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2017 | 송년주일예배 설교
내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 (God Knows Me By Name.)
김태환 목사
시편 147:1-7
1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그분께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요
2 여호와는 예루살렘을 세우십니다. 그분은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십니다.
3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십니다.
4 그분은 별들의 수효를 결정하시며, 별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주셨습니다.
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크십니다. 그분의 분별력은 끝이 없습니다.
6 여호와는 겸손한 자를 살게 하시지만 악한 자는 땅에 내던지십니다.
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수금으로 하나님께 연주하십시오.
1 Praise the Lord! How good to sing praises to our God! How delightful and how fitting!
2 The Lord is rebuilding Jerusalem and bringing the exiles back to Israel.
3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andages their wounds.
4 He counts the stars and calls them all by name.
5 How great is our Lord! His power is absolute! His understanding is beyond comprehension!
6 The Lord supports the humble, but he brings the wicked down into the dust.
7 Sing out your thanks to the Lord; sing praises to our God with a harp.
오늘은 2017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7년을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말 세월이 살같이 흘러갑니다. 한자에도 광음여류(光陰如流), 세월유수(歲月流水), 광음여전(光陰如箭)이라는 말들이 있습니다. 모두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3절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Time is now fleeting, the moments are passing from you and from me).” 또 성경 시편 90편에 보면 “우리의 인생이 날아가듯 빨리 지나갑니다 (시편 90:10)”라는 말씀이 나오고, 신약 에베소서에는 “세월을 아끼라 (5:16)”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를 어떻게 사셨습니까?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올 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을 겪으면서 맘 고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직장 문제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facebook에 올려 놓았습니다만, ‘미국에서 한국인이 사는 법’이라는 동영상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직장을 얻지 못하고 ‘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 기간이 끝나 하는 수 없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있다는 내용의 동영상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올해 사랑하는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을 겪게 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크리스천들도 힘든 일을 겪게 되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고 해서 그리 놀랄 것 없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송년예배를 드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시편 147편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시편 147편은 누가 쓴 것인지 저자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시편도 다윗이 쓴 시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윗이 쓴 시편이 150편 중에 73편이나 되니까 그럴만도 합니다. 하지만, 성서신학자들은 시편 147편은 다윗의 시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147편은 무명의 저자가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송년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시편 147편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이 시편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그분께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요.” (1절)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에서 찬양이 중요한 이유는, 찬양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recognize)’ 것이기 때문입니다. ‘praise’라는 말 자체가 찬양의 대상에게 존경과 인정을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욥기를 읽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그가 고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고도, 자식들이 하루 아침에 모두 죽는 참사를 겪으면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욥기 1:21)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상관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의 내 삶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 아세요? “누구든지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나도 귀하게 여기겠다. 그러나 나를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자들은 나도 그들을 깔보아 수치를 당하도록 내버려 두겠다. 이는 내가 온 세계의 주인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하는 말이니 그대로 될 것이다 (I will honor those who honor me, and I will despise those who think lightly of me).” (사무엘상 2:30, 현대어 성경)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아너 (honor)’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너’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씀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 (Eli)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그 때 제사장 엘리는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웠다고 했습니다. 매우 상징적인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엘리와 하나님 사이의 소통이 이미 단절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때 엘리의 입에서 찬양이 끊어진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보다 자식들에 대한 정이 더 앞서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이 시간 송년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올 한 해,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힘든 시간을 보냈든지 상관 없이,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아너 (honor)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인정해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크십니다. 그분의 분별력은 끝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How great is our Lord! His power is absolute! His understanding is beyond comprehension!”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beyond our comprehension (우리의 이해 밖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우리의 좁은 생각 속에 가둬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worm’s-eye view’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bird’s-eye view’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당장에 눈 앞에 있는 것만 보지만, 하나님은 전체적으로 그의 자녀들의 삶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당장에는 내가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관점이 맞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어떻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을까?” 하고 깜짝 놀라는 말씀들을 발견합니다. 신명기 8:4-5 말씀을 보십시오. “지난 사십 년 동안, 여러분의 옷은 해어지지 않았고, 여러분의 발도 부르트지 않았소. 부모가 자기 자녀를 단련시켜 가르치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도 여러분을 단련시켜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시오.” 광야생활 40년을 ‘worm’s-eye view’를 가지고 봐 보세요.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습니까? 불평과 원망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때 당장에는 문제투성이였던 것 같은데, 하나님의 ‘bird’s-eye view’로 보니까 전혀 해석이 달라집니다. 광야 생활 40년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광야생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그들의 옷이 해어지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신발은 닳아 없어지고, 옷은 해어지고, 고생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광야생활을 돌아 보니까 모두가 축복이었고, 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광야생활의 경험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때 했던 고생은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배고픔과 목마름은 아무 이유 없이 겪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통해서 돈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영어 번역 성경에 보면 5절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e’ll never comprehend what he knows and does (우리는 그가 알고 계시는 것과 그가 행하시는 일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33-34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고백했던 말씀과 상통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가 참으로 깊다고 하면서 ‘unfathoma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깊이 (바닥)을 잴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아주 귀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귀했으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을 내주셨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서 볼 때 아주 ‘유니크 (unique)’한 사람들입니다. 나와 똑 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니크한 삶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읽은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분은 별들의 수효를 결정하시며, 별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주셨습니다 (He counts the stars and calls them all by name).” (4절) 도대체 하늘의 별이 몇 개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많은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시고, 그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그것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름을 부르신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도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양들이 많든 적든 선한 목자는 자기가 돌보는 양들을 압니다. 단순히 얼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릅니다. 또 이와 같은 뜻으로 이사야 49:16에는 “나는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 네 무너진 성벽들이 항상 내 눈앞에 어른거린다. 너는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언제나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을 리가 없겠지만,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고 (engraved)’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에 힘든 일이 있고, 고난이 있다고 해서 쉽게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비록 잠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금방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때는 ‘worm’s-eye view’로 여러분의 삶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bird’s-eye view’로 여러분의 삶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전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3절 말씀에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라고 합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andages their wounds.”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올 한 해 동안에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인간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상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제사는 깨어진 마음입니다. 오 하나님, 상처난 가슴과 죄를 뉘우쳐 주님께 고백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경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깨지고 상처 받은 심령들을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편 51편을 쓴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broken spirit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자의 심정으로까 승화 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예배자들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修辭的)인 표현이 아니라, 다윗의 경험 속에서 나온 진실한 고백입니다. “내 죄를 주께 고백하고, 내 잘못을 여호와께 말씀 드렸더니, 주님은 내 죄와 내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시편 32:5)
‘상한 심령’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worm’s-eye view’를 가지고 보면 내 마음이 깨지고 아플 때, 세상이 원망스럽고, 삶의 의욕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bird’s-eye view’를 가지고 보면, ‘아, 내 마음이 깨지고 아팠을 때, 하나님은 그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도록 나를 부르셨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닫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치유 (healing)’를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간에 첫째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은 우리의 머리로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만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위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쉽게 절망하고, 쉽게 좌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때때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borken spirit’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깨지고 상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147편을 통하여 송년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직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여러분 중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면서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직도 여러분 중에 ‘worm’s-eye view’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가지고 계시는 선하신 계획과 목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비록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한마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생각하지도 않은 것들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64:4, 고린도전서 2:9) 우리가 가진 ‘worm’s-eye view’를 버리고, 하나님의 ‘bird’s-eye view’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이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올 한 해 동안 내 삶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2018년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