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편

1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개역개정)

우리가 가진 성경에 모두 150편의 시편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1편은 시편 23편과 함께 가장 사랑 받는 시편이 아닌가 합니다.

각 시편 마다 그 시편을 사용하는 용도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불렀던 노래입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이스라엘에는 모든 유대인들은 적어도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명절 때가 되면 직접 기른 양을 어깨에 짊어지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면서 이 시편 121편을 노래로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신 것을 보면, 예수님도 성전에 가시면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어떤 때 옆에 순례자들이 없을 때는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걷기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가면서 노래를 부르면 심심하지도 않고, 피곤 하지도 않고, 즐겁게 순례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자기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목적을 더 분명히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에서 가장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절)?” 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대답으로 즉시 2절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로부터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 절박할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되는 한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외롭고 힘들었을 때, 누군가 그 사람과 함께 있어준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 사람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고, 힘들 때 격려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도움을 누구에게, 누구의 도움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온 것이 1983년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미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는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소양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도 ‘소양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양교육’이라는 것이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미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시민 교육이 잘 되었는가 하면 실수로 물건을 버스 정류장에 두고 왔더라도 몇 시간 후에 가보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우스운 것은, 미국에 도착해서 한 일주일쯤 지나면 누군가로부터 우편물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우편물을 뜯어보면 그 속에 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돈은 북한이 주는 공작금이기 때문에 절대로 손을 대면 큰 일 난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교육을 받을 때는 정말 그런 일이 있구나 하면서 가슴이 쾅쾅 뛰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도착해서 일주일이 지나도 나에게 그런 우편물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충고 한마디를 들어도 누구의 충고를 듣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말 적절한 사람으로부터 적절한 충고 한마디를 들으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청년들이 많습니다. 모두 자기 앞에 놓인 일을 자기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교수와의 문제가 생기고, 전공을 바꿔야 할 문제도 생기고, 정신적인 문제도 생기고, 경제적인 문제도 생깁니다. 물론 남녀 간의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청년들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게 놔두지 말고 좀 옆에서 도와 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자원들 (resources)을 활용해서 이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준비가 되었습니다. 9월부터는 이 시스템을 여러분들이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지난 주에 재미있는 동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성경해석에 대한 동영상이었습니다. 재미있어서 제 페이스북에 올려 놓았는데, 좋아요 누른 사람은 10개 밖에 안 됩니다. 물론 읽고 ‘좋아요’ 안 누른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10명이 봤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여담이지만, 최정모 결혼한다는 소식을 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좋아요’ 누른 사람이 몇 명인지 아세요? 300명 가까이 됩니다. 페이스북에서 연락이 왔어요. 올리신 기사에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셨다고 축하한다고요.

제가 올린 동영상 안 보신 분은 꼭 보세요.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세요. 제가 그 동영상에 제 나름대로 성경해석학에 대한 글도 짧게 올렸습니다. 꼭 한번 읽어 보세요. 그 동영상을 보면, 창세기 말씀이 고대 근동에 흩어져 있는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들과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사람들은 해와 달을 중요하게 여겨서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신 것이 첫째 날이 아니라 넷째 날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해와 달이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경의 저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해와 달을 첫째 날이 아니라 넷째 날로 끌어내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21편 말씀을 보세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고대 사람들은 우람한 산을 보면 숭배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산에 가 보면 예외 없이 신들을 예배하는 제단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오면서도 많은 산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산을 보면서 이들은 이 시편 121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요. 예루살렘에 오면 시온산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온산은 예루살렘 성전의 시온 문 (Zion Gate)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은 시온산 기슭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시온산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요.

시편 121편은 누가 썼는지 저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익명의 작가가 이 시편을 썼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대단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은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 그 도움의 출처를 올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산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산에다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도움은 산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도움은 시온산에서 온다고 그 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121편을 쓴 익명의 저자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옵니다.” (2절)

여러분, 이 고백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요.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렀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인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이 고백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이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창조주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생명의 신비라고 해야 할 정도로 경이로운 것입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기는 연어가 알을 낳을 때는 강물로 올라온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올라옵니다. 어미가 그 강에 올라가서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서 새끼가 됩니다. 새끼 연어는 바다로 돌아가서 몸집이 커집니다. 그 연어는 다시 알을 낳기 위해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 옵니다. 거기서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칩니다. 생명의 신비입니다.

예전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코끼리로 그런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코끼리가 갑자기 호텔로 들어왔답니다. 그 호텔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어서 자기가 태어난 곳을 가고 있었는데, 그 길에 호텔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코끼리가 호텔로 들어간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 기사를 읽고 나서 마음이 짠 하더라고요.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의 신비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요점이 그것입니다. 우리도 도움이 필요할 때는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요. 산을 바라 볼 이유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 볼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나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2절)

시편 121편을 쓰신 분의 하나님께 대한 고백을 계속해서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발을 헛딛지 않도록 잡아 주십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오른 편에서 내가 쉴 그늘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심으로 낮의 해도 나를 해치지 못하고, 밤의 달도 나를 해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와 있는 이 말씀들을 모두 인정하십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런 분이 되십니까? 여러분은 정말 그런 하나님을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까? 제가 단언하건대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만, 그런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다시 2절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나의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다 함께 1절과 2절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