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2017 | 나에게 힘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2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The Lord Is My Strength.)
김태환 목사
시편 28:6-9
6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불쌍히 여겨 달라는 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7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내가 마음을 다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나를 도와 주십니다. 내 마음이 기뻐 찬양하며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8 여호와는 백성에게 큰 힘이시며, 주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승리를 주는 요새이십니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께 속한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언제까지나 그들의 목자가 되시고, 그들을 보살펴 주소서.
6 Praise the LORD! For he has heard my cry for mercy.
7 The LORD is my strength and shield. I trust him with all my heart. He helps me, and my heart is filled with joy. I burst out in songs of thanksgiving.
8 The LORD gives his people strength. He is a safe fortress for his anointed king.
9 Save your people! Bless Israel, your special possession. Lead them like a shepherd, and carry them in your arms forever.
오늘은 ‘나에게 힘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두 번째 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보스턴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설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28편은 ‘다윗이 가장 어려웠을 때 드린 기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 우리는 이것을 ‘세계관 (worldview)’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지식이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 (frame)’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그밖에 ‘인생관’이라는 것도 있고, ‘가치관’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들은 그 사람의 ‘세계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이 그의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의 삶에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더라도 고난을 피해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누구보다도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열 한 형제가 있었는데, 요셉은 막내였습니다. 다른 형들이 나가서 일을 할 때, 일도하지 않고 요셉은 좋은 옷을 입고 아버지의 품 안에 있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욥이라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욥이 밖에 외출할 때는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욥에게 인사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루 아침에 아들들이 모두 죽고, 그 많던 재산이 다 날라가고, 몸에는 악성 피부병이 생기고, 아내는 욥을 저주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오늘 시편을 쓴 다윗도 그렇습니다. 다윗은 갑자기 유명해진 내쇼널 히로우였습니다. 우연히 아버지심부름으로 형들이 나간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을 이긴 바람에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사울 왕은 다윗을 경계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사울이 왜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다윗은 이유도 모른 채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 저리, 이산에서 저 산으로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이때가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다윗은 어렵고 힘들 때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나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어느 새 노래로 변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편은 단순히 시가 아니라 노래입니다. 지난 주에 읽었던 시편 46편도 ‘알라뭇’에 맞춰 지휘자를 따라 부른 노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알라못’이라는 말이 소프라노 목소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성경의 인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지요. 그는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선교에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시아 (지금의 터키)의 내륙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번번히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꿈에서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본 것 아닙니까? 그 꿈 속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마케도니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다가 무슨 일 하나가 빌미가 되어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한 밤 중에 사방은 조용합니다. 그는 그 때 자리에서 일어나 찬송을 부릅니다. 죄수들이 잠에서 깨어나 그의 찬송을 듣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도행전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고난 중에 있을 때 기도할 수 있고, 찬송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아닙니까? 다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목적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으로, 하나님이 목적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대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들어 있다는 것이 ‘크리스천 세계관 (Christian worldview)’이요, 인생관입니다. 그 하나님의 목적은 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The thief's purpose is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My purpose is to give them a rich and satisfying life).” 요한복음 10:10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세계관’을 믿는 사람들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디즈니 무비 중에 ‘Joseph King of Dream’이라는 애니메이션 무비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요셉의 일생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 중에 요셉이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 제목이 ‘You Know Better Than I (당신은 나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입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요셉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 일 없이 아버지 집에서 잘 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합니다. 형들이 요셉을 우물 속에 집어 넣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로 팔려 갑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주인의 눈에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 그는 다시 나온다는 기약이 없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런 요셉이 자기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요셉이 찬송을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요셉의 삶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충분이 이 노래 가사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You know better than I, You know the way (주님은 저보다 더 잘 아십니다. 주님은 길을 아십니다). I'd let go need to know why for You know better than I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자 하는 마음도 내려 놓겠습니다. 주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I'll take all the answers You'll supply (저에게 주시는 모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You know better than I (주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이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서, 다윗이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또 그는 그 어렵고 힘든 때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 보려고 합니다. 6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불쌍히 여겨 달라는 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 말씀보다 더 좋은 번역은 이 말씀을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이렇게 번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이리 저리 도망 다니며 불안과 공포 속에 떨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서였을까요?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raise the LORD! For he has heard my cry for mercy.” ‘cry’라는 말은 ‘울다’ ‘부르짖다’ ‘간절히 바라다’ ‘애원하다’ 이런 뜻이 잖아요? 얼마나 간절하면 울음이 나오고, 얼마나 간절하면 부르짖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기 전에는 그것을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간절하게 울며, 부르짖습니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이 울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아도 다른 옵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울며, 부르짖지 않습니다.
제가 1984년에 클레아몬트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서른 두살이었습니다. 그 때 와서 공부를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미국에서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정말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영어가 안 돼 가지고 힘들었던 얘기는 말로 다 못합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점수는 잘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신학교 강의가 주로 세미나 식으로 진행이 되고 그룹 토의 형식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더 어려웠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한 주간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 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근처의 산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산이라야 그렇게 높지 않는 산입니다. 어두컴컴해지면 몇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갑니다. 그 산에 작은 폭포가 있었습니다. 폭포 소리 때문에 여기 저기 흩어져서 기도하면 저 사람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떤 때는 차를 타고 가면서 차 안에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신학교 생활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울며 기도하는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지금 제 속에 있는 불안과 공포, 제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나님 밖에는 제가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다윗은 그의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그 다음 7절 말씀을 보실까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내가 마음을 다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나를 도와 주십니다. 내 마음이 기뻐 찬양하며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말 성경으로 읽어도 잘 이해가 됩니다만, 이 말씀을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The LORD is my strength and shield. I trust him with all my heart. He helps me, and my heart is filled with joy. I burst out in songs of thanksgiving.”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구절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눈에는 “I trust him with all my heart”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 옵니다. “내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의지합니다.” “제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신뢰합니다.” “제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믿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정말 마음을 다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신뢰한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믿음생활을 수 십년을 하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11-12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선택받았고, 또 사도와 교사의 직무를 맡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이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믿어 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내게 맡기신 것을 세상 끝날까지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But I am not ashamed of it, for I know the one in whom I trust.” 사도 바울이 복음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for he knows the one in whom he trusts’입니다.
문제는 내가 믿는 그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내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면 됩니다. 그 속에 내가 찾는 모든 해답 (answers)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 발견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그분을 온 마음으로 신뢰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 만난 하나님은 힘이요, 방패였습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내가 힘이 없고 낙심되어 주저 앉아 있을 때에도, 내가 절망하고 좌절했을 때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신 분은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나의 방패 (shield)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방패는 나를 보호해 주는 장비입니다.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 올지 모릅니다. 이런 위태한 곳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제 제 설교를 마치면서, 한가지 더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실패는 반드시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뿐만 아니라 위기와 고난과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시를 썼습니다. 시는 그의 노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속에 있는 시편들은 거의 모두 다윗이 쓴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쓴 시편들은 즐겁고 기쁜 때에 쓴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쓴 것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고난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천의 세계관을 가지고, 크리스천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그리고, 그 눈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해 보면, 그 어떤 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고난, 실패, 절망, 외로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 50:2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자녀들의 삶 속에 일어나는 악한 일들을 하나님의 때에 선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크리스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들이 성경 속에 나와 있는 이런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답답하고, 어렵고 힘들 때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다면 찬송하십시오.” (야고보서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