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2017 | 크리스마스 설교 I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 (Good New Of Great Joy For All The People)
김태환 목사
누가복음 2:3-14
3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4 요셉도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유대 지방에 있는 다윗의 마을로 갔습니다. 이 마을은 베들레헴이라고 불렸습니다.
5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갔습니다. 마리아는 그 때에 임신 중이었습니다.
6 이들이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7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습니다. 그것은 여관에 이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8 그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갑자기 이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자, 이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11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14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3 All returned to their own ancestral towns to register for this census.
4 And because Joseph was a descendant of King David, he had to go to Bethlehem in Judea, David's ancient home. He traveled there from the village of Nazareth in Galilee.
5 He took with him Mary, his fiancee, who was now obviously pregnant.
6 And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baby to be born.
7 She gave birth to her first child, a son. She wrapped him snugly in strips of cloth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lodging available for them.
8 That night there were shepherds staying in the fields nearby, guarding their flocks of sheep.
9 Suddenly,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among them, and the radiance of the Lord's glory surrounded them. They were terrified,
10 but the angel reassured them. "Don't be afraid!" he said. "I bring you good news that will bring great joy to all people.
11 The Savior?yes, the Messiah, the Lord?has been born today in Bethlehem, the city of David!
12 And you will recognize him by this sign: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snugly in strips of cloth, lying in a manger."
13 Suddenly, the angel was joined by a vast host of others?the armies of heaven?praising God and saying,
14 "Glory to God in highest heaven, and peace on earth to those with whom God is pleased."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가 부른 ‘Jesus Born On This Day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가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Today a child is born on earth (오늘 세상에 한 아기가 나셨네)
(Today a child is born on earth)
Today the glory of God shines everywhere (오늘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비치네)
For all the world (온 세상을 위하여)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 is our light and salvation (그는 우리의 빛이요 구원이시네)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 is the King of all nations (그는 열방의 왕이시네)
Behold the lamb of God has come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셨다!)
(Behold the lamb of God has come)
Behold the Savior is born (보라! 구세주가 태어 나셨다!)
Sing of His love to everyone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라)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avenly child in a manger (하나님의 아들이 말 구유 안에 뉘어 있네)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 is our Lord and Savior (그는 우리의 구주시요, 구세주이시네)
Today our hearts rejoice in Him (오늘 우리의 마음이 그를 기뻐하네)
(Today our hearts rejoice in Him)
Today the light of His birth (오늘 그의 탄생의 빛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Fills us with hope and brings peace on earth (세상에 평화를 가져 오네)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 is our light and salvation (그는 우리의 빛이요, 구원이시네)
Oh Jesus born on this day (오,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
He is the King of all nations (그는 열방의 왕이시네)
Today a child is born on earth (오늘 세상에 한 아기가 태어났네)
(Today a child is born on earth)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도 주치의(主治醫) 자격으로 바울과 동행합니다. 바울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바울을 떠날 때도 누가는 끝까지 바울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4:11). 그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문서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사도행전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바울로부터 예수님께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누가는 관심이 가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조사하고, 자료를 찾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차례대로 쓰려고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일을 목격한 사람들, 즉 말씀의 종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존귀하신 데오빌로 각하, 저도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하였으므로, 이 일을 각하께 차례대로 기록하여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미 배우신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4) 누가는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에 대하여 저도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조사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조사하고 기록한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 드릴 것은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데오빌로 (Theophilus)’라는 사람에게 헌정하는 식으로 그의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름이 헬라식 이름인 것과 또 그에게 ‘각하 (most excellent)’라는 말을 붙인 것을 보면 그리스의 최고급 관리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나사렛에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가 왜 베들레헴으로 갔는지, 우리는 누가복음이 아니었으면 그 이유를 모를 뻔했습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아구스도 (Augustus, BC 63-AD 14)’ 황제가 호적 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레뇨 (Quirinius, BC 51-AD 21)’라는 시리아 총독이 이 일을 주관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 가문이었던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 등록을 하러 갔고, 거기서 아기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아닌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담겨 있는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 왕을 찾아와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러 왔다고 그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을 때, 헤롯 왕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는지 성경을 조사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때 학자들은 구약성경 미가 5:2에 나오는 말씀을 찾아냅니다. 그 말씀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a ruler of Israel)’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예언의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말씀이 곧 메시야의 출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신 것은 곧 미가가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 때 인구조사를 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없었더라면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낳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 칙령이 조금만 더 일찍 내렸더라면 베들레헴에 갔더라도 예수님을 낳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칙령이 조금만 더 늦게 내렸더라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했고, 또 사마리아 지방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약 80마일 정도는 걸어야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20마일 정도 걷는다고 생각하면 4일 정도 걷는 거리입니다. 이 거리까지 계산해서, 더 이르지도 않고, 더 늦지도 않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써 미가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누가가 쓴 글을 보십시오. “이들이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And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baby to be born).” (6절)
누가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이 베들레헴 근처 들판에서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이었다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도 누가가 성경을 기록한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어느 신학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여자들의 복음이라고요. 맞습니다. 누가복음에 여자들에 대한 말씀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또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누가복음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말은 ‘겸손한 사람들’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6:20)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사람들이라고 축복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겸손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쓰시기 전에 양을 치는 목자로 40년을 훈련 시키십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겸손한 사람으로 훈련 시키신 기간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단순히 윗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40년 동안 겸손의 훈련을 받은 모세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십니다. 반대로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십니다 (야고보서 4:6, 잠언 3:34)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 그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He favors the humble”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교회가 가진 사명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humble하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보스턴은 학문의 도시입니다. 보스턴 인근까지 세면 모두 114개 대학이 있다고 합니다.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대학들입니다. 여기서 공부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교육입니다. 그리고 신앙교육은 곧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겸손하게 성경을 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겸손하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훈련 받고, 예수님처럼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ransom (화목제물)’으로 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받은 하나님의 favor는 구세주가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한 밤 중에 들에서 양을 치던, 마음이 humble한 목자들이 구세주 탄생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10-12절)
목자들이 들었던 성탄의 메시지는 요약하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구세주가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는 ‘세상을 구원할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avior (구원자)’입니다. ‘save (구원하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에서 ‘salvation (구원)’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 한 잔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병든 사람은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생명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는 그 생명을 보호해 주고, 지켜 주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가 되신다고 했을 때,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라는 이름에 무슨 뜻이 있는지 아세요? “그가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마태복음 1:21)”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의 막혔던 소통의 길이 열리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도 돌아오게 되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구세주'입니다.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 (Good news that will bring great joy to all people)’(10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누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해져서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먼저 들은 사람들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로마서 8:23)’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의 사명은 우리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성령의 열매들이 열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은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자기 자신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서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한 바울은, 그 빚을 갚기 위하여 로마를 지나 스페인으로 갈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하십시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나는 어떻게 복음의 빚을 갚을 것인가?”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을 옆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혼자는 어려워도 여럿이 함께는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습니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나요? 이제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천군천사들의 노래는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4절)’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those with whom God is pleased)’이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있는 사람들 있습니까? 마음을 크게 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 말씀을 받아 들이십시오. 교우 여러분들의 마음에, 가정에, 그리고 우리교회 안에, 그리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가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