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뜻대로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하나님의 목적이니, 하나님의 의도니,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특히 우리 크리스천들이 겪는 고난 속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난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세상의 영'을 가지고 나의 문제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나의 고난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마치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아빠의 자식이고, 엄마의 자식이니까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식이라도 철이 없을 때는 모릅니다. 철이 좀 들어야 엄마의 마음을 알고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이제 두 주 좀 넘었나요? 어제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머리를 좀 식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오랫만에 '불후의 명곡'을 보았습니다. 모두 여섯 명의 가수가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정동하라는 가수가 '섬집 아기'라는 동요를 불렀습니다. 보통 그런데서 그런 노래를 안 부르거든요? '보이스퍼'라는 아카펠라 중창단이 화음을 넣고 그 노래를 부르는데, 왜 그렇게 엄마 생각이 나지요? 혼자 엉엉 울었습니다. "아기는 곤히 잠을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아, 나의 어머니도 나를 그렇게 기르셨겠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다. 그 속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 믿음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우리의 믿음생활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올바른 예배생활이 불가능합니다. 형식적이거나 습관적이 아닌 참 예배는 'in spirit and in truth' 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찬송도, 기도도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일들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였고,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였다.” (고린도전서 2:9) 2,000년 전에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율법학자들이 그랬고, 제사장들이 그랬고, 사두개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소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깨닫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